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가 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계약서를 읽다 보면 "개악서", "계악서" 이런 발음으로 말하게 될 때가 있다. 연필 잡은 놈이 균형이란 이름과 법률이란 포장지에 자신의 욕망을 가득 담는 경향이 있을 때다. 큰 기업이나 금액이 커지면 더욱 고상해지고,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고급 가정법인지, 선문답인지 이상한 내용도 있다. 예전엔 줄 쳐가며 샅샅이 찾아서 수정하고 조정하기도 했다. 물론 틈틈이 창문 너머로 화를 내던지며 욕을 하기도 했다. "Every year 10% discount"라는 조건을 봤을 때다. '10년 거래하면 조공 나가냐! 지가 만들어 쓰지 왜 와서 지랄인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안 그런가? 아무리 친해도 말도 안 되는 요구사항을 계속하는 고객에게 "Best solution is DIY"라고 했는데, 이 자식이 너무 정확하고 큰 한국말로 "개새끼"라고 하질 않나 ㅎㅎ 그러고 둘이서 술을 음청 마신 것 같다. 다들 즉당히 해야지.. 사실 오늘도 20페이지짜리 계약서를 보다 슬슬 '엔간이', '작작 좀' 이런 말이 나올라고 해서 췟GPT에게 번역시켜서 슬슬 읽기 시작했다. 까먹을만하면 법률용어를 보게 되네. 19페이지까지 오는데 영화대사처럼 '거 좀 심한 것 아니오'라는 말이 나오려고 했는데 20페이지를 보고 환해졌다.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가 책과 상관없는 이야길 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면 내 간사한 마음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 와서 얼마 안 남은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이 훨씬 편한다. 문득 내가 누군가에게 '걱정은 해결책이 아니죠'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말이 내게 필요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보면 궁극적으로 인생은 생로병사라는 끊임없는 연속콤보의 과정을 밟는다.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고, 결국 죽는다. 모두들 아는 사실이지만 잘 잊고 '오늘만 살자'로 아무거나 막하는 것이 문제다. 요즘 AI를 이용한 많은 도전을 보며, 인생이란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경험과 지식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무엇인가를 축적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은 걸어온 길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법이다.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로 시작하는 한시처럼.
인간은 그 안에 무엇을 담기도 하지만 결국 죽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다만 그 사람의 행동과 말을 좋은 일이라면 100년쯤 기억되고, 위대한 정신이라면 천 년이 넘어 흐를 수도 있다.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하지 말란 짓만 쾌락과 만족을 위해 쫒다 보면 이완용이처럼 두고두고 회자될 뿐 아닐까? 나란 그릇에 어쩌면 무엇을 담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세상에 따라 흘러가고, 나를 통해 흩어지고 또 모이는 것은 아닐까? 막히지 않고 흘러가려면 비워둬야하고 계속 깡통처럼 비워둘 수도 없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욕망과 고통이란 호시탐탐 내가 뭘 또 해보겠다고 요리조리 잔머리를 굴리기 때문일지도.. 그러다 마음이 막혀서 고통이 생기기도 하고, 헬렐레해져서 잠시 발작하듯 좋아하고.. 감당이 안되어 날뛰기도 하고, 좋다고 작두를 타기도 하고..
어차피 죽는다. 그 전제에서 벗어나진 못하지만 올바른 것을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고, 화를 내고 미쳐 날뛸 시간도 부족한 인생일지 모르겠다. 종교가 없지만 책에 종교가 아니라니 또 신선하네. 책을 읽는 내내 이중섭이 은지화에 그려놓은 '부처'가 생각난다. 희한하게.
#부처 #고타마싯다르타 #명상 #마음 #독서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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