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보면 사람의 머리와 말로 정의할 수 없는 흐름이 있다. 거대한 흐름을 다 꿸 수 없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각적 느낌이 있다. 이 감각의 문제는 잘 될것 같은 느낌은 반전이 있고, 안 될꺼 같은 느낌은 대부분 적중한다는 해괴한 적중율이 아닐까? 이런 이유로 아쉬움과 한이 많이 생긴다.
잘 될것 같은 것이 아쉬운 것은 편향, 확증편향, 기대, 희망, 부족함과 같은 다양한 원인이 합리적인 판단을 저해할 수 있다. 안 될꺼 같은 느낌은 상황 집중력, 냉정한 판단을 하기 때문에 더 잘 맞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람 세상의 원칙, 순리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레이달리오의 원칙, 관자도 원칙을 강조한다. 어떤 면에서 공자는 원칙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공자류는 여유있고 살만한 시절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문제는 시대가 변하면 원칙도 조금씩 변한다. 사람이 변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사람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형용할 수 없는 순리도 존재한다. 도가 변하지 않으면 우린 원시시대로 회귀하자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난 그럴 생각이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다. 당장 박정희, 전두환 시절의 즐거움을 회상하는 우리 어머니한테 그 시절 방식으로 살자고 하면 쌍욕을 면하기 어렵다. 내가 좀 짖꿎기는 한가보다.
난 팔레토의 법칙은 허술하다고 생각한다. 빛과 그림자의 세상을 온전히 보여주지 못하는 설명이라는 생각이다. 8:2로 구분이 된다면 2의 20%인 4%만 핵심인력에 가깝다. 어둠의 저쪽 편에도 4%의 비인간적인 핵심인력이 존재한다. 중간의 60% 많게는 92%까지 그라데이션된 호구 분포도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뭐 나도 그런 호구 레벨 어딘가에 있고, 분야에 따라서 천차만별 호구자격증을 갖고 있는 셈이다.
무위지치는 꼭 다르리려고 하지 않아도 다스려진다는 말이다. 사람이 지구에 뭉쳐서 함께 지지고 볶고 살아가는 방식도 무작위적이지만 원칙, 패턴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런 것은 AI처리가 가능해지면 세상 못 살만한 곳이 되리라다. 상상력이 차단될 가능성이 많다. 사람의 역량으로는 계산, 분석, 예측이 어려운 양이다. 즉 너도 모르고 나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핵심적 4%는 이것을 깨닫고 사람들을 긍정의 방향으로 끌고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일까?
그런데 반대편의 4%도 잘 안다. 그들도 순수한 감정과 얼굴을 갖고 타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에 집중한다. 아마도 무위지치를 강조하며 사람을 독려하는 순수한 가면을 쓰고, 무위도식을 꿈꾸는 사람들 아닐까?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가끔 얼토당토않은 그럴싸한 말을 하면 무위도식하는 자들을 봤기 때문이다. 건강할 때 거머리 한 개 붙어봐야 큰 일이겠냐지만 가끔 대량의 거머리가 붙으면 빈혈이 오지 않을까?
설국열차의 설정에서 머리칸은 무엇인가를 해왔다. 꼬리칸 대빵은 무엇을 했지? 가끔 이 둘을 보면서 선과 악의 혼선이 생길때가 있다. 이건 참 골떼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선과 악이 아니라 끊임없는 변화하는 상황에서 끊임없이 대책을 찾아가는 것이 차라리 좋다고 생각한다. 문제라면 서산대사가 눈길을 똑바로 걸으라고 했는데, 직진 정주행이 보기 좋아여도 직진 정주행만 해서 살아지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어이쿠'하며 타인을 비타길 내달리게 하면 안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해도 무위지치를 꿈꾸고, 무위도식을 꿈꾸는 자들도 계속 양산된다. 이건 신의 오류인가? 자생적 bug인가? 뭐 알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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