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187 ~ BC 168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오늘도 열심히 읽었다. 무더위라고 탓하지만 집중력이 떨어지면 읽어도 무엇을 읽었는지 혼미할 때가 있다. 이런 부분은 재미가 좀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다시금 사마천의 사기가 문학적이고 얼마나 재미있게 기술했는지 곱씹어본다.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읽으면 이건 또 다른 인간 승리다. 그리고 기록은 인간이 기록한 시간에 비례해서 훨씬 오래 남는다. 오늘도 날이 참 덥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 태평성대엔 현자가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틈이 벌어져 누구나 무엇을 도전할 기회가 생기고, 준비되지 않은 자들의 도전이 허망하게 끝난다. 태평성대란 세상이 촘촘하게 운영된다고 볼 수 있다. 그 운영의 흐름을 이해하고 방향에 부합하는 것이 사려 깊은 행동이다. 모두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준비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
한고조 유방이 죽고, 시댁에 대 환란을 일으키던 여황후도 죽고, 많은 시대의 영웅이 시간의 벽을 넘지 못하고 사라진다. 대부분의 영웅은 온갖 고난과 죽음의 장막을 거치고 태어난다. 그런 뒤에도 체제가 잡히면 시대의 변화를 위해 물러설 때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에는 관성의 법칙이 있지만, 인생에서 관성의 법칙은 상대적이다. 그것이 지나치면 본인을 상하게 하는데, 그때를 인간이 잘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삶의 어려움 중 하나다. 자치통감을 읽다 '이쯤 하면 물러설 줄 알아야지'라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 생길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만약'이란 가정법이 등장하고 1인칭 관점이 되면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라는 생각이 간사하게 든다.
어려서 인체라는 척부인을 보고 앓아누웠던 한효제도 가고, 한문제의 시대를 권 13과 권 14에서 그리고 있다. 체제가 구축되면 탁상공론과 정치적 알력이 생긴다. 먹고살만하고, 여유가 생기면 인간의 행동은 변한다. 그렇게 변하지 않고 초심을 유지한다면 성인군자다. 살면서 장담할게 하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상황의 올바른 인식, 올바른 의사결정, 올바른 행동이 요구된다. 물론 정확한 인식, 현명한 의사결정과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올바른'과 '현명한'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부분에서 인간의 성품, 환경이 영향을 준다. 올바른 것이 좋을까? 현명한 것이 좋을까? 올바르고 현명한 것이 가장 좋다. 올바른 것은 상황에 맞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길은 더 높은 명예를 얻을 수도 있다. 현명하다면 좀 더 안전빵으로 명예와 이익을 얻을 수 있겠지만 시간처럼 영원히 흐르기에는 미흡하다고 생각한다.
여태후로 인해 걱정하는 승상 진평에게 육가가 말한다. '천하가 안녕하면 재상의 재능에 주목하고, 위태로우면 장수의 능력에 주목합니다. 장상이 화락하면 사대부가 즐겨 따르는 까닭에 천하에 비록 변란이 있을지라도 대권이 나눠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개국을 하고 틀을 잡으면 하나의 시스템이 태동한 것이다. 무엇을 만들면, 부수는 일에도 시간이 걸린다. 내 경험을 보면 만드는데 3년이 걸리면 부수는데도 그 절반의 시간은 필요하다. 어떻게 땅을 얻을까가 이젠 어떻게 이 땅을 다스릴까라는 문제로 진화하며 다양한 고민들이 생긴다.
반고의 평을 들어 '효문제 때 천하 사람이 역기를 친구 팔아먹은 자로 여겼다. 무릇 친구를 판다는 것은 이익을 위해 의를 잊는 것을 말한다'라는 구절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크게 이익을 볼 수 있는 일이라면 신의를 이익과 바꾸는 것이다. 이 일을 대개 '사기'라고 한다. 그 신의와 신뢰가 크고, 기간이 길수록 더 많은 이익을 준다. 그리고 그 이익만큼 인간 말종이란 소리의 크기도 비례한다. 살면서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내 개인적으로 큰 이익을 누군가에게 주었는지 알 수 없다. 가끔 지인들이 고맙다는 말과 환대의 이유를 나도 잘 모를 때가 있다. 대신 그들이 하고자 하는 바와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 여력이 된다면 기꺼이 도우려는 자세를 갖으려고 노력한다. 이익으로 교환할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 대한 올바르고 현명한 저축이라고 생각한다.
가산이 한문제에게 글을 올려 정치를 잘하는 길과 혼란이 오게 하는 길에 대해서 간했다. '~ 중략, 이처럼 군주가 스스로의 허물을 듣지 않으려고 들면 사직이 위태롭습니다. ~ 중략 ~ 진라라 황제가 멸망하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천하 사람이 감히 이야기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라는 글을 읽었다. 이 부분은 조직과 직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나도 많이 반성하는 일이다. 내가 세상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은 내가 귀 기울이지 않는 문제일 수 있고, 타인이 말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말한 뒤에 예상되는 위험과 공포 또는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을 정도의 혐오, 시기심, 마지막으로 그것이 더 큰 이익이 될 때와 같이 다양한 이유가 동작한다. 인간의 삶이 소설처럼 다양한 플랏과 전개를 얹어 스토리가 되는 이유다. 이 글을 보면 나에게 다양한 단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돌아보게 된다. 그렇다고 얼토당토않거나, 올바르지 못한 말을 계속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더 큰 일을 위해 사람을 품는 방식인가? 그런 생각도 하게 된다. 그 생각이 스스로 현명하지 못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사람은 참 복잡하고 어리석다.
한문제가 조서를 내렸다. '농사는 천하의 근본이고, 백성들이 믿고 살아갈 바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본업에 힘쓰지 않고 상공업 등의 말업을 섬기기 때문에 사는 것이 어려워진다'라고 쓰여있다. 지금 이 말을 한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것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의식주와 관련된 일은 인간 생존의 필수요소로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이다. 현재는 전 세계 인구와 식량생산을 비례해서 초과 생산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덜 중요하게 느끼는 것이다. 식량 무기화 같은 말이 나오는 것을 보면 식량과 관련된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말업을 섬기기 때문에 어렵다'라는 말도 시대에 맞지 않는가? 나는 잘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농사를 잘 짓기 위해서 총체적 과학적 접근을 통해서 일기를 예보하고, 종자를 개량한다. 최근엔 smart farm을 농촌과 도시에 시범적으로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분류한 1차, 2차, 3차, 4차 산업을 돌아보면 숫자가 거치는 만큼 몸을 더 쓰거나, 머리를 더 쓰거나, 더 많은 지식을 요구하고 처리한다. 정확도가 요구되고 더 어려워진다는 말이 진실에 가깝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이 내일과 미래를 바라보는 근심과 걱정이 생기는 이유다. 그렇다고 천하의 근본에 도전할만한 능력은 없다는 것도 문제를 더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장석지가 황제인 한문제에 하는 말이다. '진나라는 붓을 잡은 관원들에게 일을 맡겨 재빠르고도 가혹하게 살피기만을 다투어 경쟁했는데 그 폐단으로 헛된 문사만을 갖추고 알맹이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략 2,200년 뒤에 읽고 있는 내가 찔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문제가 생기면 FM이 제일 무섭다. 평상시에 FM대로만 하면 이런 역적이 따로 없다. 사보타지라는 말이 왜 나왔고, 태업이란 말이 왜 나올까? 법과 제도가 사람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문화를 만든다. 나라님이 아무리 정책이란 선빵을 날려고, 백성들은 대책이란 빅엿을 날린다. 9 to 6 (한국은 점심을 주기에 9 to 5는 힘들지 않나요?)를 혹독하게 시행하면 9 to 5 만 정확해진다. 의도는 정시에 와서 일을 열심히 하자는 의도겠지만 규정한 것만 지킨다. 왜냐고? 일단 살고 봐야지! 법이 갖는 허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주 촘촘하고 세세하게 더 정리하면 폭동이 나거나 "너나 열심히 해라"라는 말이 나온다. 알맹이는 만드는 일은 알맹이가 생길 여유와 공간을 줘야 한다. 그것이 사람마다 다르다 보니 힘든 것이다. 다 맞춰주는 활동은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일일 뿐이다. (神이 온다고 될 일이 아니다. 본인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며 본인도 통제를 못하는 게 인간 아닐까?)
권 14가 상당 부분은 양나라 태부 가의가 올린 상소다. 현재를 돌아보며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 두 가지, 기 탄식을 해야 할 것이 여섯 가지라고 말한다. 부럽다. 그런 일이 전부 합해도 9 가지를 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시간이 나면 다시 한번 읽어 볼만한 부분이다.
'나라를 세워서 굳어지면 반드시 서로 의심하는 형세가 만들어집니다', '무릇 사람의 지혜는 이미 일어났던 일은 볼 수 있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은 볼 수 없습니다. 예란 장차 그렇게 되기 전에 금지시키는 것이고, 법은 이미 그렇게 된 연후에야 금지시키는 것입니다', '탕무는 천하를 인의예약 위에 두어 자손들이 수십 대를 이어가게 했으나, 이를 천하 사람이 다 들었습니다. 진나라 왕은 천하를 법령과 형벌 위에 두어 그 화가 결국 자기 몸에 미쳤고 자손은 주살돼 끊어졌으니 이것도 천하 사람이 다 보았습니다. 옳고 그름은 아주 분명한 결과를 냅니다', '예의와 예절을 갖고 군자를 다스리는 것이므로 죽음을 내릴지언정 치욕은 입히지 말아야 하는 법입니다'(소인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서도 언급이 있으면 좋으련만), '황제가 염치와 예의를 만들어 그 신하들을 대우하는데 신하가 절의 있는 행동으로 보답하지 않으면 사람의 종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를 발췌했다. 무려 13페이지에 달한다. 지금 시대에 가의가 있다면 애들이 꼰대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시스템의 중요한 맥, 인사와 조직관리에 있어 사람을 대하는 태도, 구성원에게 요구하는 가치 기준에 대해서 아주 적확하게 언급한다고 생각한다. 나를 돌아보면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차이가 내 수준을 드러내는 일이라 반성할 수밖에 없다. 순간의 나태함이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
내일은 자치통감 2를 열심히 다 읽어야겠다. 권 17부터는 자치통감 3이니 책을 한 권 또 장식용으로 꽂아두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여름을 잘 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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