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철학 교수가 왜 국가의 부에 관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철학이란 생각이란 것을 통해 무엇을 탐구하고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이 한 분야에 꽂혀 깊이가 생기면 하나의 학문이 되어간다는 그놈의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인간이 하는 오만가지 행위 중에 생존과 관련된 경제의 생각을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대학교수는 이런 생각을 인간에 대한 이타적 마음과 맹자의 측은지심과 같은 심정이었을까? 아니면 재벌이 되겠다는 이기심 때문일까? 그것 참 궁금하다.
근대에 Economics를 생존학이라고 부르다 경제학이 되었다는 말을 되새겨보면 생존은 당면과제가 아닌가? 오늘 하루 모두가 이 생존의 당연과제 앞에서 열심히 또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마주하니 말이다.
"신은 인간에게 이기심을 주었고, 인간은 그 이기심에 의해서 자기의 행복을 추구한다"라고 전재했다. 그럴싸한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말이 인간의 오만 잡다하고 상식 수준과 상식이하 주준의 행위를 다 설명하기엔 뭔가 아쉽다. 그 아쉬움만큼 인간 안에 우리가 논리라고 부르는 것 외의 것들이 존재하고, 경제와 국부도 그만큼 오차를 발생한다. 그것이 나락으로 가는 재앙이거나 유토피아에 근접하는 위대함이나 마찬가지다.
"인간은 타인의 운명에 관심을 갖는데, 그 관심이 동감과 동정이다. 그것이 도덕의 실체다"라고 한 부분까지 새겨보면 현대 사회의 경제가 이기심을 바탕으로 필요한 부분만 딱 떼내어 사용하는 탐욕의 틀을 만든 것일까? 아니면 부작용이 많은 뽐뿌질을 한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이런 중요한 사실을 필요를 넘어 욕망의 단계에 접어들면 잊어버린 것일까?
지루하기가 그지없는 책이지만 이기심, 분업, 임금, 생산성, 가격으로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을 바라보고, 그에 관련된 깊은 사고를 하는 과정을 느낄 수 있다. 노동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돌아보면 탁견이란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밥을 먹기 위해서 숟가락을 드는 일은 당연하다.(햄버거 통닭처럼 손, 포크로 따지지 말자). 그런데 왜 숟가락을 드는가? 숟가락을 효율적으로 드는 방법, 숟가락을 들 때 들어가는 에너지의 총량과 그 에너지의 총량을 발휘하기 위해 섭취해야 하는 음식물의 양은 얼마인가? 생존을 위해 필요한 활동임에도 숟가락을 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을 상황과 관련 없이 특별하게 심취해서 하는 하는 또라이들은 많지 않다. 일상에서 접하는 현상을 단계별로, 그 단계에 있는 사람들, 범위의 확장까지 폭넓게 자료를 찾아보고 깊이를 더해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애덤 스미스가 수학자라면 간단한 곡선으로 설명할 부분을 길고 긴 복문과 하나의 전제에 대한 설명을 끊임없이 달고 있는 이 책을 보면 본인도 경을 치면 하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깔끔한 곡선보다 그런 반복적이고 온갖 설명을 보다 보면 그것은 이기심을 통해 지적 만족을 위한 자기 행복일 수 있다기 보단 현상을 알아가는 지식인의 즐거움에 가깝다.
노동의 가치에 대한 부분, 재화가 임금과 이윤으로 이루어진다는 설명을 보면 애덤 스미스도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많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잉여와 착취란 부분은 벌써 애덤 스미스가 충분히 설명한 것이란 생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요 부분을 깊게 파서 정리한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의 이 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숟가락을 제대로 얹은 것이다. 또 다른 불가능은 인간의 이해를 바탕으로 그것이 국가와 사회적으로 실현하기에 인간이 형편없다는 전제 아니 애덤 스미스의 말처럼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사실에 공감을 갖게 된다. 사실 나는 이기적이라기보단 고대 철학자들의 말처럼 드럽게 게으르다는 사실, 요즘 책 제목처럼 가끔 제정신인 사람들로 인해 머릿속의 상상이 현실로 고착하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되새겨 본다.
인간을 바꾸는 것은 어렵다. 단기 제도, 문화, 법률로 인간 활동의 범위를 설정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원전의 기록들을 봐도 인간은 틈나면 인간의 만든 제도, 문화, 법률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다 지옥행 익스프레스에 승차하기도 하고, 좀처럼 열리지 않는 광명의 틈을 열어 체치는 위대함도 보여준다. 무신론자에 가까운 내가 '아니 전지전능하신 분들이 이런 참사와 대박이 나올지 몰랐나?? 아니면 누굴 잡을라고 이런 설계를 한거야? 재밌냐? 나랑 무릎 맞추고 한 땀 한 땀 따져봅시다(사실 님이 해보셔. 너 같으면 하겠냐? 재미냐!?)'라고 하고 싶은 상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이기심이 꽉 차서 이런 용도와 관점으로 유신론자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어쨌든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노동의 가치는 리카드로의 비교 우위처럼 전체의 효용 증대를 위해서 분업되고, 분업의 생산된 재화가 효용의 만족을 위해 자유롭게 이동해서 그 효용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아주 이상적인 말을 하고 있다. 하긴 데이비드 리카르도로 이걸 보고 고전 경제학의 기둥을 세운 사람이긴 하다. 이러다 대학 때 보면 헥셔 올린 곡선, 게임이론 기타 산수가 많이 나오는 경제학 분야가 생각날듯하다.
그보단 내겐 그 인간 세상에 아주 이기적인 놈들이 출몰해서 세상의 빌런, 먹튀가 되는 놈들을 어떻게 방지할 수 있는가? 그들에의 효용 만족을 위한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들도 먼저 가신 양반들이 좀 해놨으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쓸데없는 망상을 한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란 정화작용이 시장에서도 세상에서도 유효한 것처럼 해놨는데.. 다들 항상 내가 개고생을 할 때만 잘 동작하지 않아 보이지 않나? 하하. 'Invisible hand'이 상징적이고 고상한 표현이 내겐 '나도 잘 모른다', '이건 그 시대를 사는 놈들이 해결해야지',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런 소리처럼 들리냐? 갑자기 사마천의 기록처럼 법과 제도의 현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법과 제도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인간 군상들의 탓이란 말이 생각난다. 경제는 다른가? 그렇게 보면 이기심이 맞는구먼..
경제학 원로,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국제경제학 배운 지 하도 오래돼서 이젠 그만 뇌를 못살게 굴기로. 뵈는 것도 없는데 정신까지 사나워진다. 아마 기억이 가물가물할 것 같은 엉아한테 질문이 몇 개 해봐야겠다. 매일 국부론도 안 읽고! 멍충이라고 못살게 구는데 이기심을 바탕으로 효용을 아니.. 즐거움을 바짝 올려보겠어.
#애덤스미스 #국부론 #경제학 #생존학 #독서 #맛이간다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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