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206 ~ BC 203
진나라가 소멸하고, 유방과 항우의 시대가 열린다. 4년의 기록이 2 권이 된다는 말은 그만큼 기록할 만한 사건이 많았다는 것이다. 책을 천천히 읽어보면 진나라가 소멸하고 다시 6국의 제후들이 우수죽순으로 일어난다. 실력이 넘치는 사람, 부족한 사람, 뛰어난 실력을 나누고 협력을 이끌어 내는 사람, 그나마도 부족한데 저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넘친다. 다시 혼란해지고, 풀어진 통합의 끈은 새로운 힘을 중심으로 뭉치기 전까지 통제할 수 없다.
유방을 보면 경박하고 예의가 없지만 대단히 실용적이다. 지식은 부족할 수 있지만, 자신의 경험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사고, 마음, 의도를 읽는 뛰어난 능력이 있다. 어떤 면에서는 필부의 면모를 갖고 있음에도 실용적 조언을 경청하고 실행함으로 사람들의 협력을 끌어낸 셈이다. 나는 인간은 자신의 답답함을 말이란 도구를 통해서 최대한 피력한다. 그 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겐 마음의 빚 아니 타인의 마음에 삶을 저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항우는 무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승리라는 목표에 충실하지만 세상이란 사람들로 구성되고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얻는지에 관해 무지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신을 보면 그릇이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수준을 알고, 인간에 대한 예의도 있다. 무엇보다 높은 성과를 냈다. 어쩌면 안 맞는 옷을 걸쳤을 수도 있지만, 귀가 좀 얇았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괴철의 부채질에 갈등하는 모습이 이래저래 아쉽다. 칭왕을 하고 제나라라는 기반을 갖추었다면 호연지기를 갖고 천하삼분을 하던가 아니면 유방에 대한 충절을 지키는 명확한 태도가 중요하다. 어쩌면 자신이 아는 자신의 그릇을 넘고 싶은 욕망과 자신의 그릇에 대한 인지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았을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는 전쟁, 전략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 위태로와졌다면 지피지기를 이해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에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유방이 진왕의 주살을 반대한 것에 대한 강의의 평이다. '인의가 시행되지 않고, 공수의 형세가 달랐을 뿐이다'라는 말로 진나라가 망한 이유에 대한 진단이다. 인의라 동양 삼국의 중요한 덕목이며 치도다. 내가 형세를 말한 것이 참 독특하다.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한다라는 말로 이해하면 너무나 당연한 말인데 우리는 얼마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적시에 적절한 행동을 하는가? 그의 말처럼 평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에는 많은 준비와 경험, 지식이 녹아들어야 가능하다.
"사람들이 초나라 사람을 두고 '목후이관(沐猴而冠, 원숭이를 목욕시킨 후 관을 씌운다)'이라고 하더니 과연 그러하다" 항우와 이야기를 마친 후생이 한 말이다. 원숭이는 곧 항우다. 그 세치 혀를 놀린 죄로 항우는 그를 물에 삶았다. 이 시대를 보면 솥에 물 끓이고, 항아리에 젓을 담그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잔인하기도 하고, 대외적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아주 무식한 방식이다. 공포를 주려는 의도가 다분하니 매일매일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도 다가오는 선거를 맞아 온갖 사람들이 출마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전에도 도전했던 사람, 새롭게 도전하려는 사람, 처음 정치권에 뛰어든 사람들을 보면 춘추전국시대나 마찬가지다. 항우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고, 한신을 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유방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글쎄? 인의를 바탕으로 뜻을 세우고, 사람들의 마음에 좋은 울림을 주는 사람이 결국에 차지하지 않을까?
'인장을 만들어 놓고는 만지작거리며 모서리를 닳아빠지게 만들며 차마 수여하지를 못합니다' 이 말은 항우의 인색함에 관한 한신의 평이라고 할 수 있다. 이기적이고, 인색하고, 성정이 거칠어도 자신만의 재주로 능히 이름은 날릴 수 있다. 그러나 큰 그릇은 못된다. 한신이 제나라 칭왕을 왜 요청했을까?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다.
위무지가 유방에게 반박한다. '신이 대왕께 천거한 것은 그의 재능이고 지금 폐하가 나무라는 것은 그의 행실입니다' 생존을 위해 세부적으로 구분하여 반박하는 것이다. 저 시대야 말 한마디에 솥이나 항아리에 직행할 위험이 존재하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요즘 시대에 이런 말을 하면 날아간 뚜껑은 누가 찾아오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유방은 그 대상에게 확인하고 후한상을 내린다. 읽고 이해하는 것은 쉽지만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이 아니라면 더 큰 틀에서 수용할만한 다양한 이유를 고려했다는 말일 것이다. 이 구절을 보면 위무자가 진평을 추천한다면 그의 성품과 재능에 대해서 처음부터 논했어야 뛰어난 책사가 아닐까? 그런 사람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광무군이 한신에게 '용병은 진실로 먼저 성세를 드러낸 후 실력을 행사해야 하니 바로 이를 말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구절이 있다. 기생충의 명대사 '아들아 너도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사람들 숫자만큼 나름의 계획이 있다. 다들 계획은 있는데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성세를 드러낸 후'란 말은 start-up에서 asile process로 prototype을 만들어 재빠르게 기획과 계획을 검증하듯, 사람들이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체험할 수 있게 해야 마음속 깊이 남길 수 있다는 관점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생각과 행동의 합치된 결과로 검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황과 때에 맞아야 한다.
역이기의 계책을 유방이 장량에게 묻고, 장량이 역이기의 계책이 불가한 이유를 10가지를 말한다. 그의 계책을 분석하여 설명하는 말 중에 '폐하가 그리 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세 번 던진다. 책사란 관점에서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된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면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정도가 낮다. 그러나 질문을 통해서 듣는 사람이 스스로 그것이 TPO+P(Time, Place, Occasion + 내가 주장하는 position)에 맞는가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강제로 깨우쳐 후라이가 되는 것보다 스스로 깨우치게 해서 병아리가 되면 자존감과 자기 확신이 강해진다. 이런 역지사지를 깊이 이해하고 말하기란 쉽지 않다. 나도 해봐서 잘 아는데 잘 안 고쳐진다. 반상회에 나가서 해도 안 되는 개소리를 듣다 보면 부아가 나고 이를 잘 못 참으니 이건 내 마음의 병이란 생각을 한다.
순자의 후손이라는 순열의 평이 있다. 그 마지막 구절이 참 좋다. "그래서 이르기를 '권도(임기응변의 방도)는 미리 확정할 수 없고, 국면의 변화는 미리 모의할 수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시기에 따라 옮기고 사물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것이 바로 책략 확립의 관건이다". 알 수 없는 미래가 현재로 다가올 때 이보다 나은 방법이 있는가? 변화를 읽고 이해하고 추종한다는 것은 그 정보를 처리할 지식, 실력의 겸비를 요구한다.
괴철이 한신에게 피력한다. "신이 듣건대 '용기와 지략이 뛰어나 주군을 두렵게 만드는 자는 몸이 위태로워지고, 공로가 천하를 뒤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인간 세상의 아이러니지만 그렇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시기심과 탐욕을 자극하는 것은 반발을 낳는다. 문제는 원하던 원치 않던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문제다. 낭중지추, 군계일학이란 말이 타인에게 부러움의 것이라면 스스로에겐 이것이 축복인지 재앙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쓰임과 용도로 인해 계속 그 일을 해야 한다. 어쩌면 삶의 선택권이 제약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주가 있는 것은 재주가 있어서 문제고, 재주가 없는 사람은 재주가 없어서 문제다. 그 둘 모두 마음공부는 공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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