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이 배경이다. 아노니마... 알 수 없는 여인이 베를린에서 겪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쟁은 단어의 의미를 다르게 만든다는 대사처럼 전쟁은 사람에게 큰 충격과 상처로 각인된다. 체험하지 않았고, 체험하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
모든 전쟁에서 여성은 물리적인 약자라는 이유로 희생의 대상이 된다. 일제의 침략시대에도, 한국전쟁의 시대에도 그렇다. 누구도 인간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하지만 아노니마는 그런 희생의 대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모습을 그려낸다. 전쟁의 과정을 감내하는 연인의 모습이다. 그 모습은 지역, 국가, 문화와 관계없이 같다.
30분만... 그 시간을 함께 하고자 했던 남편은 전장으로 떠나고, 살고 있는 베를린은 소련군에 의해 점령된다. 전쟁의 시작은 독일이지만 전쟁의 종료는 소련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전쟁의 관점에서 소련군은 침략자라고 할 수 없다. 침략은 독일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작은 일생이 전쟁의 장으로 변한 사실은 또 새로운 침략과 약탈의 환경이 된다. 그 과정에서 아노미나는 원치 않는 결과를 맞이한다.
그녀가 소련군 지휘관을 찾아 약탈, 강간으로부터 보호를 요청할 때 그들의 대답은 정말 동물적이다. 몸은 짓밟혀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 소련군 소령과의 연민, 사랑은 또 다르다. 그렇게 모든 것을 잃은 패전국의 여인은 살아내고 있고, 그녀에게 승전국의 소령 안드레이는 많은 것을 건다. 그 여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시베리아로 전근(유배)을 간다.
잠시의 달콤함이 사라졌을 때 남편이 돌아온다. 기구한 팔자보다 여인들이 감내해야 하는 일이 크다. 마치 공녀로 여인을 보내고, 돌아온 여인을 화냥년이라고 부를 권리가 어디에 있는가? 결국 남편도 떠난다. 그녀가 찾아간 사람들이 아니라 그녀의 삶에 전쟁과 함께 다가온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삶을 마감하고, 누군가는 승리에 기뻐하고, 누군가는 잃어버린 사람을 위해 슬퍼한다. 시간이 흘러가며 다시 그 자리를 사람들이 채우고 또 채워갈 것이다.
내레이션, 침묵, 눈빛, 램브란트의 그림처럼 얼굴과 배경이 드러나는 화면이 좋다. 너무 비참하거나, 참혹하거나 그렇다고 너무 들떠있지 않다. 차분하게 그려진 영화다.
#베를린의여인 #Anonyma #영화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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