전화기를 스마트 폰으로 바꾸고는 시계를 잘 쓰지 않게 됬다. 세어보니 벌써 10년가까이 된다. 이번 출장도 간편하게 지역시간을 바꾸고 쓰면 되는 스마트폰을 쓰고, 알람은 계속 돌아가니 편리하다. 그렇게 시계는 죽어서 책상 구석에 굴러다닌다.
이번 출장 중 한명이 시계줄을 간다고 줄을 2개나 샀는데, 하나를 돌아오는 길에 받았다. 쓸모가 없나보다. 붉은 빛 갈색이 맘에 든다. 게다가 출장중 왼손에 하고 있던 가죽 매듭을 젊은 엔지니어가 해보고 싶다고 해서 주고 왔는데 허전한 손목을 보다가 시계를 보니 왠지 불쌍하다. 그래도 십년전엔 swatch라고 잘 차고 다녔는데..
밤낮이 바뀌어 몽롱하게 있다가 시계를 들고 어슬렁어슬렁 동네 산보를 나갔다. 막내는 "너무 잠만 자는게 아니냐!"고 타박이 심하고, 집을 나서는데 마나님은 교회갔다가 올라온다고 하고..마트 주변 금은방에서 갈수 있으려나 하고 나갔는데, 집 근처에 아주 낡은 시계가게가 보인다. 도통 그 가게에서 취급할 것 같지 않은 "오메가, 명품 시계 매입"이라는 글씨가 재미있다.
나이 든 아저씨가 헤트셋처럼 생긴 돋보기를 착용하니 괴도 루팡처럼 변신한다. "어디 한번 볼까?" 뚜껑을 열고 나니, 방수를 위해서 연결되었던 고무 오링이 끊어진다. 10년의 세월을 말해 주는듯 하다. 그래도 안쪽 금색 부품들이 아직도 반짝반짝하다. 사람은 공기가 없으면 못살지만, 금속은 공기와 멀리 있으면 녹슬지 않는다.
작은 부품을 하나 빼고, 건전지를 갈아 넣었다. 돋보기가 잘 안보이시는지, 이번에는 다시 돗수가 어마어마한 안경을 번갈아 쓰시며 한참을 다시 맞추신다. 밧데리를 가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불안한 마음마저 든다. 엄청나게 쌓여있는 곳에서 고무 오링을 바로 찾아서 연결하신다. 엄청난 세월을 아저씨와 같이한 시계부품 다발들이 여기저기에 쌓여있다. 모두 작은 비닐봉지에 들었고, 다시 큰 곽에 넣어 두었는데 모두들 작은 이름표들이 깨알처럼 붙어있다. 우리집 레고 부품함에도 이름표를 붙여 놓으면 아마 비슷한 규모일 듯 하다. 사무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큰 괘종시계 옆엔 이젠 사용하지도 않을 것 같은 오래된 필름카메라도 삐딱하게 걸려있다.
"다 됬다!" 그렇게 시계가 다시 돌아간다. 시간과 날짜를 맞춰 주시다, "시계 바늘이 안돌아가네?" 하신다. 옆에 돌리는 버튼이 이단으로 되어 있는데 내가 해보니 잘 돌아간다. 날짜까지 맞추고 나니, 시계가 제 역할을 다시 한다. 줄도 갈아볼까 하고 여쭤보니, 아저씨가 알이 검정색이니 무조건 검정색이나 밤색이 좋단다. "그래도 저는 붉은 색이 좋은데요?" 했더니 한참 웃으신다. 백발이 성성한 어른 입장에서는 내가 말도 안되는 감각의 소유자인가 보다.
"요즘은 시계 고치는 사람이 없어. 한 십년 지나면 고칠 줄 아는 사람도 없을 걸?" 하신다. 안녕히 계시라고 하며 돌아오는데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십년이 지난면이라...나는 죽은 녀석을 살리고, 아저씨도 오랜만에 시계 건전지를 갈아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십년이 지나면 하기 어려운 일을 하고 온 셈이다.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참 즐겁다. 어려서 귀에 대보면 째깍째깍 소리도 나던데 이 녀석은 아주 과묵하네요.
10년전에 선물받은 기억과 독특한 오렌식색 줄을 보니 흐뭇합니다. 책상위에 놓고 사진을 찍어서 출장중에 알게된 Pixlr(smart phone app인데 아주 괜찮아요)로 만지작 거려봅니다. 죽었던 녀석이라 흑백으로 바꾸고, 다시 살아난 시계에 칼라를 살리고, 생명을 불어 넣어 준 기념으로 조명도 장식해주고요. 이젠 허전한 왼쪽 손목에 묵직한 녀석이 달려있습니다.
시계도 살림김에 매일 쓰는 2500원짜리 가성비 만점의 싸구려 만년필 대신 Lamy Joy 만년필도 하나 구매하고, 책도 2권샀습니다. 시계가 돌아가는데 제가 더 활력이 생기네요. 갑자기 커다란 아이폰6 플러스가 낯설어 보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이란 것도 하지만, 예를 통해서 엄청나게 많은 불필요한 정보와 강요를 받게 되니까요.
특히 독일가게와 제 핸드폰 번호가 교묘하게 비슷한데, 요즘 그집 장사가 잘되나 엄청나게 전화가 옵니다. 국제전화로 불평불만을 할수도 없고, 출장중에도 어찌나 전화들을 하시는지..요즘은 번호차단에 정신이 없고, 미등록 번호는 안받게 됩니다. 이것도 작년 이 맘때 새벽 3시에 온 전화때문입니다. 미국 교포분이 한국사람이 받는다고 신기해 하시더니, 2번째에는 뭔가 잘 못된거 같다고 국제전화로 친절하게 알려주시더라구요. 그러고 나니 그전에는 러시아 녀석이 부츠배달을 안한다고 complaint을 하던 이유가 생각나더군요. 그때 저는 내용도 모르고, 내가 직업이 파는 직업이긴한데 부츠는 안판다고 했거든요. 그나마 요즘 전화기로 사진찍어보는 재미가 생겨서 다행입니다.
만년필을 주문하면서 사람 손으로 쓰는게 훨씬 정감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글씨를 못 쓰는게 흠이어서인지 괜히 연장 욕심에 대한 당위성을 찾아야 하는 것도 같구요. 그리고 오늘은 충동 구매처럼 여기저기 찾아서 목에 거는 머니클립도 하나 샀습니다. 전화기와 같이 다니는 체크카드, 가방에 쳐박아둔 지갑, 출근할때마다 사용하는 출입카드와 수영장 회원카드..분주한 제 삶처럼 정신이 없습니다. 요즘은 잘 까먹기도 하고, 주인님이 아이들에게 '잘 흘리고 다니니 잘 챙기라'는 잔소리 대상이 늘어났다고 걱정이십니다. 삶이 좀 간결해 졌으면 하는데 그럴리 만무하고, 이렇게라도 좀 정리가 될까요. 시계처럼 간결하고 활력이 좀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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