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도착하자마자 152유로나 관세를 냈다. 귀찮아서 견본등 서류 준비를 안 했는데, 젊은 처자 세관원이 바가지를 닦달 긁어서 과금을 했다. 어차피 봐줄 기세도 아니라 독일에 기부금을 냈다고 생각하는 것이 속 편하다. 그런가 하면 잔돈이 없어서 화장실 앞에서 만나 왠 독일 아주머니가 불쌍한 듯 보더니 쿨하게 1유로를 주셔서 고맙기도 하다. 일 때문에 돌아다니지만 세상 사람들을 통해 즐거움과 난감함의 굴레를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세상 뭐 다 그렇지. 놀랍지도 않다고!
출장 오기 전부터 A고객사는 반응이 긍정적이다. 필요한 사항이 생겼다는 신호에 가깝다고 느꼈다. 문제는 먹기 좋게 털을 뽑는 것이 아니라, 아예 시작부터 뜨거운 물을 붓고 시작하겠다는 기세다. 보통 이렇게 공격적이면 조금 거부감도 있는데, 보면 볼수록 해보겠다는 의지로 느껴졌다. 이런 일은 여러 상황과 맥락 속에 느껴지는 것이라 논리적으로 또는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작년엔 얼음공주처럼 표정 없이 보더니, 미팅을 마치고 환하게 웃어주는 담당자를 보면 여러 생각이 떠오른다. 뭔가 도움이 되겠구나, 우리가 작년보다 또 작은 한 발을 내딛고 있구나, 고객사는 또 얼마나 복잡한 이슈가 있을까? 물론 우리도 사업이 Kick-off 되겠구나 하는 기대감도 생긴다.
하나를 마무리하고 B 고객사를 방문했다. 업계 1-2위를 다투는 고객의 커뮤니케이션 윈도는 물샐틈없이 철통수비를 한다. 한 1년 가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료 업데이트, 프로모션을 정기적으로 한 결과일까? 아님 운수대통인지 재난인지 모르겠지만 문의 더 활짝 열렸다.
국내 대기업도 해외도 마찬가지다. 열기 어려운 문의 안과 밖이 다르다. 문안으로 누굴 들이는 것을 조심하지만, 들이고 나면 마주하는 수준과 시스템이 전혀 다르다. 안과 밖이 같다고 무조건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안과 밖을 모두 수준 높게 관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나 협력사를 대하는 태도와 예의를 보면 기업 문화를 가늠할 수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문화가 곧 경쟁력의 기반밑에 구축되는 탄탄한 기본기다.
고객들은 협력사를 만나면 누구랑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취조를 한다. 정작 본인들은 내가 뭐하는지 잘 안 가르쳐준다. 내 입장에서 A나 B나 족치긴 매한가지라고나 할까? ㅎㅎ 동네만 말해도 어디 다녀온 지 알 정도로 이 동네는 그렇다. 웃으며 직접 물어봐도 되잖아?라는 말이 올라오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B사는 오기 전부터 여러 가지 자료를 내놓으라고 난리 더니 벌써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있다. 고맙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프로젝트에서 시간관리가 가장 어렵다. 미래는 생각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PDCA, AGILE을 말하지만 이 속도가 붙는 것은 무엇이 얼마나 준비되었는가의 문제다. 무엇을 준비하냐고? 막연해 보이지만 내가 있는 분야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이다. 당연히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proto type이 바로 진행 결정이 되었다. 꿈에 그리던 B사와 일이 시작되다니. 다른 분야에서 B사와 일해 본 경험으로는 정밀한 현타가 자주 왔었는데 이번에 왠지 기부니가 좋다.

마지막으로 C사는 그 동네에 있어서 막무가내로 들렀다. 관련 사업은 지사에서 하고, 아시아에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본사 방문을 했는데 좋은 사람들과 즐겁고 여유롭게 미팅을 했다. 다음 달에 지사에 갈 예정인데 여기도 한껏 기대가 된다. 규모가 커서 기대가 되는 경우가 있고, 사람이 좋아서 하고 싶은 경우가 있고, 마지못해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인생 새옹지마기도 하고, 또 내가 어떻게 만들어가는가에 따라 좋은 결과와 재앙이 따른다. 하지만 좋은 결과는 항상 좋은 시작에서 출발한다. 내가 잘 모를 뿐이지. 이동 중에 찬란한 햇빛이 참 좋아 보이니 너무 업이 되었나? 죄다 풀밭, 언덕도 아름다워 보이니.

돌아오는 길에 성 근처에 갔다. 무리해서 올라가지 않기로 했다. 젊은것들은 좀 올라가지 애들이 나랑 똑같은 태도다. "니들 운 좋은 줄 알아.. 500년 전에 태어나서 귀족이 아니라 평민이나 노예면 이거 만들어 하잖아? ㅎㅎ"라고 했더니 다들 좋다고 웃기 바쁘다. 이런 상상을 안 하나??

독일을 뒤로하고 열정과 탱고의 나라 에스파뇰로 향한다. 비행기에 프리미어 리그 팀 마크가 보인다. 예전에 저 팀이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한참 하위리그 팀이었는데.. 하긴 그건 20세기 일이다. 지금은 또 다르지 헐~

스페인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줄이 가장 길게 늘어선 이탈리안 식당으로 가기로 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사람보고 줄 서면 무료하니 쇼핑몰 구경이나 하고 오랬더니 치토스를 사 왔다. 아이고.. 이 녀석 얼른 장가를 보내야지. 주인님 찾아서 종살이를 시작해야 정신을 차리지. ㅎㅎ

베이비가 연락이 와서 출장이 잘 되었다고 했더니 건강 잘 챙기란다. 앞에 동그란 빈 접시가 있어 얼른 사진을 찍고 글자를 남겨줬다. 얼라들이 나중에 은퇴하고 뭐 할 거냐고 묻는다. 담배도 피우고 적합하지는 않은데, 유치원 하면 좋겠다고 했다. 애들 노는 거 구경만 해도 얼마나 즐거운가? 그랬더니 또 본사에서 베이비들을 늘려서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이들 유치원을 마들고 있다. 말을 말아야지.. 아이고 내 팔자야.


밤톨같이 생긴 애가 열심히 음식을 날라준다. 영어로 물어봐도 한참 듣다 보면 스페인어다. ㅎㅎ 환한 웃음과 태도는 동서양을 떠나 진심을 느끼게 해 준다. 독일에서 볼로냐 스파게티가 아주 꽝이었는데 그걸 주문하기로 했다. 맛은 아주 괜찮다. 독일보다 가격도 10%는 저렴하다. 열정의 나라라고 하지만 내겐 슬로운 문화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호텔에 돌아와서 남은 업무를 정리했다. 아니 꼭 출장만 가면 메일이 2배로 폭주하고, 메시지가 2~3배로 폭증하는 패턴이 반복된다. 아니 나한테 왜 그런 거야? 하긴 경노사항이 없는 사무실 막둥이는 나보고 팔순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둥, 출장을 자꾸 가라는 둥 내가 살 수가 없다. 업무정리를 하고 잠들었다. 유럽시차는 관심이 없고,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할 일해야 할 땐 일을 하는 중이다. 시차적응 옛날에서 신경 썼지..
아침을 먹으러 갔더니 주말이라고 8시에 열어준단다. 독일도 7시던데 역시나. 다시 방에서 미적거리다 식다에 갔다 깜짝 놀랐다. 어마어마한 한국 아주머니들이 모여계신다. 중국 아주머니들도 있는데 여기가 5명 정도면 한국 아주머니들만 50명은 되는 것 같다. 배고픈데 기다리다 지치겠다. 얼른 커피부터 뽑아 들고, 아주머니들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샐러드 대신 과일부터 먹고, 계란보단 빵부터 ㅎㅎ. 그냥 줄을 섰던 미국 가족들 30분은 기다린 듯.
중요한 일은 거의 정리했으니 오늘은 읍내에 가봐야겠다. 애들이 가족성당을 가보겠다는데. 하긴 나도 스페인은 오랜만이다. 오래전 공항 프로젝트하던 생각이 난다. 늙내벼. 얼른 씻고 나가야겠다.
#로드투어 #유럽 #해외출장 #천상잡부 #khori #해외영업
'천상잡부(天上雜夫)_ 사업관리 시즌 2 (해외영업 시즌 1)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집에 오자마자 누웠다 일어나니 또 가자고? 아이고. (1) | 2025.05.16 |
---|---|
4월은 가고 잔소리 없는 날 5월 4일은 오고 출장까지 (0) | 2025.05.03 |
Trump obsession 지피지기가 안되면 위태롭다 - 미친 자가 신념을 가지면 끝까지 말리기 어렵다. (3) | 2025.04.19 |
힘센 거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 (0) | 2025.04.13 |
누적된 향유가 떠나고, 누군가 price를 알게 된다 (0) | 2025.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