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의 휴가다. 잦은 출장과 일로 휴가를 제대로 쓸 수가 없어서 금년엔 기필코 쓰려고 했다. 주인님한테 "애가 고3인데 어딜 놀러가?!"라고 혼만 났다. 전 국민이 함께 쉬는 7월 마지막 주, 그러니 집이나 잘 보고 미니멀리즘에 따른 삶을 잘 즐겨보려고 했다. 그런데 참 일이 많다.
휴가 내내 전체 조직이 하반기에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 각 팀장들의 장점을 어떻게 alignment 해야하나의 생각이 많았다. 불혹(不惑)이란 말은 그 나이가 되면 미혹되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따라서 움직인다고만 생각해왔다. 하지만 요즘은 다른 의미로 해석이 된다.
'사람도 닦아 써야 한다'와 '사람은 닦아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불혹이라는 말은 삶의 딥러닝이 되어서 닦아도 변하지 않는다는 말로 해석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람은 그릇에 맞게 쓰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뻗기시작한 가지가 그 방향을 바꾸지 바꾸지 않는 것같은 생각이 든다. 내 경험을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30대 중반까지는 가능성이 폭증한다. 그리고 불혹이란 나이에 다다를때에 여획((女劃, 스스로 한계를 긋는다는 의미)을 하는 사람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탈 방법을 끊임없이 찾는 사람으로 나뉜다. 불혹이후에도 이런 심각한 변화가 존재하는 사람은 죽음의 문턱에 한 발을 걸쳤던가 아니면 구태의 자아가 번개나 도끼맞은듯 스스로 자각을 한 경우다. 가능성은 존재한다. 확률은 낮다. 스스로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도전해 본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도 관성의 법칙은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내가 다 맞는게 아니지라는 생각도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다들 시간이 있으면 할 수 있다고 한다. 인생에 넉넉한 시간은 없다. 그 시간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고로 나는 그릇에 맞춰쓴다를 주요 선택으로 활용할 수 밖에 없다. 오늘 시간이 없어서 안하는 녀석이 내일 시간이 차고 넘쳐도 하는 경우는 없다. 그래서 시스템이란걸 만들어서 사람을 갈아 넣는 것이다.
몇 일전 동종 업종의 사람이 "직원은 하던 일만 하고, 만들던 제품만 만들고, 만나던 고객만 만나며, 경영자도 하던 일만 하는데 변화가 있을 수 있는가?"라는 자기 반성의 글을 SNS에 올렸다. 이 중에 하나만 고착되도 변화에 대응하고 발전하는 역량에 지장이 생긴다. Alignment도 중요하고, Agile을 통한 지속적인 검증이 필요한 시대다. 나 스스로도 그러고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본 휴가다. 아니다 다를까 휴가인데 전화가 온다. 별일도 아니다. 7월 말까지 하기로 한 일들은 들뜬 마음때문인지 깜빡증이 생기는 나이들 때문인지 빼먹고 한산한 휴가때 하소연을 한다. 내가 없어도 움직이는 조직을 지향하는데 내가 문제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휴가가는데 계약서 검토 의뢰를 마무리 해줬더니 써달라는 녀석까지... 진짜 다음생엔 선계(仙界)이상에 머무는 쿠폰을 뽑던지 해야지.. 하계(下界) 두 바퀴는 반댈세.
종종 나이들어서 뭐 할까를 생각할 때가 됬다. 원래 나이먹으면 유치원 옆에 커피 가게에 절반은 레고로 채워두고, 절반은 책으로 채워두고 손님은 오면 좋고, 안 오면 어쩔 수 없고로 생각했다. 벌써 그런 생각을 한지 15년이 되어간다. 그건 꼭 하고 싶은데. 아이들이 생기고 손자, 손녀가 생기면 같이 레고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런데 이 달부터는 온라인 MBA를 듣고 있다. 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이라는 말을 다시 보고 한참 웃었다. 세상에 마스터가 얼마나 많아서 이렇게 난리인가? 텔레비전 안 보고, 일하고, 책보고, 영화보고, 요즘 생존 운동을 추가해서 압축한 심플한 삶이 재미가 없어서 그런것 같다. 수업을 들어보면 상당 부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온라인이라 기고만장한 자세로 들어도 된다. 지식이 부족한 분야는 정좌로 들어야겠다. 주인님이 제일 좋아하는 감자튀김을 갖고 깔짝깔짝 약을 올린다. 메일함에 보니 블로그를 마구 퍼가던 취업 사이트에서 멘토링 제안도 왔다. 허용을 해줬지만 가끔 그것이 타인에게 해가 되거나 폐가 될까 걱정을 한다. 이런 제안을 보면서 나에게는 "누구 인생을 조질려고?"라는 질문을 한다. 사실 열심히 해도 주변에서 "아주 한가하구나?"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 뻔해서 피하게 된다. 저번에 강의하고 강의료는 받기도 전에 우리 본부 얼라들이 고기집 잡고 기다리던 걸.. 이걸 우리 팀장 팀원들 표현으로는 "앵벌이"라고 한다. ""요즘 왜 안하냐"고 해서 "당분간 앞으로 안 할꺼다"라고 오래 전에 대답해줬다.
잠시 영화도 보고 노닥거리는 휴가 막판에 또 일이 터졌다. 작년에 남북한 긴장고조시에는 전쟁나면 대체공급방법을 제안해달라는 전범국 요청이 황당했었다. '후쿠시마가 다시 터지고, 후지산이 터져도 납품 딱딱 받고, 입금은 정확하게 제깍제깍 하라고 해라'라고 했더니 사쪼가 방문을 했다. 그런데 농담인 줄 알았던 이야기를 진심으로 죽자고 하길래 '오덕의 나라', '또라이의 천국', '소심증과 면피정신의 민폐 셔틀국'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강박관념과 컴플렉스가 많은 나라다. 기술은 장인을 병신바보으로 만든다. 그렇게 인간의 능력을 다른 곳에 쓰도록 유도한다. 기계란 사람이 하는 일을 대체하기 위해서 만든다. 그런데 가끔 이 나라 검사자들을 보면 10원짜리 만들면서 장신 정신을 갖고 10000원의 노력을 들인다. 그렇게 해서 10원에 팔껄 잘 해야 10.1원 받는다. 생산성 효율과 만족의 상관관계도 한계가 있다. 이런 엇갈린 쌍곡선이 임하룡 다이아몬드 스텝이나 '내가 하리?'와 같은 유머를 양산한다. 그런 시대의 변화 감지력이 없다. 그 사고방식과 세밀함이 IoT같은 분야의 UX에 적용하면 참 좋을텐데 희한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그러더니 지난달에는 "일본이 한국산 수출을 금지하면 다른 나라에서 제조해서 우회수출을 확인해주세요?"라는 질문이 왔다. '엔간히 좀 하라고 그래라'라고 했더니 어제부로 100년 만에 맞짱 뜨자고 나오셨다. '엔간히 좀 해라' 이런 소리가 또 나온다. 일본 평균 나이가 47.3세정도 된다. 우리나라도 41.7세다. 나이 많은게 행복한 일이신 줄 아세요라고 할 수도 없고.
어제부터 백색테러로 인해 관련 품목에 대한 자료와 연관 산업을 찾아보는 중이다. 백색테러 셔틀로 우리도 규제를 하기 때문에 양쪽을 다 확인해야 한다. 영상장비 중 카메라는 분야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 sony를 사용한다. 일본의 수출 규제품목에 들어가 있다. 얼마전에도 상관도 없는 독일에서 ECCN(전략물자 관리 규정)을 계약서에 넣어와서 "너만 잘하면 돼요, 나는 너 한테만 줬어요"라고 회신을 줬다. B2B사업이기 때문에 B2C 관리는 본인들이 해야지 그걸 우리한테 문제되면 책임지라는 조항을 추가해서 황당하기 그지 없었다. 이 관리 규정이 원래 까다롭고 복잡하다. 국정원이 신고하면 경찰서에 가서 매번 사유서를 정리해야 한다. 경찰이 신고해도 국정원과 검찰이 다양한 서류와 경위를 조사한다. 잘못되면 대표이사 구속이다. 유럽은 노딜브렉시트로 또 하나의 유럽으로 거듭나려한다. 미중전쟁으로 핵심부품 미제교체 사업도 난리다. 거의가 사업진행이 결정난 상황에서 이거 안 해주면 땡깡피울꺼야 하면서 사람을 안달복달하게 하는 미국에게도 '엔간히 좀 하자'라는 소리가 나온다.
이런 혼란이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X표 받은 X세대들에게 이런 일은 가당치도 않다고 생각하고 그냥 열심히 해보기로 한다. 말해봐야 숨 딸리고 혀 떨리고, 386세대 어르신들 "야 나가봐~"밖에 더하겠어. 엔가히 좀 하자가 입에 오토매틱으로 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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