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특유의 꼼꼼함과 집요함, 그리고 끈기를 대하고 나면 심신이 피곤해진다. 모든 미팅을 마치고 도쿄타워에 가보기로 했다. 20여 년 전 처음 일본 오사카에 갔을 때엔, 수리공사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 이후로 기회도 없었다. 동경에 와서는 공항, 호텔, 지하철, 고객 사무실이 전부였다. 그리고 무려 20여 년이 지나서 다시 가는 일본은 아주 낯설다. 그런데 지금도 도쿄에 오면 공항, 호텔, 지하철, 고객 사무실의 셔틀은 변함이 없다. 한 가지 더 늘어난 것이라면 장난감 가게를 출장 중에 한 번은 들러본다는 점이다.
사장님까지 등판하시는 미팅은 사안의 중요성과 심각성을 볼 때 부담스럽다. 하지만 노련한 경영자, 관리자들의 목표의식, 접근방식을 배울 수 있는 기회다. 정주영의 말처럼 "해봤어?", "물어봤어"라는 짧은 질문이 많은 사람들을 당혹하게 한다. 하지만 일을 처리하기에는 short-cut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가 하면 계속 계약서의 조문 하나하나를 두고 법적인 권한과 정책의 조율을 하는 과정은 끈기가 필요하다. 차라리 우리가 갖고 있는 제품, 솔루션을 프리젠테이션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이렇게 지칠 때 우연히 들러보는 장난감 가게는 사람을 즐겁게 하는 것이 존재한다. 어려서 상상하던 꿈을 생각하며, 현재로부터 유체이탈이 잠시 가능하기 때문이다. 철은 너무 들어도 문제고, 너무 안 들어도 문제다. 그렇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무엇인가는 보기만 해도 좋다. 한참 레고질을 하고, 집에 벽 한쪽이 먼지가 쌓여가는 부품들과 모델들이 있지만 이제는 조립보다는 관람의 재미가 있다. 새로 나온 아폴로를 만지작 거리며, 사라는 응원과 사고 싶은 마음 사이에는 언제나 공간의 압박이 심하다.
이럴 때에 눈요기로 둘러보는 장난감 가게는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쉼터이다. 현실성 없는 만화 속의 몸매를 현실로 갖다 놓은 모형이 최근에 다시 본 에반게리온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의 문화로 자리 잡은 만화, 캐릭터 상품들이 세밀함의 문화를 만나 더욱 세련되게 존재한다. 보는 것에 마음을 두고 즐기는 것만으로도 참 좋다.
이렇게 잠시 들러 본 장난감 가게를 나와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었다. 나이를 먹어도 한참 동안 걷다가 먹는 군것질은 참 좋다.
출발하는 날엔 비행기 시간에 맞춰 하네다 공항에 간다. 라운지에 가서 노닥거리는 사이에 키티가 있다. 종이공예로 만든 커다란 키티를 보면 그 정성이 정말 대단하다. 사진을 이렇게 저렇게 찍어보는 아저씨가 주인장도 신기한가 보다. 옷의 재질과 마무리까지 명품임에 틀림없다.
BB-8 레고가 새로 나왔던데 레고는 보기가 힘들다. 작은 드로이드 모형들이 많다. 지난번엔 BB-8 작은 모형을 사나 샀는데, 좀 더 세밀하고 큰 녀석이 있다. 가격이 어마어마하다.
조금 저가형 모델도 있는데 BB-9F는 없다. 이럴 때는 사람인지라 쉼터에서도 갈등이 생긴다. 스타워즈라는 명작은 벌써 50여 년의 흐름이 있다. 우리 집 청소년들은 Marvell을 좋아하지만.. 그래도 어려서 녀석들을 안고서 매주 한 편씩 보던 Harry Portter는 아직도 좋아한다. 지팡이를 또 사달라는 것을 보면 그렇다.
한번 경주를 해 보고 싶다. 하지만 멋진 F1 경기장은 눈요기만 하게 된다. 공항 안에 이런 것을 만들어 두다니 대단하다.
훨씬 더 많은 magnet이 있지만 냉장고에만 붙이면 떼 버리시는 엄니 탓에 조금씩 대문에 붙이고 있다. 이번엔 원피스와 일본 신사 문짝이 하나 생겼다. 다음 주에 또 돌아다니면 몇 개가 생기겠다. 머리는 복잡하고, 마음은 아프기도 하고, 몸은 피곤하고, 주변의 기대도 있고 참 어려운 시절이다. 그러나 잠시 장난감 가게를 둘러보면서 시간의 치유와 행복한 기분을 잠시 느껴보는 여유는 놓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