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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에 집중하는 나만의 방법
헤비메탈은 어쩐지 무릎 좀 찢어진 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흔들어줘야 줘야 느낌이 산다. 힙합은 헐렁한 바지에 현란한 색깔의 캡모자를 사선으로 쓰고, 오른손을 높이 들어줘야 스타일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클래식은? 클래식은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두 손을 지휘하듯 가슴께로 올린 후, 선율과 강약에 맞춰 ‘쏘울’이 가는 대로 양손을 휘저어줘야 맛이랄까!
애초에 내가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로 클래식을 접했다면, 어떤 연주법을 떠올리겠지만, <노다메 칸타빌레> 같은 교육용 드라마를 통해 클래식을 접했기 때문에(!) 극 중 치아키처럼 손짓을 해가면서 클래식에 담긴 느낌이나 감정을 따라가 본다. 지휘는 물론 엉터리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해본다면 알 거다. 고조되었다가 사그라지는 소리의 강약,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사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지휘를 해보면, 클래식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완전히 사로잡히지 않고서야, 가만히 음악에만 집중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클래식을 처음 들었을 때, 처음 도입부에 심취했다가도 금세 딴생각을 하게 되고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다.
최소한 나홀로 지휘를 하면서, 흡사 (이름만 들어도 멋있는) 베를린 교향악단, 시카고 교향악단의 지휘자라도 됐다고 상상해본다. (물론,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하는 게 좋다.) 오늘 듣게 될 두 번째 미션 곡은 나홀로 연주하는 데 제격이다. 또 내가 가장 많이, 가장 오래 지휘해 온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충분히 그럴만하다, 참 슬플 만하다’고 나를 위로했던 음악
때는 바야흐로 인생의 가장 어둡고 외로웠던 고3 수험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내가 애지중지했던 소니 CD 플레이어에는 놀랍게도 클래식 음반이 들어있기도 했는데, 그 CD의 제목은 “집중이 잘되는 음악”이었다. 그렇다. 고3 수험생인 나에게 클래식이란 가사 없고, 잔잔해서 나를 자극하지 않는 음악, 공부할 때 들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그런 음악이었다.
음반에 실린 건, 대부분 모차르트의 곡이었다. 모차르트로 집중하다가 좀 지루함을 느꼈던 나는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따위를 검색했던 것 같다. 그때 아……! 내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만났으니, 그게 바로 이 곡, 이름에서부터 비극적이고 비장한 정서가 묻어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더라. 게다가 (마이너 감성 울리는) C마이너!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외람된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생초짜 리스너는 이 음악을 이렇게 들었다. 1악장이 시작되면, 연주자가 굵고 진한 피아노 건반을 꼭꼭 누른다. 그건 마치 내 앞에 앉은 ‘친절하고 잘생기고 목소리도 좋은’ 의사 선생님이 내 아픈 데를 눌러보며, “여기? 여기니?”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커지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서, 의사 선생님은 놀랍게도 가장 아픈 구석을 딱 찾아낸다.
들으면서 읽으면 그 안마, 느낄 수 있다!
마 선배가 두 번째로 추천한 앨범, 아쉬케나지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이어 연주자는 자잘한 음들을 손가락으로 오르락내리락 쓸어준다. 피아노 건반을 안마하듯 좌르르 쏟아지는 음을 연주하는데, 마치 의사 선생님이 내 아픈 부분들을 주무르며 마사지해주는 기분이었다.
그 뒤로 오케스트라가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그건 비로소 내가 입을 열어, 어떻게 힘들었는지, 왜 그렇게 속상했는지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 아래 끊임없이 깔리는 피아노 반주는 ‘그래,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겠구나. 정말 속상했겠어.’라는 추임새처럼 느껴졌다. 중요한 건 안마가 아니라, 이 음악를 들으면 내 어떤 사연이라도 충분히 슬프고,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공감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거다.
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마 선배에게 고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선배, “음, 그렇게 듣는 것도 좋다. 그런데 이 음악도 베토벤의 <운명>처럼 별명을 가지고 있어. 네가 말한 그 안마 도입부 말이야. 사실 러시아 종소리를 묘사했다고 해. 러시아 사람들은 크렘린 궁전의 종소리를 떠올린다고 하지.” (아……! 선배, 러시아의 종은 이토록이나 애절하고 구슬프단 말입니까?)
“리히터의 음반이라면, 뒤쪽에 폭발하고 쏟아지는 부분에도 귀를 기울여봐. 이 음반은 유독 음반이 많고 난다긴다하는 연주자들이 녹음하는 라흐마니노프 2번 음반 중에서도 독보적인 연주니까. 리히터는 폭발할 때 폭발하고, 에잔할 때 애잔한, 밀당의 고수야. 특히 마지막 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끝없이 고조되면서 음이 쏟아지는 부분을 잘 들어봐. 다른 연주들하고 비교해보면, 남다른 전율이 느껴질 거야.”
많은 영화가 사랑하는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한 많은 민족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살다 보면 참 서러운 일 많이 겪는 한국 사람들이 러시아 음악 특유의 비극적인 정서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러시아 음악과 금방 친해진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사람들이 이 음악을 들으며 편안함을 느끼는 건, 아까 말했듯이 이 음악의 비극적인 선율이 나만의 슬픔에 충분히 공감해주고, 감정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일까? 이 곡은 영화 음악으로도 많이 쓰였다.
가장 잘 알려진 영화로는 호주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샤인>이다. 영화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주인공 데이비드가 ‘완성해야 하고 이겨야 하고 넘어서야 하는’ 곡이다. 천재 음악가의 비극적인 운명의 예고편 같은 역할을 한다.
또 데이비드 린의 <밀회>라는 영화에 쓰여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밀회>는 평범한 가정주부 로라가 우연히 기차역에서 의사 알렉 하비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양심의 가책과 열정 속에서 방황하던 로라는 서로 사랑하지만, 각자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처음 만났던 기차역에서 이별한다.
아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에서도 음악은 사랑의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느낌을 한껏 고조시킨다. 장엄하게 흐르는 배경음악 위로 로라의 이런 대사를 읊조려보면, 더욱 분위기가 와 닿는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어, 행복도, 절망도, 인생도,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아. 오늘 일은 신경 쓰지 않을 때가 올 거야. 아니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언제까지나, 내가 죽는 그날까지…….”
로라가 알렉과 이별하는 장면,
그리고 남편에게 돌아가 안기면서 끝나는 영화의 라스트 씬이다.
5분 40초쯤에 남편이 “돌아와 줘서 고마워”하고 안길 때
흐르는 음악 속에는 슬픔, 안도, 비극, 사랑……다양한 감정이 뒤섞여있다.
이 음악이 가장 흥미롭게 쓰인 영화는 마릴린 먼로의 <7년 만의 외출>이다. 마릴린 먼로가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뉴욕 지하철 환풍구 위에 서서 하얀색 드레스를 요염하게 날리고 있는 장면으로 유명한 그 영화 말이다. 리차드는 7년 만에 가족들을 피서지에 보내고, 아름다운 금발 아가씨와 바람을 피워보려는 꿈에 들뜬다. 대담하게도 윗집 아가씨 마릴린 먼로를 집으로 초대하는데, 그때 그녀에게 이 곡을 연주해준다.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있는 거잖아요, 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잡고 아가씨를 유혹할 요량이었으나, 마릴린 먼로는 슬픔 따위는 관심없는 낙천적이기만 한 여자였다. 리처드의 작전은 실패했지만, 누군가를 유혹할 때 라흐마니노프도 꽤 잘 어울린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도쿄타워>(2004)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 <히어 애프터>(2010) 등 최근까지도 영화 속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비극적이거나 극적인 순간에 호출된다. 그의 음악이 다른 클래식에 비해 대중성을 띄고 있는 것도 영화가 그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지금도 상영 중인 뮤지컬 <삼총사>에서 아라미스의 비극적인 옛 과거가 펼쳐질 때 배경음악으로 깔린 곡도 이 곡이었다. 알고 들으면 더 반갑다.
“그거 알어? 에릭 카멘의 ‘All by myself’라는 곡 있지? 영화 <브리짓 존슨의 일기> OST로 더 잘 알려진 그 곡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한 부분을 따서 만든 거야. 2악장에서 천천히 오케스트라 반주가 흐르고 피아노가 연주가 나오지. 그리고 이어 플롯과 클라리넷이 멜로디를 연주하잖아. 이 부분이 All by myself의 도입부 멜로디로 쓰였어. 라흐마니노프는 1900년대 초반에 활동했으니 비교적 현대 작곡가로 여겨지는데, 지금 이 시대에 활동했어도 정말 인기 많은 작곡가였을 거야. 그치?”
큰 손으로 유명했던 거구의 피아니스트
“선배, 이 사람은 말이죠. 참 섬세하고, 예민하고. 격정적인 사람이었나 봐요. 마치,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처럼.”
이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폭풍의 언덕이 생각난다. 소설은 차지하고라도,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대고,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위태위태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폭풍의 언덕 말이다. 클라라와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린 사랑의 배경음악으로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나는 선배가 보내준 라흐마니노프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손이 크기로 유명했던 라흐마니노프 [출처: Wikipedia]
헝클어진 머리에 창백한 얼굴, 나약하거나 사악해 보이는 눈동자의 히스클리프를 상상했건만, 실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190cm의 장신에 거구였다. 흡사 영화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을 연상할 만큼 이목구비도 뚜렷뚜렷했다. 그는 체격도 컸지만, 그보다 손이 크기로 유명했는데, 한꺼번에 건반 13개를 짚었다고 한다.
“그가 작곡한 곡들은 연주가 만만한 곡이 아니야. 이 곡만 하더라도 여러 개의 건반을 오가며 화음을 넣고 있지?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그 당시 뛰어난 피아니스트기도 했어. 엄청난 테크닉을 요구하고 건반을 질주해대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을 그가 만들었고, 라흐마니노프만이 편안하게 칠 수 있는 곡이기도 했지.” (어지간했으면 <샤인>의 데이비드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다가 미쳐버렸을까!)
“그런데 이 곡을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해. 생각해봐. 그 거구의 몸으로 요렇게 웅크리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던 거 아냐.”
연주자로도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그가 직접 연주한 앨범도 있다. 다만 음질이 좋지 않다. 선배가 권해준 피아니스트 리히터의 곡과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자글거리는 잡음 속에서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는, 빗속에서 비에 쫄딱 젖은 남자가 한걸음 한 걸음씩 간신히 걸음을 떼는 느낌을 준다. 내가 들어왔던 ‘안마 연주곡’에서의 부드러움 보다는 거칠고 단호한 느낌이다. 어때요 선배, 맞나요?
“음악 감상에 맞고 틀리고 답이 어디 있어? 이렇게 살짝 다른 느낌을 스스로 찾아내고, 그 중 더 마음에 끌리는 걸 골라서 듣는 거지. 하나를 계속 듣다 보면 또 다른 느낌의 연주를 듣고 싶어지기도 하거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이 우리를 위로해주는 까닭은
“그런데 실제로 슬픈 일이 있어서 이 곡을 쓴 걸까요? 꼭 실연당하고 쓴 곡 같아요.”
“사연이 있는 곡이지. 라흐마니노프가 처음으로 교향곡 1번을 발표했는데, 당시에 굉장히 혹평을 받았어. 그때 지휘를 맡은 글라주노프의 지휘가 엉망이었다고도 해. 선배 작곡가가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일곱 가지 재앙 중 하나에 속한다’고까지 말했대. 좀 충격이었겠지? 당시 라흐마니노프는 24살이었는데, 그 이후로 우울증을 앓게 돼. 연주는 했지만, 작곡은 더 이상 할 수 없었지.
그때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상담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 박사는 라흐마니노프한테 최면 치료를 했던 모양이야. ‘나는 다시 곡을 쓸 수 있다.’ ‘그건 최고의 곡이 될 것이다.’라고 암시와 최면을 걸었대. 그때 쓴 곡이 이 피아노협주곡 2번이야.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헌정하기도 했어. 아무래도 그간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 마음 깊숙한 우울이 곡에 고스란히 표현되었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위로가 필요할 때 이 곡을 들으면 편안해지는 게 아닐까 싶어.”
이 곡을 통해 라흐마니노프는 우울과 무력감에서 벗어났다. 내가 슬프고 우울할 때 이 곡을 들으면, 그러니까 140년 전에 살던 한 작곡가의 슬픔과 우울과 만나게 되는 거다. 우울이 우울을 알아채고,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의 음악이 더욱 비밀스럽고도 다정하게 느껴진다. 초반에 언급했던, 슬픔에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 같다던 감상도 근거 없는 느낌은 아닌 셈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담긴 우울한 정서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 때문이기도 할 거야. 태생은 귀족 집안이었지만, 어린 시절에 집안이 몰락해 귀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어. 장학금을 받아 음악원에 들어갔고, 거기서 일찌감치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지만, 아까도 말했듯 야심차게 쓴 교향곡 1번이 실패하면서 3년이나 우울증을 앓았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쓰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났지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그때 목숨을 걸고 러시아를 탈출해. 그때부터 유럽을 떠돌게 되는데, 내내 러시아를 그리워하다가 1943년, 70세 나이로 미국의 버버리힐즈에서 타계했어.”
나는 사랑이 있던 자리에만 슬픔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이 사랑한 사람이 언제나 더 많이 슬퍼하기 마련이다. 라흐마니노프가 평생 동안 음악과 조국만을 사랑했던 사람은 아닐 거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러시아를 그리워하며 교향곡을 쓰고, 러시아 의상을 입고 귀국을 꿈꾸며 보냈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는 무엇인가 깊이 사랑하고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싶다. 그런 애수와 열정이 있었기에 이렇게 슬픔도 우울도 서정도 깊은 곡을 쓸 수 있었겠지.
라흐마니노프의 심사위원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경탄과 감격의 소리
선배가 골라준 이 곡의 명반은 러시아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연주하고, 카라얀이 지휘한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 이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함께 실려 있다.
혹시나 하고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검색했더니, 둘은 당대에 서로 알고 있었던 사이였다! 라흐마니노프가 태어났을 때 차이코프스키는 30대로 한창 음악가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심지어 라흐마니노프가 학교 콩쿠르에서 만장일치로 금메달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석에 차이코프스키가 앉아있었다고도 한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라고 해서 당연히 모르는 곡이라고 생각했지만, 들어보니 귀에 익다. 미국의 12인조 핑크 마티니를 안다면, 이 협주곡을 모를 수가 없다. 핑크 마티니의 유명한 곡, 「Splendor in the grass」(초원의 빛)을 들으면 ‘풀이 자라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listen to it grow)’라는 아름다운 가사 뒤에 차이코프스키의 이 곡이 우렁차게 흘러나온다. 풀이 자란다는 게 사소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렇게 벅차오르고 놀라운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이 말이다.
2분 17초부터 흐르는 음악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광고회사 TBWA의 박웅현 ECD가 그의 책 『책은 도끼다』에서 그토록 예찬했던 아름다운 노래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 오스트리아-크로아티아 국경을 넘던 장거리 버스 풍경이 떠오른다.
여행이 길어지는 탓에 피곤했고,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답기만 한 풍경에 약간 시큰둥해 있었다. 그때 이 가사를 곱씹으며, 마니티의 음악을,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오감을 자극하는 이 음악을 들었는데, 새삼 몸이 좀 근질거리는 걸 느꼈다.
야, 이거 정말 신기하지 않아? 저것 좀 봐, 정말 대단하지 않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은 그렇게 주변을 환기한다. 발견과 탄성, 감격의 노래다. (우울, 슬픔을 위로하는 노래 뒤에 실려있다는 건 재미있기도 하고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위로에 이어 삶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그야말로 이 앨범은 힐링 앨범이로군!) 잘 모르겠다면, 핑크 마티니의 「Splendor in the grass」를 먼저 들어보길 추천한다.
“선배, 이 아름다운 노래는 그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앨범에 같이 실려 있는 곡’으로만 소개하고 넘어갈 수 없어요. 제가 얼마나 좋아하는 곡인데요. 이제야 곡 제목을 알았으니(...) 배워봅시다”라고 절규했지만, 시크한 마 선배는 “차이코스프스키는 뒤에 또 나와.”라는 말씀만 남기고 떠나셨다나 뭐라나.
[YES24] [STEP 2] 라흐마니노프 음악이 우울과 슬픔을 위로해주는 까닭?
헤비메탈은 어쩐지 무릎 좀 찢어진 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흔들어줘야 줘야 느낌이 산다. 힙합은 헐렁한 바지에 현란한 색깔의 캡모자를 사선으로 쓰고, 오른손을 높이 들어줘야 스타일이 완성된다. 그렇다면 클래식은? 클래식은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두 손을 지휘하듯 가슴께로 올린 후, 선율과 강약에 맞춰 ‘쏘울’이 가는 대로 양손을 휘저어줘야 맛이랄까!
애초에 내가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로 클래식을 접했다면, 어떤 연주법을 떠올리겠지만, <노다메 칸타빌레> 같은 교육용 드라마를 통해 클래식을 접했기 때문에(!) 극 중 치아키처럼 손짓을 해가면서 클래식에 담긴 느낌이나 감정을 따라가 본다. 지휘는 물론 엉터리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해본다면 알 거다. 고조되었다가 사그라지는 소리의 강약, 갑자기 튀어나왔다가 사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지휘를 해보면, 클래식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완전히 사로잡히지 않고서야, 가만히 음악에만 집중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다. 클래식을 처음 들었을 때, 처음 도입부에 심취했다가도 금세 딴생각을 하게 되고 흐름을 놓치기 일쑤였다.
최소한 나홀로 지휘를 하면서, 흡사 (이름만 들어도 멋있는) 베를린 교향악단, 시카고 교향악단의 지휘자라도 됐다고 상상해본다. (물론,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하는 게 좋다.) 오늘 듣게 될 두 번째 미션 곡은 나홀로 연주하는 데 제격이다. 또 내가 가장 많이, 가장 오래 지휘해 온 음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바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충분히 그럴만하다, 참 슬플 만하다’고 나를 위로했던 음악
때는 바야흐로 인생의 가장 어둡고 외로웠던 고3 수험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내가 애지중지했던 소니 CD 플레이어에는 놀랍게도 클래식 음반이 들어있기도 했는데, 그 CD의 제목은 “집중이 잘되는 음악”이었다. 그렇다. 고3 수험생인 나에게 클래식이란 가사 없고, 잔잔해서 나를 자극하지 않는 음악, 공부할 때 들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그런 음악이었다.
음반에 실린 건, 대부분 모차르트의 곡이었다. 모차르트로 집중하다가 좀 지루함을 느꼈던 나는 어느 날 인터넷에서 한국인이 좋아하는 클래식, 따위를 검색했던 것 같다. 그때 아……! 내 영혼을 울리는 음악을 만났으니, 그게 바로 이 곡, 이름에서부터 비극적이고 비장한 정서가 묻어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었더라. 게다가 (마이너 감성 울리는) C마이너!
라흐마니노프에게는 외람된 말이 될지 모르겠지만, 생초짜 리스너는 이 음악을 이렇게 들었다. 1악장이 시작되면, 연주자가 굵고 진한 피아노 건반을 꼭꼭 누른다. 그건 마치 내 앞에 앉은 ‘친절하고 잘생기고 목소리도 좋은’ 의사 선생님이 내 아픈 데를 눌러보며, “여기? 여기니?” 하고 묻는 것 같았다. 커지는 피아노 소리에 맞춰서, 의사 선생님은 놀랍게도 가장 아픈 구석을 딱 찾아낸다.
들으면서 읽으면 그 안마, 느낄 수 있다!
마 선배가 두 번째로 추천한 앨범, 아쉬케나지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이어 연주자는 자잘한 음들을 손가락으로 오르락내리락 쓸어준다. 피아노 건반을 안마하듯 좌르르 쏟아지는 음을 연주하는데, 마치 의사 선생님이 내 아픈 부분들을 주무르며 마사지해주는 기분이었다.
그 뒤로 오케스트라가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는데, 그건 비로소 내가 입을 열어, 어떻게 힘들었는지, 왜 그렇게 속상했는지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 아래 끊임없이 깔리는 피아노 반주는 ‘그래, 그랬구나. 정말 힘들었겠구나. 정말 속상했겠어.’라는 추임새처럼 느껴졌다. 중요한 건 안마가 아니라, 이 음악를 들으면 내 어떤 사연이라도 충분히 슬프고,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공감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거다.
이 구구절절한 사연을 마 선배에게 고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선배, “음, 그렇게 듣는 것도 좋다. 그런데 이 음악도 베토벤의 <운명>처럼 별명을 가지고 있어. 네가 말한 그 안마 도입부 말이야. 사실 러시아 종소리를 묘사했다고 해. 러시아 사람들은 크렘린 궁전의 종소리를 떠올린다고 하지.” (아……! 선배, 러시아의 종은 이토록이나 애절하고 구슬프단 말입니까?)
“리히터의 음반이라면, 뒤쪽에 폭발하고 쏟아지는 부분에도 귀를 기울여봐. 이 음반은 유독 음반이 많고 난다긴다하는 연주자들이 녹음하는 라흐마니노프 2번 음반 중에서도 독보적인 연주니까. 리히터는 폭발할 때 폭발하고, 에잔할 때 애잔한, 밀당의 고수야. 특히 마지막 악장, 마지막 부분에서 끝없이 고조되면서 음이 쏟아지는 부분을 잘 들어봐. 다른 연주들하고 비교해보면, 남다른 전율이 느껴질 거야.”
많은 영화가 사랑하는 작곡가 라흐마니노프
(한 많은 민족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살다 보면 참 서러운 일 많이 겪는 한국 사람들이 러시아 음악 특유의 비극적인 정서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러시아 음악과 금방 친해진다는 얘길 들은 적 있다.
사람들이 이 음악을 들으며 편안함을 느끼는 건, 아까 말했듯이 이 음악의 비극적인 선율이 나만의 슬픔에 충분히 공감해주고, 감정을 극적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일 테다. 그래서일까? 이 곡은 영화 음악으로도 많이 쓰였다.
가장 잘 알려진 영화로는 호주의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 <샤인>이다. 영화에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주인공 데이비드가 ‘완성해야 하고 이겨야 하고 넘어서야 하는’ 곡이다. 천재 음악가의 비극적인 운명의 예고편 같은 역할을 한다.
또 데이비드 린의 <밀회>라는 영화에 쓰여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밀회>는 평범한 가정주부 로라가 우연히 기차역에서 의사 알렉 하비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된다. 양심의 가책과 열정 속에서 방황하던 로라는 서로 사랑하지만, 각자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처음 만났던 기차역에서 이별한다.
아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에서도 음악은 사랑의 운명적이고 비극적인 느낌을 한껏 고조시킨다. 장엄하게 흐르는 배경음악 위로 로라의 이런 대사를 읊조려보면, 더욱 분위기가 와 닿는다.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어, 행복도, 절망도, 인생도,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않아. 오늘 일은 신경 쓰지 않을 때가 올 거야. 아니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언제까지나, 내가 죽는 그날까지…….”
로라가 알렉과 이별하는 장면,
그리고 남편에게 돌아가 안기면서 끝나는 영화의 라스트 씬이다.
5분 40초쯤에 남편이 “돌아와 줘서 고마워”하고 안길 때
흐르는 음악 속에는 슬픔, 안도, 비극, 사랑……다양한 감정이 뒤섞여있다.
이 음악이 가장 흥미롭게 쓰인 영화는 마릴린 먼로의 <7년 만의 외출>이다. 마릴린 먼로가 바람이 뿜어져 나오는 뉴욕 지하철 환풍구 위에 서서 하얀색 드레스를 요염하게 날리고 있는 장면으로 유명한 그 영화 말이다. 리차드는 7년 만에 가족들을 피서지에 보내고, 아름다운 금발 아가씨와 바람을 피워보려는 꿈에 들뜬다. 대담하게도 윗집 아가씨 마릴린 먼로를 집으로 초대하는데, 그때 그녀에게 이 곡을 연주해준다.
누구나 가슴에 상처 하나쯤은 있는 거잖아요, 라는 식으로 분위기를 잡고 아가씨를 유혹할 요량이었으나, 마릴린 먼로는 슬픔 따위는 관심없는 낙천적이기만 한 여자였다. 리처드의 작전은 실패했지만, 누군가를 유혹할 때 라흐마니노프도 꽤 잘 어울린다는 걸 영화는 보여준다. (성공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도쿄타워>(2004) <호로비츠를 위하여>(2006) <히어 애프터>(2010) 등 최근까지도 영화 속에서 라흐마니노프는 비극적이거나 극적인 순간에 호출된다. 그의 음악이 다른 클래식에 비해 대중성을 띄고 있는 것도 영화가 그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지금도 상영 중인 뮤지컬 <삼총사>에서 아라미스의 비극적인 옛 과거가 펼쳐질 때 배경음악으로 깔린 곡도 이 곡이었다. 알고 들으면 더 반갑다.
“그거 알어? 에릭 카멘의 ‘All by myself’라는 곡 있지? 영화 <브리짓 존슨의 일기> OST로 더 잘 알려진 그 곡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의 한 부분을 따서 만든 거야. 2악장에서 천천히 오케스트라 반주가 흐르고 피아노가 연주가 나오지. 그리고 이어 플롯과 클라리넷이 멜로디를 연주하잖아. 이 부분이 All by myself의 도입부 멜로디로 쓰였어. 라흐마니노프는 1900년대 초반에 활동했으니 비교적 현대 작곡가로 여겨지는데, 지금 이 시대에 활동했어도 정말 인기 많은 작곡가였을 거야. 그치?”
큰 손으로 유명했던 거구의 피아니스트
“선배, 이 사람은 말이죠. 참 섬세하고, 예민하고. 격정적인 사람이었나 봐요. 마치, <폭풍의 언덕>의 히스클리프처럼.”
이 음악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폭풍의 언덕이 생각난다. 소설은 차지하고라도,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대고, 당장에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위태위태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폭풍의 언덕 말이다. 클라라와 히스클리프의 광기 어린 사랑의 배경음악으로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나는 선배가 보내준 라흐마니노프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손이 크기로 유명했던 라흐마니노프 [출처: Wikipedia]
헝클어진 머리에 창백한 얼굴, 나약하거나 사악해 보이는 눈동자의 히스클리프를 상상했건만, 실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는 190cm의 장신에 거구였다. 흡사 영화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을 연상할 만큼 이목구비도 뚜렷뚜렷했다. 그는 체격도 컸지만, 그보다 손이 크기로 유명했는데, 한꺼번에 건반 13개를 짚었다고 한다.
“그가 작곡한 곡들은 연주가 만만한 곡이 아니야. 이 곡만 하더라도 여러 개의 건반을 오가며 화음을 넣고 있지? 실제로 라흐마니노프는 그 당시 뛰어난 피아니스트기도 했어. 엄청난 테크닉을 요구하고 건반을 질주해대는 피아노 협주곡 3번을 그가 만들었고, 라흐마니노프만이 편안하게 칠 수 있는 곡이기도 했지.” (어지간했으면 <샤인>의 데이비드가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다가 미쳐버렸을까!)
“그런데 이 곡을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기도 해. 생각해봐. 그 거구의 몸으로 요렇게 웅크리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던 거 아냐.”
연주자로도 명성이 높았기 때문에, 그가 직접 연주한 앨범도 있다. 다만 음질이 좋지 않다. 선배가 권해준 피아니스트 리히터의 곡과는 분위기가 또 다르다. 자글거리는 잡음 속에서 연주되는 피아노 소리는, 빗속에서 비에 쫄딱 젖은 남자가 한걸음 한 걸음씩 간신히 걸음을 떼는 느낌을 준다. 내가 들어왔던 ‘안마 연주곡’에서의 부드러움 보다는 거칠고 단호한 느낌이다. 어때요 선배, 맞나요?
“음악 감상에 맞고 틀리고 답이 어디 있어? 이렇게 살짝 다른 느낌을 스스로 찾아내고, 그 중 더 마음에 끌리는 걸 골라서 듣는 거지. 하나를 계속 듣다 보면 또 다른 느낌의 연주를 듣고 싶어지기도 하거든.”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이 우리를 위로해주는 까닭은
“그런데 실제로 슬픈 일이 있어서 이 곡을 쓴 걸까요? 꼭 실연당하고 쓴 곡 같아요.”
“사연이 있는 곡이지. 라흐마니노프가 처음으로 교향곡 1번을 발표했는데, 당시에 굉장히 혹평을 받았어. 그때 지휘를 맡은 글라주노프의 지휘가 엉망이었다고도 해. 선배 작곡가가 ‘모세가 이집트에 내린 일곱 가지 재앙 중 하나에 속한다’고까지 말했대. 좀 충격이었겠지? 당시 라흐마니노프는 24살이었는데, 그 이후로 우울증을 앓게 돼. 연주는 했지만, 작곡은 더 이상 할 수 없었지.
그때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상담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그 박사는 라흐마니노프한테 최면 치료를 했던 모양이야. ‘나는 다시 곡을 쓸 수 있다.’ ‘그건 최고의 곡이 될 것이다.’라고 암시와 최면을 걸었대. 그때 쓴 곡이 이 피아노협주곡 2번이야. 니콜라이 달 박사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헌정하기도 했어. 아무래도 그간 마음에 응어리진 것들, 마음 깊숙한 우울이 곡에 고스란히 표현되었겠지. 그래서 사람들이 위로가 필요할 때 이 곡을 들으면 편안해지는 게 아닐까 싶어.”
이 곡을 통해 라흐마니노프는 우울과 무력감에서 벗어났다. 내가 슬프고 우울할 때 이 곡을 들으면, 그러니까 140년 전에 살던 한 작곡가의 슬픔과 우울과 만나게 되는 거다. 우울이 우울을 알아채고, 서로의 슬픔을 위로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그의 음악이 더욱 비밀스럽고도 다정하게 느껴진다. 초반에 언급했던, 슬픔에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 같다던 감상도 근거 없는 느낌은 아닌 셈이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에 담긴 우울한 정서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 때문이기도 할 거야. 태생은 귀족 집안이었지만, 어린 시절에 집안이 몰락해 귀족학교에 들어가지 못했어. 장학금을 받아 음악원에 들어갔고, 거기서 일찌감치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지만, 아까도 말했듯 야심차게 쓴 교향곡 1번이 실패하면서 3년이나 우울증을 앓았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쓰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났지만,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고 그때 목숨을 걸고 러시아를 탈출해. 그때부터 유럽을 떠돌게 되는데, 내내 러시아를 그리워하다가 1943년, 70세 나이로 미국의 버버리힐즈에서 타계했어.”
나는 사랑이 있던 자리에만 슬픔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많이 사랑한 사람이 언제나 더 많이 슬퍼하기 마련이다. 라흐마니노프가 평생 동안 음악과 조국만을 사랑했던 사람은 아닐 거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순간까지 러시아를 그리워하며 교향곡을 쓰고, 러시아 의상을 입고 귀국을 꿈꾸며 보냈다는 얘기를 들으니, 그는 무엇인가 깊이 사랑하고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 싶다. 그런 애수와 열정이 있었기에 이렇게 슬픔도 우울도 서정도 깊은 곡을 쓸 수 있었겠지.
라흐마니노프의 심사위원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 경탄과 감격의 소리
선배가 골라준 이 곡의 명반은 러시아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연주하고, 카라얀이 지휘한 앨범이다. 이 앨범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에 이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 함께 실려 있다.
혹시나 하고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검색했더니, 둘은 당대에 서로 알고 있었던 사이였다! 라흐마니노프가 태어났을 때 차이코프스키는 30대로 한창 음악가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심지어 라흐마니노프가 학교 콩쿠르에서 만장일치로 금메달을 받았을 때, 심사위원석에 차이코프스키가 앉아있었다고도 한다.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라고 해서 당연히 모르는 곡이라고 생각했지만, 들어보니 귀에 익다. 미국의 12인조 핑크 마티니를 안다면, 이 협주곡을 모를 수가 없다. 핑크 마티니의 유명한 곡, 「Splendor in the grass」(초원의 빛)을 들으면 ‘풀이 자라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세요(listen to it grow)’라는 아름다운 가사 뒤에 차이코프스키의 이 곡이 우렁차게 흘러나온다. 풀이 자란다는 게 사소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렇게 벅차오르고 놀라운 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이 말이다.
2분 17초부터 흐르는 음악이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이다.
광고회사 TBWA의 박웅현 ECD가 그의 책 『책은 도끼다』에서 그토록 예찬했던 아름다운 노래이기도 하다.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 오스트리아-크로아티아 국경을 넘던 장거리 버스 풍경이 떠오른다.
여행이 길어지는 탓에 피곤했고, 끝없이 펼쳐지는 아름답기만 한 풍경에 약간 시큰둥해 있었다. 그때 이 가사를 곱씹으며, 마니티의 음악을,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오감을 자극하는 이 음악을 들었는데, 새삼 몸이 좀 근질거리는 걸 느꼈다.
야, 이거 정말 신기하지 않아? 저것 좀 봐, 정말 대단하지 않아?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은 그렇게 주변을 환기한다. 발견과 탄성, 감격의 노래다. (우울, 슬픔을 위로하는 노래 뒤에 실려있다는 건 재미있기도 하고 의미심장하기도 하다. 위로에 이어 삶의 즐거움을 일깨워주는? 그야말로 이 앨범은 힐링 앨범이로군!) 잘 모르겠다면, 핑크 마티니의 「Splendor in the grass」를 먼저 들어보길 추천한다.
“선배, 이 아름다운 노래는 그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앨범에 같이 실려 있는 곡’으로만 소개하고 넘어갈 수 없어요. 제가 얼마나 좋아하는 곡인데요. 이제야 곡 제목을 알았으니(...) 배워봅시다”라고 절규했지만, 시크한 마 선배는 “차이코스프스키는 뒤에 또 나와.”라는 말씀만 남기고 떠나셨다나 뭐라나.
♬ 2번째로 많이 찾은 음반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 <라흐마니노프 : 피아노 협주곡 1-4번>
백발의 활짝웃는 모습이 푸근하면서도 예술가의 예민함이 느껴지는 아쉬케나지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연주자이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음반에서 느껴지는 서정적이고 영롱한 음색은 너무 완벽스러운 리히터와 또 다른 매력이 있어 은근히 손이가는 음반.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곡을 쓴 작곡가보다 더 그 곡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본인도 빼어난 피아니스트였던 그의 연주를 직접 감상할 수 있다. 1900년대 초의 녹음이라 지글대는 음질은 감안을 하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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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24] [STEP 2] 라흐마니노프 음악이 우울과 슬픔을 위로해주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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