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무리해서 저녁에 다 읽고 잠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슬프다는 생각이 맴돈다. 거의 무표정해 보이는 인디나의 느낌, 게다가 읽다 보면 종종 남자인지 여자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시니컬할 거니 베커히, 항상 즐거워 보이는 이나고는 종종 우수에 젖은 느낌을 준다. 홀리가 그나마 즐거운 모습을 띄지만 2권까지 읽는 동안 웃음을 표현한 문장을 못 본 것 같다.
모든 등장인물이 슬픔, 소설 같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다.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써가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인생이다. 모두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존재하는 이유다. 누가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길 바라는 것을 인지상정이란 말만큼 잘 표현할 것이 있을까? 그런 이유 때문일까? 작가는 "과거", "현재"라는 친절한 메시지로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도록 친절하게 알려준다. 작가의 배려를 통해 우리는 등장인물이 걸어온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눈물이 날 정도는 아니지만 측은지심, 연민을 갖게 하는 대목들이 잔잔하고 촘촘하게 배치되었다.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이 이쁘게 보일 때 높은 곳에 올라가 도시를 보면 그 맛과 다르지만 멋진다. 작가도 채플린의 말을 인용하듯, 멀리서 보이는 도시는 화려하고, 도시의 안으로 깊숙이 들어올수록 신세계가 열린다. 누군가에겐 빛의 세계가 열리고, 누구에겐 그림자의 세계가 열린다. 대부분 빛과 그림자를 번갈아가며 우리들의 이야기를 쓴다.
'표지 뒷면에 출구"라는 책이 지상세계와 두더지 굴이라는 두 세계로 나눈 것은 그런 의미일까? 눈에 보이는 세계와 내가 체험하는 영역을 구분하듯 이 소설의 세계도 물리적으로 구분된다.
마법인처럼 세상의 총애를 받는 부류도 사실 내가 왜 마법인인지 모른다. 비법인도 왜 비법인인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의 갖고 있는 출생의 근본적 이유에 대한 질문과 같다. 왜 태어났는지 나도 알 수가 없지. 인생이란 그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증명하는 노가다일지 모른다.
바래기처럼 마법인이었다가 비법인이 된 사람들의 좌절은 저주인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행운일까? 누군가 절망하고 누군가는 다시 일어난다. 반면 신기루족은 독특하다. 발명가와 혁신가처럼 사회적 구조로 보면 이질적이다. 천재 거나 또라이일 가능성이 높지만 사회의 구조와 이분법적인 세상은 그런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자신만의 길을 장자처럼 갈 수도 있고, 자신의 마음과 세상의 불일치 속에 미칠 수도 있다. 미치는 것은 어쩌면 무엇인가에 크게 심취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오른쪽 눈과 왼쪽 눈의 신들이 인정사정없는 격렬한 전투로 그럴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상하를 부, 권력으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마법인은 부와 명예도 존재하지만 마법이란 상상을 통해서 가질 수 없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는 존재다. 그걸 바라는 것은 거의 절망적이다. 넘사벽이니까. 그 반대에 두더지들이 있다. 이 소설의 세상도 두더지들이 훨씬 많겠지? 아닌가? 아니라면 그들의 존재가 더욱 안쓰러울 것 같다. 마법인, 비법인을 나눈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이런 구분은 세상을 입체적으로 보는 안목을 만들어 줄 수 있다. 이쁜 손도 현미경 들이대고 보면 세균이 나올 테니... 그걸 안다는 것.. 자신이 선택하고 감당할 몫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입체적인 현실이다. 공간지각이 있으니 물리적인 입체적 감각으로 인지한다. 그렇지 못하면 넘어지기 쉽다. 그런데 눈으로 보는 세상은 2차원적인 평면인지 3차원의 입체적 느낌인지 멍 때릴 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럼 세상이 훨씬 재미있게 보인다. 평면에는 축지법도 가능하지만... 눈으로 보이는 세상을 우리가 느끼고 운영되는 세상의 구조로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물리적인 지상과 두더지 세계가 존재하고,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인과 비법인을 통해서 3차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차원이란 평면의 뒷면은 그냥 뒷면일 뿐이다. 뒷면은 하나뿐이다. 3차원의 뒷면은 입체적인 모습만큼 보는 관점과 입장에 무수히 달라진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고 그래서 새로운 기회라는 변화가 존재한다. 2차원으로 보면 인생이란 죽음 향해 달리며 한가한가 가지가지하는 족속이 인간이다. 3차원이라면 뭐 각자 생각하지 나름이지.
출구교 사람들이 환생을 통해 마법인이 되려는 환생은 사람들의 깊은 바램과 욕망을 상징한다. 내 기억에 어려서 해주던 "환상특급"이란 드라마가 꼭 해피엔딩과 권선징악만을 그려줬다는 생각은 없다. 미래학자들도 항상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것은 인간의 심술인지 바램인지 불안인지 알 수 없다. 그런 이야기를 세대를 넘으며 항상 듣지만 그럭저럭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환생이란 말은 동시에 현실에 대한 지극한 혐오? 불만을 나타낸다. 복권을 사는 마음의 이면에 지금 "불행하다"라는 심리가 깔린 것과 같다. 또 다른 관점에서 환생이란 영원히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를 도는 것과 타다. 불가의 업보처럼 "다시", "아니 아니 다시" "또다시".. 우리가 다시 하는 것은 잘할 때까지 하는 연습의 과정이다. 인생도 그렇다. 그걸 여러 번 해야 한다면 나는 완전 별루다. 텔레토비처럼 말하면 "이제 그만~" 나고처럼 말한다면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해? 배고픈데 핫버드 먹으러 가자" 이런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내겐 훨씬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한다. 누군가 여태까지 살다가 사람이 490억 정도 된다는 카더라 유튜브 타이틀을 본 적이 있다. 환생인데 왜 점점 늘어나지? 인간만 카운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물 총량제인가? 그럼 적은 것 같은데.
인간이 인간적인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아주 안 당연한 일이다. 그랬다면 "사람이 어떻게 그래"와 같은 문장은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문을 열고 집을 나서며 내일을 열어간다. 어제 같은 오늘과 내일, 어제와 다른 오늘과 내일을 그리며. 그런데 항상 돌아오는 집과 다르게 계속 변하길 바라는 마음이 문제일까? 매일 열고 나가는 문을 통해 내가 원하는 출구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은 어떤 마음을 갖게 할까? 수긍하고 따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무엇이라도 발버둥 쳐야 할까? 신기루처럼은 아니더라고 '미쳐불겄고만'이라고 해야 할까? 지치면 항상 돌아가야 하는 집이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자 행복이다. 1조 1항이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시간도 꺼뜨릴 수 없는 영겁의 혼불이 법을 비추러 돌아오길"
누군가의 명복을 비는 말이지만 참 멋지다. 다만 그 법이 세상의 법이 아니라 그 대상이 바라던 출구를 위한 법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뭘 하기 전에 뭐가 되느냐의 문제야. 사람들은 어디로 가기 위해서 문을 열지만, 사실은 손잡이를 잡는 순간에도 벌써 집에 와 있다는 걸 알아야 해. 그게 그 사람을 집으로 불러들이는 거야. 우리가 현상을 늦게 접할 뿐, 벌서 집에 있음을 알 때 마법은 이미 실현된 거야 (중략)"
요즘 청춘에게 꿈을 이야기하면 꿈을 이야기하는 녀석도 있고, 거의 "개뿔 뭐래" 이런 반응의 표정을 보기도 했다. 지금은 달라졌을까? 이 현상이 사회가 고도화되며 발생하는 부작용일 수 있다. 다들 바쁘고, 먹고살기에 여념이 없다고 말한다. 그것을 탓하기도 하지만 생존은 안전의 시작이자 끝이다. 더 풍요로워진 세상에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나의 현실은 존재의식에 큰 타격을 준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꿈과 상상을 일어갈 소지가 많다. 나고가 참 대단한 이유다.
등장인물의 어린 시절을 과거로 보여주고, 현재를 통해서 성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실의 청춘과 청소년들에겐 미래의 꿈과 상상을 갖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조금씩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어른이들이 해야 할 일은 대체 무엇일까? 가끔 이런 질문이 훨씬 현실적이란 생각을 한다. 나고와 베커히의 어린 시절, 집이 없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도착하기도 전에 그곳에 가있는 마음이 생기는 제1조 1항과 같은 마음은 어떻게 만들지? 울락이도 고생하던데. 리모를 제외하고는 다들 사는 집에 대한 이야기가 참 적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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