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란 책을 손에 든지 한달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나에게 그 기간이 조금은 힘들고 괴롭지고 하고 안쓰러웠던 기간이기도 하고 책이 잘 들어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책이 술술 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여러가지 많은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기에 충분하다. 누군가 리영희 교수의 대화와 신영복 교수의 강의를 가장 감명깊게 보았다는 글에 깊이 공감한다.
이 책을 통해서 무엇인가 '와우!'하는 감탄사를 내뱉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을 천천히 돌아보고 현재에 맞게 새롭게 세우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기록속에 남아 있는 인간의 정신 문명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현재를 위해서 왜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지를 말하는 노교수의 정신이 젊은 청춘보다도 신선하기 때문이다. 온고이지신을 책이란 매체를 통해서 실현하는 모습과 열정이 대단하다.
일부의 구절에서 유사한 생각에 공감하고, 일부의 견해에 색다르다라는 생각, 역사와 사상을 폭넓게 꿰며 이야기를 전개하는 글의 통찰력, 그속에 잔잔하게 흐르는 겸손함과 부드러움이 책을 깊게 몰입하게 만든다. 몇년전 무작정 읽어본 사서를 통해서 대부분의 구절들은 읽어 본 적이 있다. 다 기억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흐름의 맥락이 있어 좋다.
내가 가장 좋게 생각하는 점은 책을 대하는 점이다. 처음 사서를 읽으면 그 말을 좁게 이해하게 된다. 글자를 해석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그 글자가 내포하는 저자의 의도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한참 더디게 되는 것이 고전이다. 특히 한자 학습의 부족함이 갖고 오는 실력부족으로 가슴은 턱턱 막히게 되고, 저자의 주석을 중심으로밖에 볼수 없는 것이 일반인들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면 결국 해석을 한 저자의 글에 구속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의 책의 대하는 자세에 대한 권유를 보면 책이 나에게 말하고, 듣는 나를 다시 밖에서 바라보듯 그 의미를 파악한다는 생각을 한다. 모노사운드의 단조로움이 스테레오나 서라운드 뮤직처럼 다채롭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다채로움을 더하는 것이 책을 통한 구속이 아니라 창신과 같이 잠시 물러서 현재를 둘러보고 그것의 의미와 현재를 치밀하게 비교하여 세운다는 것이다.
강의라는 제목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글의 풀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경, 논어, 맹자, 노자, 한비자, 신유학, 대학, 중용이란 동양고전의 테마를 읽어낼 수 있는 힘을 보여준다. 나 스스로도 이런 분야와는 거리가 멀지만 이런 글을 읽고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그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의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보단 실천을 통해서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해에 대한 기록인 고전과 실천이란 현재의 과제를 너무 멀리두지 않기 위해서, 고전을 읽는 신영복 교수의 강의는 그의 글씨만큼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너무 화려하지 않고, 너무 투박하지도 않고, 신윤복의 미인도와 같은 정갈함과 도발적 매력이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든다. 비록 나의 깨달음이 마지막 창신과 같은 수준이 되기엔 미약하겠지만, 한개라도 무엇인가 내일이 오늘고 달라지는 계기가 되기엔 충분히 따뜻한 책이다.
'고전 (冊)'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격과 치 (0) | 2016.05.07 |
---|---|
아라비안 나이트 세트 (0) | 2015.07.01 |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 (0) | 2015.01.13 |
변신이야기 1 (0) | 2015.01.01 |
간신론, 인간의 부조리를 묻다 (0) | 2014.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