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 _인문_사회_정치 (冊)

너무 당연한 걸 묻는 것이 아닐까? - 소유냐 존재냐 (에리히 프롬)

by Khori(高麗) 2023. 6. 12.
728x90
반응형

 

 뉴욕 타이즈에서 선정한 100대 도서에 들어가는 책이다. 젊거나 어렸거나 할 때 읽으라고 했으면 분명 내동댕이 치지 않았을까? 대학시절 심리학 도서가 빼곡한 곳에 '사랑의 기술'이란 책을 뽑아 들었다가 나온 결과가 그렇다. 재미는 하나도 없고, 도움이 되기보단 두통만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랄까?

 

 그 외에 유사한 결과를 이끌어 낸 책이라면 버틀란드 러셀이 성문종합영어 1장에서 나와 도전했던 자서전(장기 방치), 에밀의 자유론(두통으로 아이들 만화책으로 봄), 존 롤스의 정의론(급격한 두통이 빠르게 전신마비), 데카르트의 방법서설(문해력 부족의 실감), 조지 소로스의 금융의 연금술사(뭔가 있어 보이나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책, 무지의 자각 시간)가 있었다. 샌들의 정의론 정도면 강의와 책을 통해서 이해가 되는 훌륭한 수준이다. 차자리 변영로의 근대 국어로 된 명정 40년이 더 이해가 쉽다. 그럼에도 이 책을 대강 철저히 읽었다기보단.. 하여튼 넘겼다고 해야 할까?

 

 책의 앞자락에 '행(行)을 위한 도(道)는 존재다'라며 노자의 말이 쓰여있다. 바쇼의 하이쿠도 있도 들어있다. 다양한 이념적 배경 지식을 설명하지만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아 머리말과 서문을 열심히 정독했다. 마지막 장에 결론이 나와있다는 친절한 서명이 반갑다. 제목을 너무 당연한 걸 묻는 것이 아닐까?라고 썼지만 사실 우리는 당연할 걸 잘 까먹고 산다.  당연한 걸 고마워하지는 못할 망정, 그나마도 까맣게 잊고 살기에 삶이 험란할지 모른다. 

 

 서문까지 읽고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하는 것을 소유할 수 있고, 존재해야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존재의 가치는 소유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책은 이런 의미보다 고차원적이다. 두통이 생기는 이유다.

 

 삶을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하나는 존재하기 때문에 생존의 문제을 위해 자연을 정복하는 시도를 하고, 생존의 문제를 넘어 존재의 가치를 올리겠다는 이유로 명예, 권력, 부와 같은 자유로운 소유욕구의 분출도 생긴다. 이것을 모두 부정한 것으로 볼 것인가? 세상 모든 사람이 부처와 같은 성인군자가 되면 모르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윤리와 종교란 수단이 떨어져 나가고, 신자유주의, 자유론등과 같이 최대한의 자유를 권장하는 철학이 풍미한 시대를 지나왔고, 그 시대의 철학적 구조와 제도 속에서 살아오고 있는 입장에서는 글쎄? 모두가 평등한 거지가 되지도 않았고, 모두가 부유해지지도 않았다. 한쪽은 실패로 점철되었고, 한쪽은 온갖 문제가 자주 발생되는 요란한 구조로 가고 있다. 포스트 자본주의는 가능할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윤리의 본질은 틀을 유지하지만, 형식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그렇다고 종교적 윤리만을 다루기엔 사람들은 과학과 이성에 눈을 뜨고, 신과 같이 AI를 통해 도전을 하는 시대다. 그러나 인간들도 소유양식의 삶이 약육강식의 고도화된 동물원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 균형점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균형점을 찾지 못하면 결국 인간의 존재가 위협받기 때문이란 사고도 긍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ESG와 같은 윤리적 측면이 조금씩 강조되는 것은 긍정적인 시그널이라고 할 수 있다.

 

 사견으로는 결국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식의 전환은 교육, 교육에 부합하는 제도와 시스템을 점진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위정자들을 비난하기는 쉽지만, 이 배를 띄우는 많은 사람들이 존재양식에 대한 인식이 늘어난 만큼 위정자도 변화하고, 제도와 법도 변한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시대의 요구가 시대의 철학으로, 시대의 변화로 가지 않을까?

 

 현재의 정치 경제 시스템을 한 번에 바꾸는 혁명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부작용만 많지 더딜 것이다. 또한 모두가 성인군자를 지향하는 세상은 유사 이래로 존재한 적도 없고, 존재하기도 어렵다. 무소유란 개념도 이런 제도와 문화틀속에서 도전하는 소모임에 가깝다. 더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한 자립, 생존을 확보한 뒤 균형점을 찾아가야 한다. 경제학에서 이기심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어찌 보면 확률이 왜곡된 이론의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급작스러운 변화는 어렵겠지만 당연한 것을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첨언하면 공급자 중심의 이기심이 아니라 수요자의 필요가 우선되는 것이 공급의 존재를 만든다는 생각, 판매해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타적 존재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는다는 상생과 순화의 고리를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강 철저히 읽은 것이 바른 해석인지 모르겠다.

 

#에리히프롬 #소유냐_존재냐 #독서 #인문 #khori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