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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冊)

역사책을 다시 읽다 - 자치통감 1- 2 (신동준, 올재)

by Khori(高麗) 202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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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355~BC321년, 자치통감 2권을 읽었다. 올재의 책으로는 1권으로 보면 30페이지에 불과하고, 사기의 열전으로 보면 여러 편이 포함되어 있다. 사기를 읽을 때와는 다른 사실과 느낌을 받는다.

 

'서경에 덕을 믿는 자는 흥하고, 힘을 믿는 자는 망한다'라는 구절이 상앙(위앙)과 관련하여 나온다. 법치는 세상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법이란 것도 인간이 심리적으로 압박받지 않고, 그것을 지켜야 함을 잘 이해시키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다. 먼지 털듯 걸리기만 해 보라는 식이 법치는 공포를 만들고 인간의 몇몇 기능은 정지한다. 겉으로 순종하고 속으로 거부하는 불일치를 품고 살면 오래가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건조한 법과 집행은 세상을 망친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 전 읽었던 조국의 시간을 보며 그에 대한 시시비비와 시시비비를 가리는 방식은 참 비인간적이라고 바라보면 기원전이나 지금이나 법의 문제인지 법을 집행하는 인간의 오류인지에 관해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위혜왕과 맹자의 글을 싣고, 사마광의 평을 보면 여러 번 생각을 하게 된다. '군주는 어찌하여 이(利)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오직 의(義)만 있을 뿐입니다'라는 맹장의 말과 '인의야말로 사실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윗사람이 불인하면 아랫사람은 머물 곳을 얻지 못하고, 윗사람이 불의하면 아랫사람들은 거짓을 즐겨 사용한다. 이는 대불리(大不利)를 말한 것이다. 그래서 주역 건괘의 괘사에 利는 義의 고른 조화이다라고 한 것이다'라는 자사의 글을 싣고 있다. 자사는 맹자의 스승이다. 

 이런 기사에 사마광은 "자사와 맹자의 말은 사실 같은 것이다. 무릇 인자만이 인의가 이롭다는 것을 알고, 불인자는 이를 모른다. 맹자는 위혜왕에게 곧바로 인의만 말하고 이(利)를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말하는 대상이 달랐기 때문이다"라는 평을 남겼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생각도 들고, 말해서 알아듣는 사람에게 필요한 말을 한다는 두 가지 생각을 갖게 한다. 이익이란 인의의 고른 조화라... 알듯 말듯 하다. 이익이란 부분을 내 머릿속이 물질로만 이해한다는 편견 때문인 것 같다. 그래도 멋진 표현이란 생각이 든다.

 

 사기를 읽고 소감이 다른 점은 소진과 장의에 관한 부분이다. 기억이 좀 멀지만 그들의 장점, 목적을 잘 살리는 글을 사마천이 남겼다고 생각한다. 반면 사마광은 자신이 사실이라고 기록한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소진과 장의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변한다. 

 진에 대응하여 군소국가들이 합종을 했다는 사실을 보면 형세를 읽고 가장 강한 국가와 연합체를 통한 균형을 꾀했다고 생각한다. 사기를 읽었을 땐 괜찮은 외교술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보면 G7, G20 또는 지역권의 협력 공동체를 구상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탁월한 부분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공동체의 역할과 소진이 추진한 공동체의 목적을 되돌아보면 스스로는 이익을 취했지만 세상이 얻은 것은 무엇인지 되돌아본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협력은 중요하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는 더욱 협력이 필요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협력의 대상이 될 만한 실력을 쌓는 것이다. 협력을 통해서 진나라를 제거했다면 모를까 자치통감을 읽다 보면 얕은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협력은 필요하고 협력을 준비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타인, 타국과의 협력은 시한부다.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는 것은 조금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의의 연횡은 글쎄.

 개인적으로 종횡가들의 개인 역량은 높이 사지만 내 성품으로는 굴욕을 이익과 바꾸는 것은 가장 소중한 것을 보호할 때라고 생각하고, 이에 맞서야 할 때는 가장 소중한 것을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란 생각을 갖고 있다. 그 소중한 것이 물질은 아니다.

 

 이 기간 동안 천자의 권위는 떨어지고 스스로 왕이라 부르는 국가들이 나온다. 주나라 천자는 왜 존중받는 국가와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정통성이고 원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나의 반골기질이 갖는 당연한 의심일까? 이런 생각을 하나 '인간은 물음표를 달고 태어난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왜 태어났는지 스스로 알 수가 없다. 왜 살아야 하는지도 물음표지만 만들어가는 것이 삶이다. 아이들도 내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한 것처럼 그 시대의 사람들도 사람의 근원에 대한 막연한 본류를 정통성으로 처리한 것은 아닐까? 솔직한 내 생각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고, 물음표 투성이인데 답답한 마음의 안식을 찾는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역시 답 안 나오는 것은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물음표를 채울까를 고민하자는 생각을 하기로 했다. 뭐가 되었듯. 

 

 이틀 동안 권 하나씩 읽고 있다. 죽간이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읽는 책 몇 권이면 수레도 채우겠다는 생각이다. 만 수레 정도면 지금 책으로 천 권 정도 될까? 총 294권의 자치통감이 책 10권으로 나왔다면 요즘 책 1권이 옛날 책 30권 정도란 말이다. 천 권을 읽으면 옛날 사람이 읽는 책으로 3만 권이다. 어우 그럼 죽간이라면 수레가 아니라 집도 채울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요즘 학생들이 어마어마하게 공부한다는 셈이다. 차라리 과거시험이 쉽겠다. 자치통감 2권을 읽었는데 내 책으로는 200페이지도 안된다니. 옛날 선비들이 시서예악을 곁들일 시간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 아닐까? 그래도 여러 뜻을 품은 한자니까 좀 봐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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