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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동지에서 권력으로 다시 역사로

by Khori(高麗) 2019.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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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한지 : 영웅의 부활 (★★★★+1/2)

 

 만화책이라도 읽는다면 적극 권장한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보던 그리스 로마신화를 곁에서 보고 나중에 책으로 읽었다. 그렇게 읽어 보라던 삼국지, 초한지, 수호지를 싫어하더니 별봉이가 만화책으로 읽는다. 책으로 보고 싶다고 해서 한 권짜리 초한지를 찾아서 줬다. 

 

 사기를 비롯한 다양한 중국 고전의 역사서는 진의 통일보다 진을 멸망하고 漢을 세운 유방을 주목하는 것 같다. 그 유방의 통일을 빛 내기 위해서 항우의 이야기도 더불어 빛이 나야한다. 그 후 漢의 이야기는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한문제보다는 사마천이 개인적으로 더 호감이 간다.

 

 

 바람처럼 폭풍처럼 일어난 항우, 잡초처럼 쓰러지지 않는 유방, 그들 사이에서 휩싸인 태풍같은 한신의 이야기가 있다. 역사는 보는 사람에 따라 진실의 면이 달라지고, 결국 붓을 잡을 사람의 생각과 시각이 중요하다. 왜 권력의 승자가 반드시 기록을 남기려고 하는가?

 

 영화는 천천히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돌아보는 유방으로부터 시작한다. 61세의 나이, 지금이면 100세에 가까운 나이같다. 항우가 BC232, 유방이 BC247, 한신은 BC231이면 유방의 입장에서 나이차이가 많이 난다. 황제가 된 유방은 자신이 가장 두려워 한 존재에 대해 말한다. 하나는 항우이고 하나는 한신이다.

 

 

 자신이 우월한 실력보다 실력있는 장량, 소하, 한신을 통해 통일을 이룩한 왕에게는 두려움이 없겠지만, 유방이라는 한 인간에게 다가서는 두려움, 걱정, 트라우마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을 영화가 잘 그려냈다. 진을 멸하고 먼저 장락궁에 들어선 유방도 항우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신분과 태생의 열악함, 타인에게 각인되는 영웅의 모습 그리고 서로 조우하면서 펼쳐지는 삶에서도 유방은 항우보다 못하다. 항우가 무고한 사람을 덜 죽이고, 자신보다 뛰어난 분야의 사람을 더 끌어안았다면 난봉꾼같은 유방보다 멋진 풍운아같은 항우가 왕이 되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항우는 멋있다. 유방은 항우가 자신을 풀어준 것으로 인식한다. 또 한신은 항우가 유방을 위해서 배치한 무장으로 나온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가?

 한신은 더 괜찮게 나온다. 어디서 봤는데 하며 생각하니 장첸이다. 한신은 많은 고사를 남기고 있다. 그 고사를 보면 권력의 권위보다 느낀대로 표출하는 태풍처럼 느껴진다. 야생의 늑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다. 조금 검색을 해보아도 한신은 많은 역량을 펼쳤다. 그리고 유방은 권력이 특성상 너무 성장하는 신하를 견제할 수 밖에 없다. 그 견제가 다시 불만이 되는 악순환을 낳는다. 영화를 보면 항우가 그를 유방에게 보낸 것도 길들여지지 않는 것을 간파한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 보다 영화는 진의 궁궐 '장락궁'을 주목한다. 온갖 권력과 욕망이 소용돌이 치는 곳이다. 그 곳에 말을 디딘 순간 유방도 마음속에 숨어있던 욕망이 눈을 뜬다. 한신은 그 욕망을 따라서 장락궁에 들어선다. 오직 항우만이 그것을 알고 장락궁을 태우려한다. 다양한 시각이 참 재미있는 영화다.

 

 여치, 유방의 부인, 첫 황후는 악녀의 상징과 달리 차분하게 그려졌다. 용의 아들인 남편을 위해서, 남편의 온갖 일을 떠안고 산다. 그가 장량을 만나서 한신을 제거할 의사를 보이고, 소하에게 역사가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면, 향랑을 만나서 잠시 여유를 구하는 자세를 보면 무섭다. 물리적 세상은 숫컷들의 세상이지만 그 수컷들은 암컷의 통제가 가장 넘기힘든 장벽이다. 장량은 장자방이란 이름만큼 그려졌고, 소하는 아쉽다. 같은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던 동지도 권력의 탑이 구축되면 위계의 질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개국공신들은 항상 다음 권력자와 분쟁이 생긴다. 그 과정에서 선택을 한다. 소하는 권력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손가락 질을 하기 어렵다. 한신의 목을 취하는 그를 보며, 다시 한번 한신과 소하의 마지막 조우를 되돌아보게 된다. 

 

 이런 고전, 고전을 영화한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생각이 든다. 권력자에게 요구되는 것을 권력자가 될 가능성이 없거나, 그럴 의사가 없는 사람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아이러니해 보인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권력은 다른 이름으로 일상에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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