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옆 고로케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고 있다. 아직 먹지 않았다. 먹고 싶다. 속을 비워야 채울 용도가 생긴다는 쓸모를 생각하면 움직여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체중조절과 건강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면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마음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 이런 갈등을 매일같이 하며 살아간다.
올해 꼭 읽겠다고 다짐한 관자를 보면 입이 만화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걸 볼까 저걸 볼까 하다 두 권짜리 노자타설이 훨씬 두껍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먼저 선택한 이유다. 생각을 정리하려면 5백 페이지가 넘기 때문에 적어도 두 번에 나눠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 읽어본 김용옥, 최진석 교수님들의 경험을 볼 때, 그럴싸해 보이는데 한참 머리를 굴리며 봐야 하기 때문이다.
몇 페이지를 읽어가다 남회근이란 저자에 대해서 찾아보게 된다. 온라인의 다양한 글을 훔쳐보다 댓글에서 권장한 '남회근 노자타설'이란 강추의 말에 찾아보고 선택한 도서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다. 노자의 현묘한 말과 의미를 저자의 해석을 통해서 읽게 된다. 그런데 말과 예가 현재를 살아가는 아둔한 수준에 가깝게 씌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는 대개 노자를 보면 춘추전국시대 정도의 이야기들이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런데 당, 송, 명, 청의 사례를 통해서 실질적으로 노자의 사항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훨씬 가까운 역사과 구체적 사례는 큰 재미를 준다. 철학적 깨달음과 일상의 격차가 크면, 배워도 삶에 녹여내기가 쉽지 않다. 60페이지를 쉼 없이 읽어가는 동안 아직 '도가도 비상도'를 보지 못했다.
하지만 유교를 곡물가게, 불교를 잡화점, 도가를 약국으로 비유한 설명이 재미있다. 동시에 불교는 속세를 떠나고, 유교는 속세를 향하지만 도교는 들고 나는 것이 자유롭다는 비유도 재미있다. 노자, 예자, 손자의 계보, 장자를 높이 사는 평가도 재미있지만, 한비자의 법가도 장자의 소요유도 같은 뿌리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가에 따라서 움직일 폭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노자의 계보를 잇는 황로사상을 깊이 품고, 유교로 명분을 세운다는 것, 노자의 사상이 음모론이 아니라 음과 유의 술을 이용한다는 역경에 근거한 관점도 좋다. 나는 사람의 말은 두 가지 의미 이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듣는 사람의 해석처럼 다르고 관찰하는 사람의 해석만큼 다르다. 그러나 노자의 본뜻을 "인생이 자연스레 천연의 법칙과 서로 합치되게 하는 데 있습니다"라는 순리를 이루어 내는 과정이란 해석이 좋다. 일상의 조급함을 되돌아보고, 더 현명한 방법을 찾는 시간과 적절한 시간이란 문제 사이에서 헤매는 나에겐 생각할 점이 많아진다.
그런데 백거이의 칠언절구를 통해서 설명하는 방식은 재치 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고, 상황에 효과적인 것을 결정하고 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일관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격을 가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루쉰의 '관문을 나서며'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함곡관 관문을 나서는 노자가 통행증이 없어서 억지로 윤회에게 써 주었다는 긴 변명이다.
곧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의 강연이 시작된다. 고로케를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책을 다 읽으려면 갈길이 멀다.
#노자 #남회근 #노자타설 #독서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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