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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 거대한 분기점

경영_경제_IT(冊)

by Khori_聰 明 强 Khori(高麗) 2020. 7. 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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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어제와 유사하다. 문화, 제도, 법률, 사회적 시스템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체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의 수명보다 더 긴 시간의 프레임 속에서 세상은 변해간다. 인류사에서 혁명이란 파격도 현재의 시간 단위로 생각하면 유튜브의 호응만큼 빠르지 않다.

 

 옛말에 현명한 사람은 작은 기미를 통해 미래를 예측한다고 말한다. 성공률이 높지 않지만 작은 기미를 통해서 유추, 해석, 예측, 의사결정, 실행을 한다. 이런 인간의 사유 활동과 실천 행동은 무엇을 얼마만큼 준비해 왔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내 작은 관점에서 COVID19는 인간에게 재앙이 맞지만, 경제적인 현재의 타격과 달리 다가오는 불황의 버블 크기를 줄였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에게 쉬면서 돌아볼 시간을 많이 제공한 면도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조금은 radical, 좌파적이란 관점이라고 한국 사회에서 인식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좌와 우의 편향과 편견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현상과 오늘과 다른 내일이 어떻게 되길 바라는가? 이 목표를 위해서 무엇을 핵심적 문제 규정하고, 어떤 요인으로 추가하거나 제거함으로 달성할 것인가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핵심의 변화에 따라서 내일이 변한다는 판단은 불가피하지 않은가?

 

  폴 크루그만 : 미 대선의 슬로건처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에서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라고 바뀐 셈이다. 세상의 문제는 권력과 금권이 핵심에 이다.  두 가지를 따로 떼어 논하는 접근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본같은 인구감소 문제는 국지적 문제다. 그 상황에 맞는 정치는 제도를 만들고, 제도는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면, 그 영향은 사회의 문화에 영향을 준다. 경제활동은 인간 활동의 한 부분이며, 제도의 범위 안에서 통제된다. 또는 제도가 규정하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활동이 싹튼다. 

 

 토마스 프리드만 : 개방성을 유지하고 구성원이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데이터 기술 발달이 다시 정치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이 있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문화혁명기를 제외하고 각국의 기술을 자국어로 번역하고 습득한 독특한 개방성(one-way)이 현재의 결과다. 이것만큼 좋은 예가 있을까? 고인물은 썪기 마련이다.

 

 데이브드 그레이버 : Bullshit Jobs란 말은 현재 시대를 되돌아 보게 한다. 현재의 분배와 임금이 그런 생산성의 결과라고 보기 힘들다. 반면 필요한 인재의 수요만큼 인간의 가치는 올랐다. 노동시장의 문제는 보편적 사람가치는 폭락했다는 점이다. 이 챕터를 읽으며, '누군가 장황하게 길고 복잡하게 이야기하면 잘 모르는 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인간은 조직을 만들고, 조직은 구성원이 늘어나며 복잡해지며 속도가 느려진다. 아니 단위 생산성이 떨어진다. 왜 그렇게 되는가? 개인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조직이 커져도 생산성이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부분에서 중간의 생산성, 생산성에 대한 댓가의 문제에 관한 문제제기를 한다. 개인의 생산성이 떨어지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일 수 있고, 조직의 구조와 시스템에 존재할 수 있다. 이런 관점이 사회를 향하면 체제는 상당히 억압적인 태세를 취한다. 난 그것만으로도 핵심에 근접했다고 생각한다. 마치 설국열차의 머리칸과 꼬리칸의 리더들처럼 생각해  필요가 있다. 이 챕터에서 "노동의 대부분은 사물을 변화시키는 게 아니라 항상 같은 상태로 유지하는 일"이란 정의를 보며 웃음이 났다. 저러면 정체되기 때문이고 또 그 상태를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대박이란 생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토마스 세드라체크 : 경제를 인간의 본성과 관련하여 보는 관점이 아주 재미있다. 꼭 읽어 볼 만한 챕터다. 그는 문제의 기원은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 문장을 여러 번 읽어보면 나는 그 말이 그 말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은 국가, 사회, 조직, 기업 모두에 존재하고, 그 조직의 존재 이유에 부합하도록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취한다.(현실은 결정 권한과 힘을 갖은 사람들의 편향이 반영된다고 생각한다). 그 구성원들의 의견은 당연히 이성적 판단, 합리적 의견만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과 관련 집단의 욕망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하자는 인간에게 있음을 인정하라"라는 생각이 든다. 긍정적으로 "하자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위대하다"라며 독려할 수도 있다. 자본주의를 최악의 시스템 중 최선의 시스템이란 그의 설명이 탁월하다. 인간은 욕망에 부합하고, 가끔씩 합리적으로 의견을 구하는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시스템을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다. 계속 하자 보수 중이며 시지프스의 굴러오는 돌처럼. 이 일이 멈추는 날이 지구 멸망의 날이다. 마르크스처럼 자본주의자로써 자본주의 핵심적 결함을 비판하면 내부 고발자와 같이 핍박을 받는다는 사실도 재미있다.

 

 타일러 코웬 : 통신, 데이터, 데이터 분석의 기술발전이 기존의 무엇을 대체, 교체하는가가 중요하고, 그런 변화를 이끄는 기술의 발전이 빠르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새로운 기술이 언급한 활동을 통해서 무너뜨리는 부분과 새롭게 세우는 부분이 있다.  두려워  필요가 없으며, 방향을  읽어야 속도가 효과적이다.

 

 나는 좀 엉뚱할지도 모르지만 과거의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목표지점은 같다고 생각한다. 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이룰 수 없는 목표(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인류의 도전이다. 하나는 처음부터 잘 나눠주고 각자 축적할 것인가?(사회적인 축적량은 유사하다), 일단 각자 알아서 축적하고 세금을 통해서 분배함으로 부족분을 채울 것인가의 차이일 뿐이다. 전자가 잘 안되는 이유는 이성적이지만 인간하고 잘 안 맞는다는 것이고, 후자는 잘 될 것 같은데 갈수록 기분이 나빠지는 문제가 있을 뿐이다. 기술의 발달이 이런 문제를 극복할  있을까? 도움이 될수도 있지만 완벽한 해결은 어렵다. 인간이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의 발달이 사회에 보편화될수록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환경의 변화속에서 스스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방법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익숙해지면 나태해지는 것도 인간의 병폐다. 달리 인간을 게으르다고 하는가? 

 

 뤼트허르 브레흐만 : 미래에 대해서 아주 긍정적이다. 자동화 이득이 재분배되는 구조를 생각한다. 아주 이상적이지만 아주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류 역사에 인간이 그런 희망대로 움직였으면 지금 이 모양 이 꼴일 수 없다. 또 그렇기 때문에 이런 모양새를 갖추기도 한 부분이 있다. 한편으로 연결된 세상은 국가보다 지구단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자동화로 흥망성쇠의 산업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구조적 단순화를 기대하지만... 세상엔 복잡하게 만들어서 어리숙한 사람을 등쳐먹는 사람이 없던 시절도 없다.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 가장 맘에 들었던 구절은 "가장 저렴한 제품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구에 딱 들어맞는 최상의 상품을 찾기 위해 표준적인 방법을 채택한다"라는 말이다. 화폐는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각자의 가치판단이 교환을 원활하게 한다. 이런 부분이 데이터 자본주의 시대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현재 진행형이며, 초기 단계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열심히 일하고 저축한 소규모 자본가가 보상받지 못하는 세상"이란 비판적 문구는 앞쪽의 다른 인터뷰와도 다시 연결되고 있고 또 다른 데이터 시대의 변화 모습을 가정하고 있다.

 

 현실에서 내 입장은 데이터 시대를 지향하며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종속 통제 사회를 지양하기 위해서 개인정보보호법, GDPR, 정보보안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대단히 모순적인 충돌 구조를 갖고 있다. 나는 network on이 되는 순간부터 정보보호란 없다고 생각한다. Anonymous(익명)이란 눈속임과 착각을 유발하는 설명과 말이 현혹할 뿐이다. 비밀은 가슴에 묻고  밖으로 나오면 안되듯, 진정한 정보보호는 아날로그 형태로 숨겨두는 것이다. 이런 환경의 변화가 존재하기에 인간의 의사결정 자유를 주장한다는 생각이 든다. AI가 인간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것은 반은 옳고 반은 옳지 않다. 한 분야의 탁월성에 관해서 copy는 원본을 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태생적 아날로그며 디지털을 활용하고 만들 재능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다양한 분야에서 모두 탁월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원래 기계란 사람이 하기 힘들일을 시키기 위해서 만든것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AI로 전원코드 짜르면 아무짓도 하지 않는다.

 

 책을 통해 경제와 경제학은 다르다는 말은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의 종언을 이야기하기엔 다른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자본주의가 고전적인 세상의 운영 틀인 정치, 통신과 기술을 통한 데이터 총량의 산술적 증가를 통한 보다 목표에 부합하는 근삿값 찾기, 이 기술을 통해서 평균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의 구축, 개인들에게 작게 떨어지는 최적화된 서비스는 분명 사회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본질, 생산과 소비로 구성된 인간의 욕망 해소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 다만 기술 발전에 따른 현상이 변화하고, 그 현상에 본질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방식의 변화일 뿐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한 가지 기대라면 성장 중심의 사회는 버블이 찰 수밖에 없다. 인간은 아직도 현재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방식도 만들지 못했다. 인간이 가장 역사에 축적한 가장 많은 사례는 망하는 것에 관한 것일지 모른다. 성장을 꿈꾸며 많은 망작을 만들던 시대가, 덜 성장을 꿈꾸고 현재를 잘 유지하는 방식으로 변화는 가능할까? 이런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인간의 구조상 불가능하다는 생각이다. 인간은 계속 희망을 향하며 망작을 양산하는 구조속에서 가끔씩 신기방기한 명작을 만들 뿐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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