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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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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hori(高麗) 2014.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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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서 들르는 곳이지만 누군가에겐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그 치열한 삶의 장을 놓고도 사회적인 논란이 최근 대법원의 판단으로 분분하다. 세상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는 것은 세상에 아직도 유효한 두 축이 자본과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 문제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완전한 정답은 없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서 지혜로운 답을 내는 것이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서 대학시절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되었던 파업전야라는 독립영화가 생각난다. 험란한 제작환경이기에 그 영상적 가치는 매우 낮지만, 시대적 필요를 그려낸 영화이다. 그런데 20여년이 지난 지금 본질적으로 같은 주제의 영화가 다시 나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볼만 핟. 그 시대의 그 현장의 주역이던 일명 386세대가 사회의 핵심 의사결정층이 된 이 시대에 이런 잊혀진 주제가 다시 공론화 되는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시대를 이어서 보면 영화화 될 수 있는 환경이라도 감사해야하는가? 아니면 폭력적 방법이 고소와 법의 문자를 피하는 교묘한 방법이 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이젠 머리를 써서 대응하며 더 잘 참아야한다고 말해야하는가? 아니면 어차피 세상은 그런 것이니 각자 자기 앞가름을 잘 해나가야하는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세상의 불균형은 잘 개선이 어려운 것인가?  시대를 생각하면 영화에 출연한 많은 배우들에게 고마워해야하는가?


사실 고마워해야한다. 윤택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 굳이 이런 작품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배우들이 참여해 준것은 그렇다. 그리고 배우중 최과장(이승준)역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우리는 내 일이 아닐때 외면하고, 막상 내 일이 되었을때 손을 내밀게 되어있는 이중 잣대에 익숙하다. 세상의 많은 사람이 그렇다.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 없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의 소신, 더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게 살아가는 길에 반하는 것이 비록 법의 교묘함으로 합법의 탈을 쓰더라도, 과감하게 도덕적 비난과 그 지적을 서로 수용할 수 있어야 하기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쁜놈보다 나쁜짓은 절대 되돌릴 수 없다. 과거의 사실은 변하지 않고 오로지 그 짓을 덮을 선행을 하는 길이 최선이다. 


최과장을 통해서 내가 집에 돌아오며 내 집의 아이들에게만이라도 부끄럼이 없는 내 삶을 그리는 이유다. 그렇게 밖에 살수 없는 처지가 어쩌면 더 불쌍하고 초라한 삶이다. 그렇다고 동준처럼 정의롭고 투사와 같은 의지를 갖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누군가 힘들때 손을 내밀어 주진 못해도 외면하지 않는 삶정도는 살아가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도 세상은 쉬 변하지 않고, 언제가 그 어려움이 또 나의 것이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식이 쌓이고 고도화 되가면 지혜는 간데없고, 권모와 술수만 난무해 간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것은 계량화의 수준이 턱없이 부족한데 이럴때만 산수의 귀재들이 되는 현상이 삶에서 큰 뺄셈이 된고, 그것이 대단이 아쉬운 오늘이 아닐까한다. 슬프고 속상한 현재의 한 단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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