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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冊)

역사책을 다시 읽다 - 자치통감 1 - 권 5~6 (신동준, 올재)

by Khori(高麗) 2021.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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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72 ~ BC 226

 

 책을 펴고 읽다 열기와 피곤함에 잠들었다 일어났다. 요즘 같이 무료하고 더운 시기에 책을 읽는 것은 마치 명상을 하는 것과 비교해 손색이 없다. 선풍기를 약하게 켜고, 기타 보사노바 연주를 들으며 자치통감을 읽고 있다. 역사책 5~6백 페이지는 정말 길다. 심심해서 두께를 재보니 1권이 가장 두툼하고, 10권이 비슷하다. 게으름은  마음에 자리 잡아 갈길이 얼마인지만 세어보는  같다. 

 

 권 5와 권 6을 통해 정통의 주나라가 쇠락해 소멸되고, 진나라의 강력한 힘이 넘친다. 메이지 유신을 하고, 서구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일본과는 다르다. 진, 제, 위, 연, 초, 연, 한과 진(秦) 나라는 무엇이 달랐을까? 지형적으로 유비의 서촉과 비슷한 곳에서 그들도 새로운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자립갱생의 정신으로 일어난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이끌어 갔을까?  요동성의 고조선, 북방의 많은 융족들은 비옥한 토지와 제국을 만드는 시도가  안보일까? 그러나 역사에서 가정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민족과 나라의 역사라고 한다. 우리 집 족보를  외운다고 세상 일과 무슨 상관인가? 근대와 현대에 대한 한반도의 역사도 서로 우기기만  것이 아니라 한국, 북한,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 등 다양한 기록이 공개되고 분석함으로 보다 입체적인 시대상황을 그릴  있다. 자치통감은 중국의 기록이라고 지금 말할  있지만,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중국 본토에 살던 사람이 기록했다고   있다. 후손들이 역사를 아전인수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얻는 이익이 없다. 그러나 지역, 사람, 기록에 의한 지역 공동체들이 향유하던 사람들의 혼(魂)을 훼손하려는 시도는 문화적으로 인문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해본다.

 

 이 시기에는 신하가 왕을 핍박하고, 대국이 소국을 멸망시킨다. 정통성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가 시대에 맞는 정통을 세운다. 이런 변화가 잘못된 것이라   없다. 변화가 잘못된 것이라면 우린 아직도 춘추전국시대를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변화가 시대의 요구에 부합한 것인지, 변화하려는 생각과 목적을  시대가 쫒은 것인지 생각해보자. 

 

 범수가 진 소양 왕에게 이야기한다. '무릇 하, 은,  삼대가 망한 것은 군주가 전적으로 정권을 신하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멋대로 술을 마시며 사냥한  있습니다. 정권을 맡은 자들 또한 현능한 자를 시기하고, 신하를 억누른  군주의 눈을 가리며 사욕을 도모하고자 했습니다. 주군을 위한 계책이 없었는데도 군주는 이를 깨닫지 못했습니다'라는 말을 천천히 곱씹어 보면   읽었다. 군군신신과 같이  시대에도 역할과 책임(role & responsibility)은 사람을 일깨우는  지침이다. 자신의 맡은  소임을  하지 않고,  일을 미루고,  일을 미루고 받은 자들은 사리사욕을 쫒는다면 망할 수밖에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음주가무와 채홍사를 왕처럼 돌리고, 나라의 발전이 아니라  투기와 삽질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고, 자신의 일을 누군가에 맡기는 일이 기원전에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내게  문구가  이렇게 생생한지 모르겠다. 집안과 조직도 마찬가지다. 가장이 매일 술 먹고 가장의 소임을  하거나, 매일 집에서 행패만 부린다면 집안 꼴이  운영될 리 없다. 조직이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영원한 것은 없다. 단지 기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그런 와중에도 올바른 것에 본인이 노력하거나 누군가 헌신했기 때문이지만  방식이 영속한다는 사실을 역사의 기록에서 보기 힘들다. 

 

 공자의 후손 자순이 위나라 재상이 된 지 9개월이 되어 왕에게 올린 말이다. '헌책이 채택되지 않는 것은 헌책이 적당치 않기 때문입니다. 헌책이 주상의 뜻에 부합하지 않으면서 주상의 관권이 되어 봉록을 먹는 것은 하는 일도 없이 이익을 챙기고 밥이나 먹는 것이다. 나의 죄가 진실로 크다'  글을 읽으며 현대 사회에도 이런 책임의식을 갖은 사람은 있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희망이 있으며, 나도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을 살아보면  계획이 채택되지 않은 것은 타인의 방해와 이를 집행하는 사람들의 무능함 때문이지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좋은 계획을 입안한 나를 칭찬하고 격려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심리를 갖은 사람들도 만난다. '호리오해'라는 말이 있고, 모두가 성인이   없지만 정도가 지나친 것은 반드시 재앙을 부르는 단초가 된다고 생각한다. 달리 뿌린 대로 거두리 라라는 말이 있겠는가? 

 

 

 평원군, 모수, 초고열왕에 관한 기사다. 모수는 전략과 기획, 용기와 배짱이 있다. 감히 평원군과 초고열왕의 대담에 칼을 들고 자리해 형세의 중요성을 말한다. 물론 보다 전략적인 생각, 말, 글로써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것이  좋지만 이런 작은 물리력을  물리력에 압박을 가한다는 것은  위험을 안고 있다. 그만큼 오늘만 살자가 아니라 그렇게 진행할  초고열왕의 반응이 찬성, 반대에 따른 plan B도 있지 않았을까? 어느 누구나 자신의 발에 불이 붙으면, 타인의 발에 붙은 불은  번째가 된다. 이런 지모를 보면 모수는 대단히 다차원적인 분석을 한 곳에 집해서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목적과 가치를 밝히는 방향이 되었으면 좋았을 일이다. 고작 조나라와 초나라의 합종이 아니라   일은 넘쳤을 텐데. 무엇보다 정보화 시대, 지식기반 시대를 넘어 데이터 기반 자동화 시대를 지향하는 시점에 현재가 있다. 지식, 정보, 경험, 데이터, 자동화를 통해서  주위를 감싸고 있는 상황, 나의 방향성, 자원을 고려해 판단하는 역량은 중요하다. BC 258년에도 그랬고, 현재도 미래도 인간 문명은 지식, 데이터라는 자원의 소중함을  번도 잊지 못할 것이다. 

 

 노중련이 평원군을 떠나며 '천하의 선비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다른 사람을 위해 환란을 없애고, 위난을 풀며 분쟁을 해결하면서도 보상을 받지 않는 것이오. 보상을 구한다면 이는 장사꾼의 상행위일 뿐이오'라며 사례금을 받지 않는다. 어찌 보면 청렴결백한 선비의 모습이라고   있다. 바라지 않고  일이다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에 합당한 수준에서 받아 다시 좋은 일에 쓰는 것이 나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바라고,  금액을 합의해서 했다면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할  있고  양보할  있는 일이다. 금전 이전에 어떤 가치와 목표를 위해서  것인가가 중요하다. 그래야 나중에  되었을  기쁨이  크고,  안되었을 때에도 후회와 회환이 적어진다. 자순의 노중련에 대한 평은 후하다. 노중련은 '부귀와 더불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굴복하느니 차라리 빈천 속에서 세상을 가벼이 생각하고  뜻을 펼치겠다'라고 말했다. 자순의 말은 여러  생각해  여지가 있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기를 그치지 않으며 마침내 군자가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면서 변치 않으면 몸에 배고, 몸에 배면 자연스럽게 됩니다'  글과 말에 행동이 붙으면 신뢰가 생긴다. 그러나 글과 말에 행동이 너무 붙어서 변화의 상황에 대처 능력이 떨어지면 세상과 멀어진다고 믿는다. 융통성이란 기준을 지키는 하에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연체동물의 흐느적거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획일적인 기준이 없다고 불평을  때가 있다. 

 

 순자가 조효성왕, 임무군에게 왕자의 군사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다. 순자를 공자의 적통이라고 말한다. 맹자는 자사에게 배웠다고 한다. 유가도 나라를 통치하려는 학문의 범위지만 맹자는 글쎄  현실 정치적이라는 생각을  때가 있다. '몇 나라의 공통점은 모두 상을 구하고 이익을 좇는 군사들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고용된 자들이 노력하는 이치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윗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제도를 지키며 절의를 존숭하는 마음이 없습니다'라는 말을 한다. 사실 나는 순자를 읽어보며 그의 생각대로 세상이 굴러가는가?라는 의문이 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 필요한 부분이지만 현재에 처한 상황에서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의 생각은 미리 깨닫고 준비해서 현재에 존재해야 하는 이상적인 이야기다. 현실과의 거리감이 많다는 생각을 하고, 내가 왕이라면 그의 생각이 근본을 다듬는 것에 도움이 되겠지만 현재의 문제 해결을 위한 처방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순자에 대한 생각은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feat, 순자 어르신 시전해 보시지요?)

 

 그러나 6술(術), 5권(權), 3지(至)에 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은 귀 기울여 볼만 하다. '장수로 삼고 싶어 하면서도 단지 밉다는 이유로 이를 폐하는 것과 승리에 취해 태만하거나 실패한 것을 잊는 것, 안에서 위엄을 차리며 대외적으로 경박한 것, 이익만 보고  해로움을 고려하지 않는 행위 등은 금물입니다. 그러나 일을  때는 충분히 생각하고 재물을  때는 충분히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다섯 가지 권도) 이것도   이익과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기분과 감정 때문에 손실을 감수하며 반응하는 쾌감이 좋을  있다. 그러나 종종  쏘아버린 쾌감이 배가 되어 재앙으로    멘붕이지. 

 

 한비자에 대한 양웅의 말을 실려있다. '군자는 예의에 맞으면 나아가고 맞지 않으면 물러나는 것이다. 자신을 굳게 믿으면 자신의 주장이 상대방에 합치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유세하면서 자신의 주장이 상대방에게 합치하지 않을까 걱정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를 정도로 온갖 사태가 빚어지게 된다'라는 구절이 있다.  말이 아무 말 대단치는 아니라는 것은 안다. 자신의 주장이 이해, 신념, 자기 철학과 같은 이성적 토대 위에 있어야 한다는 정도로 해석하기로 하자. 한나라의 공자인 한비자가 진시왕을  의도가 불충하다고 보는지 아주 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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