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을 품고 나들이 - 김수영 디 에센셜

 

 볕이 좋은 날 읍내에 사람 구경을 나갔다. 온화한 날씨가 볕이 좋은 날이라 실외에 마련된 자리가 붐빈다. 달콤한 딸기 라떼를 마시는 오후가 좋다. 저녁 늦게 또 다른 사람을 만나 피자에 맥주도 먹었으니 머릿속과 달리 참 즐거운 하루였다.

 사람 구경을 약속한 한 서점에 들렀다. 초록색 인물화가 표지로 장식된 책 한 권이 눈길을 끈다. 가물가물한 기억이 읽은 것도 같고, 김수영 빨간색 표지만 기억이 난다. 자판을 두들겨보니 내가 읽었던 책은 '김수영을 위하여'라는 책이다. 그것도 블로그 이웃님이 읽고 전달해 줘서 읽었다. 살까 말까? 읍내 00 서점 단독 한정판? 아니지 하고 책을 내려두었다. 시집과 거리가 먼 나를 돌아보며 아니 아니 한 번 일단 사보자는 뚱딴지같은 생각이 든다. 봄바람을 품고 헤까닥 한건가? 하여튼 그렇게 손에 들고 서점을 나섰다. 달달한 딸기 라떼를 하시면 몇 페이지를 읽었다.

 

 내가 시를 평할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몇 페이지를 넘기며 눈에 띈 '긍지'라는 말이 아주 맘에 든다. 그의 삶을 자취에 따른 이유겠지만 자유의지에 대한 한 인간의 의지도 돋보인다. 특히 세상을 바라보는 관찰, 생각의 흐름이 좋다.

 

 시인을 혁명가라고 말하고, 시가 필요 없는 세상이 지향하는 사회라고도 말한다. 그 꿈이 아주 크다. 내 머릿속과 마음속을 타인에게 오롯이 전달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 꼭 좋은지 모르겠다. 가끔 선택적으로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오롯이 전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이 책에는 그의 시, 에세이와 더불어 일기, 마치지 못한 자전적 소설(의용군)이 담겨 있어 그를 이해하는 또 다른 발걸음을 선사한다. 그가 술주정을 하고 경찰에서 '나는 공산주의자로소이다'라고 떠들고 후회하거나, 쌓아둔 건축 자재의 도둑을 막고자 하는 어설프고 순수한 모습을 보면 재미있다. 인간적인 모습과 자신에 뿜어내는 명확한 선과 색,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볼 수 있다. 우산으로 여편네를 떼려 눕히고 우산을 놓고 온 것을 후회하는 작품도 있다. 글과 달리 삶의 이야기를 보면 그 또한 어렵게 세상을 살아낸 한 인간이다.

 

 어떤 강력한 행동, 용기 있는 행동은 신념이 있어야 가능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타당한 이유는 지식과 통찰의 범위가 좁으며 어떤 행동과 행동의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이 매우 경솔해질 수도 있다. 반면 순수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 '세상에 뒤떨어지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어떻게 뒤떨어지는 것이 무섭다'라고 말하는 그의 말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시인, 작가, 세상을 살아내는 한 인간의 모습이 시대와 어울려 남아 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동요하고, 신이 나고 그렇지는 않다. 100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 일제 식민지 시대, 한국 전쟁, 전쟁 포로, 419, 516과 같은 세상의 풍파를 지고 살아내며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 모두가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고 소설가다. 우리도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며 시를 쓰고, 글을 쓴다. 백 년 정도 지나면 그들의 글과 시를 보며 이 시대를 상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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