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조선을 방문했다니 재미있는 사실이다.
책은 세가지 구성으로 되어있지만, 전반적으로 흐르는 이야기의 주제는 공통된것 같다. 책을 읽으며 만약 사람이 생각하는바가 말풍선처럼 다른 사람이 보게되거나, 특히 나쁜 생각들이 보여진다면 사람의 본성은 더 좋아질것 같다는 상상을 해보게된다. 내용과 각 단편이 무겁기도하지만, 매우 근본적인 철학적인 주제에 대한 접근을 소설속에 심어놓은것 같다. 물론 정답의 제시보단 독자의 성찰과 사색을 자연스럽게 요구하려고한건 아닐까 한다.
사회적인 이야기는 현재를 돌아봐도 100년전의 이야기인데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스테이크 한장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가장과 결코 다르지 않다. 물론 그렇게 힘들게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밀려오는 젊은이를 인정하고 또 그들과 함께 일하며, 또 그들에게 나의 자리를 물려줘야하기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빈주머니의 패배자처럼 집으로 걸어가기보단, 물려주어야할것을 바른 때에 주고 행복하게 가야한다는 생각이다.
배교자는 분업을 통한 단절된 노동이 시작되는 산업혁명이후를 그리고 있다. 그 노동의 가치를 이해하기보다 스스로 고립되고, 결국 각성과 함께 떠나는 모습은 시대의 모순이 아닐까한다. 노동속에 외로워지는 것은 어쩌면 효용이란 분업때문일것이다. 전체를 보는 리더는 재미가 있는데, 기계처럼 분업환된 구조에서 전체를 깨닫지못하고 피폐해지는 인간과 그 물적욕망, 생존등 복합작 주제가 아닐까한다. 그렇다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시나고를 읽으면서는, 형장으로 향하며 노래하나 부르지 못한 아Q를 보는듯하다. 삶은 나의 선택과 결정과 무관하게 다가오는 재앙과 행복에 무기력하기도하다. 스스로의 준비도 필요하고, 사회의 왜곡을 비난하기보다 좀더 상생의 시스템을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는 심지에 불은 한명이 붙일 수 있지만, 무한이 많은 사람의 공동활동에 의해서 발전되었다고 생각한다.
우화적인 이야기편은 한편의 단편영화같다. 동업자를 서로 배반하는 도둑들의 이야기와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강의에 나오는 주제인 난파선에서의 인육을 위한 살인, 사과 몇알을 주머니에 넣고 죽어가는 군인, 세상의 발전사를 인디언에게서 듣는 이야기등으로 구성되어있다. 무엇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말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한번쯤, 아니 여러번 상상으로 하던 생각을 소설을 빌어말하는듯하다.
클론다이크라는 금광과 관련된 소설 세편은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것같다. 자연속에서 인간의 생존과 선인들을 조언을 따르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 부족에서 떨어져 생에 저항하지 않고 과거를 추억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노인, 마지막까지 생존의 쟁취와 극한 상황속에 파괴된 인간을 맞바꾼이를 보면서 주어진 자연의 상황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문명이란 이름하에 만들어진 제도속에 발버둥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편 인위적인것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지 않겠나?
각 이야기들이 사람들이 처한 극한 상황에서의 선택, 동요, 심리를 잘 묘사하고 있다. 책 제목으로 선택된 단편처럼 가지않기 위해서 사람은 외로워져서도 안되고, 함께하며 살아가야한다. 방법적인 다름은 같이 모아야하루일일 뿐이다. 그래야 집착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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