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 사이즈 책을 피하려고 한 편이다. 특정 분야를 더 깊이 있고 체계적으로 보려는 노력도 좀 떨어졌다. 읽고 싶은 것이 적어진 것은 호기심이 급격히 떨어지고 관심사가 제약되기 때문일 수 있다. 한 귀퉁이에서 잠들어 있는 한비자 원전, 로스차일드 1, 2권, 주역은 왜 사둔 거지? 이것을 제외하고 깊은 잠에 빠진 책들은 지적 사기, 린스타트업, 생각에 관한 생각, 열국지 강의, 내러티브 앤 넘버스, 카마라조프 가의 형제들, 근대를 다시 읽는다 그 외에도 많다. 생각해보니 참 다양하게 샀다는 생각을 했다. 대체 뭘 알아보겠다고 산 것일까?
지난주 삼국지연의와 정사 삼국지에 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소설의 존재는 사실이지만 소설의 내용이 진실된 사실인가는 다른 이야기다. 픽션과 논픽션을 구분하는 이유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잔소리를 한참 들었다. 그런데 나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역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역사적 사실, 년도, 배경, 사건과 진실의 영향, 그 결과를 아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해석을 고증하는 것은 그들의 직업이다. 그럼 인문학이라고 할 때 들어가는 역사는 모든 사람이 역사적 사실을 줄줄 꿰고, 그 사실을 고증하는 역사학도의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지식과 태도가 맥락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제도, 법률, 문화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이해한다면 역사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역사책을 보는 이유는 조금 다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본질적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서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행동과 태도, 그것이 이끌어 낸 결과를 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었을까를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다. 둘째, 그 본질적 사고를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좋은 목적을 위해서 구현할 수 있을까? 그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궁금한 이유는 인간의 본질이 오랜 세월 상당히 지속되고 유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책 읽기가 허망한 낮은 지식을 얻는 수준인지 나쁜 방식인지 잘 모르겠다. 앎을 삶에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언제가 될지 그것을 알 수 없지만.
다만 최소한의 배경지식을 위해서 예전에 사기 완역본, 고구려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한국 현대사, 한국전쟁의 기원, 대한민국사, 난중일기, 발해고, 징비록, 일본사 시간 순서대로 한 번씩을 읽으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기억이 다 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역사책을 읽는 것이 조금씩 변화한 것이 사실이다.
마친 사기를 다시 볼까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한 귀퉁이에 10권이나 되는 자치통감이 장식용으로 변모한 지 오래인데 한 권을 뽑아서 읽기 시작했다. 1/3 가까이 읽었는데, 문득 내가 미쳤거나 아주 정상이거나 그럴 것 같다. 여름 내내 읽어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리고 내게 인상적인 부분을 발췌하거나 그 내용을 정리해 볼 생각이다.
책의 서문이 어마어마하게 길다. 사마광이 쓴 자치통감의 목적이 역사를 통해서 이상적인 치국평천하의 모델을 찾아가는 것이다. 임금과 신하가 협력하여 통지하고, 검약과 경양의 기풍 위에 부국강병의 실리와 예의염치의 명분을 추구하는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저자의 서문을 읽으며, 지금은 다른가? 이런 생각이 든다. 제도적 현상이 바뀌었지만 인간이 희망하고 좋아하는 것은 변함이 없다.
관자를 인용하며 (읽었는데 본 것도 같고, 가물가물하여 찾아보니 그런 내용이 존재한다. 무려 밑줄도 그어져 있다) 정확하게 민심을 파악하여 치국평천하를 구현하기 위한 사학의 방법론이란 점도 인상적이다. 크게는 국가를 작게는 소속된 조직을 더 작게는 가족, 본질적으로는 나에게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방법도 유사하지 않을까? 결국 내 마음을 잘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1362년을 그린 역사책이 사마광의 봉서표와 신종 황제의 서문을 이어 시작된다. 나도 읽기 시작했지만 역사적 기록을 편년체로 축약한 것이다. 이것을 다시 정리하는 것의 의미보다는 내가 기억하고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구절만 잘 요약해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재와 덕을 겸비한 성인, 재와 덕이 모두 없는 우인, 덕이 재주보다 뛰어난 군자, 재주가 덕보다 뛰어난 소인에 대한 평가다. 그리고 소인보다 우인을 쓰는 것이 더 낫다는 결론은 세상의 복잡 다양한 사건이 소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똑부, 똑게, 멍부, 멍게란 직장인의 분류표에서 똑게가 가장 좋다는 말과 멍게보다 멍부가 최악이란 말을 하면 왠지 상통한다는 생각이다. 그럼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군자가 될 가능성이 없으면 우인이 되려고 노력해야 하나? 이건 너무 빠른 포기인가? 소인이 군자가 되려다 마음공부가 안돼서 삑사리가 나면 더 큰 문제가 된다는 리스크는 어떻게 감당하지? 이래서 팔자가 센 건가? 운명이 존재해서 안 되는 줄 알지만 돌뎅이를 산 위로 굴리는 불쌍한 녀석처럼 계속해야 하나? 그렇다면 이것은 축복인가 재앙인가? 참 답이 없는 복잡한 생각을 했다.
현명한 사람은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사람은 법을 사수합니다. 현자는 예를 바꾸지만, 불초자는 예에 얽매입니다. 이 글귀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인가? 아니면 주어진 것만 열심히 하려고 하는 사람인가? 이 두 가지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글로 읽으면 명확하게 어떤 것이 뛰어난 것인지 이해하기 쉽다. 현실에서 나는 이것을 잘 분별하고 있는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처럼 타인들도 생각하는가? 항상 조심하고 심사숙고하고 역지사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사실 그게 잘 안된다)
백성은 신의에 의해서 보호된다. 신의가 없으면 백성을 부릴 수 없고, 백성을 부릴 수 없으면 나라를 지킬 수 없다. 당연한 말이다. 베푸는 치자의 신의를 강조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나는 백성도 신의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관자의 호리오해(이익을 좋아하고, 피해와 손실을 싫어함)가 아무리 뭇사람들의 성향이고 이런 것도 이해해서 해야 한다는 말이지만 좀 야속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다 안다는 신이 존재하고 그 신에 의해서 인간 세상이 완벽하게 운용된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처음엔 들었다. 그러나 백성들의 특성이 그러하다면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은 백성들의 문화와 의식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점이다. 그런 지식, 경험, 깨달음, 실행, 노력의 반복 작업은 모두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림 받는 자로 살지, 베풀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갈 것인가는 또 나 하기 나름인가?
BC406~BC356년까지 주나라를 읽으며 내게 생각을 하게 한 구절이다. 주나라는 서서히 소멸되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다고 주나라 왕의 시호와 이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것을 다 척척 알아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이렇게 책을 읽으면 무엇이 문제일까? 이 또한 읽으면서 파악하고 해결할 과제다.
#자치통감 #사마광 #편년체 #1362년 #역사 #독서 #인문학 #미친건가?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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