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직업에서 해당 종사자가 느끼는 다양한 즐거움은 참 다양한다. 자신의 직업에서 즐거움을 갖는다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다. 우리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사이에서 갈등한다. 둘이 조화롭다면 금상첨화지만 좋아하는 일에서는 기회가 부족하고, 잘하는 일은 내가 하기 싫은 경우가 많다. 이런 갈등속에 금전적 이익마저 결부된다면 더 큰 갈등속에 좌절과 기쁨이 교차하는 삶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
마음이 척척 맞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은 하면서 돈도 많이 버는 직장이 가장 좋은 직장이다. 이런 직장은 보기 힘들다. 이 중에서 두개 정도 맞으면 아주 좋은 회사고, 하나정도 해당되면 그럭저럭 다닐만한 회사다. 하나도 없다면 다시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내가 전자업종에 발을 들여놓을때엔 앞으로 2-30년은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20여년쯤되니 그때의 막연한 예측만큼 여건이 좋다고 할 수는 없다. 분명 좋은 시절을 보내왔고, 전자업종이 결코 시들해진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여건에서는 위력이 예전만 못한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동네가 발전해도 나만 그것과 상관없다면 문제다. 산업이 발전하고 CAGR이 20%를 넘어도 나만 후퇴한다면 망한거다.
그래도 먼저 아무거나 선택했다기 보단, 내가 맘에 들고 관심이 있는 업종을 선택했다는 것은 좋은 결정이었다. 업종을 고르고 내가 전공한 직종인 해외영업 분야에 종사한다는 것은 더 큰 즐거움이다. 업종과 직종을 구분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을 쫒아가다보면 경력은 쌓이지만 좋아하지 않는 일이 될 때가 있다. 너무 늦게 알게되면 여러가지 삶의 굴곡이 생긴다.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귀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요즘처럼 불안전한 경기순환과 글로벌하게 연결된 세계의 특징 때문에 한 나라의 문제가 전 세계로 확장되는 나비효과들이 많다. 이런 환경에서 맞이하는 해외영업의 즐거움도 예전만큼 많지가 않다.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즐거움이라도 어려운 지금의 시대에 더 고맙게 느껴진다.
영업의 즐거움이란 어찌되었던 수주, Order를 많이 받는 것이다. 그 어떤 즐거움도 이보다 좋은 일은 없다. 영업의 목적이란 결국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다. 좀더 넓게 본다면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함으로 고객과 시장이 풍요롭도록 기여하는 것이며, 고객과 시장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자부심을 갖아도 된다. 그것이 곧 Solution이다. 복잡하고 구구절절하고 뭔가 있어보이는 solution이란 결국 해결책이고 해결책은 특정한 문제, 고객이 갖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서비스로 해결할 수도 있고, 제품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막연하게 solution provider와 같은 말을 볼때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먹고사는 지를 알 수 있다. 솔루션이라고 말하고 제대로 되는게 없으면 면목이 없게 된다. 브랜드가 면목이 없으면 가치가 줄어든다. 그중에 가장 좋은 솔루션이란 어떤 분야던 통제할 수 없는 물리적 시간을 단축하는 일이다. 이렇게 만들면 사람들이 smart, easy, simple이라는 말을 붙여준다.
개인적으로 특허출원한 하나가 승인이 되었고, 다른 하나는 특허출원에 대한 절차가 아직도 진행중이다. 나에게도 참 즐거운 일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기쁨, 명예, 이익보다도 이것을 통해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 더 즐겁기도 하다. 특허가 되었다고 모든 제품이 잘 팔리는 것이 아니다. 쓸모없는 특허도 많고, 특허가 사업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특허도 되고, 사업도 잘 되고 해서 개인적으로 보람과 이익도 있었으면 좋겠다.
특허출원중인 기획제품을 작년 한해 프로모션했다. 특허출원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이것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스카웃해오고, 기술적인 검토와 아이디어를 논의하고, 내부 제품개발기획부터 실행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일정이 뒤집어지는 우여곡절도 두 번정도 넘어야 했고, 지금까지 없던 요상한 녀석을 만들었더니 시장예측이나 사업 ROI분석도 쉽지 않다. 불안함으로 추궁도 많이 받고, 의심도 많이 받고 그랬던것 같다. 사업이 종교도 아니고 무조건 믿으라라고 할수도 없으니 말이다. 작년 한해동안은 실제품 출시까지 종이로만 영업을 하다보니 고객님들도 "야~야~..알았다 알았어...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으니 이젠 제품을 갖고와봐!!"라는 잔소리를 한참을 들었다. 그럴싸해보이기도 하고 본적없는 제품이 가능하다고 하고, 생판 모르는 놈도 아니니 반신반의했던것 같다. 그렇게 내가 종이로 동네방네를 돌며 시간을 버는 동안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도 죽을 고비를 구비구비 돌아 목적지 언저리에 와있다. 개발자들에게 구체적인 사항이 있다는 것은 좋은 여건이지만, 시간을 맞춰서 해야한다는 것은 언제나 스트레스를 주는 원인이다.
그렇게 시장에서 사전영업(pre-sales)을 일년 가까이 하다보니 나도 지치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지친다. 만드는 사람들도 지칠때가 될 무렵 조금씩 고객들의 선 주문이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산 고객은 "마이 프렌드!! 너 아직 다 안끝난 제품을 준거야..알고 있지 ㅎㅎ"하면서도 기대를 한다.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업데이트로 대응가능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갑자기 대형고객 하나둘이 시작하겠다고 하니 모두들 기대를 하고 우리팀만 바라본다. 뜬급없이 사지도 않은 제품을 어디다가 팔았는데 얼른 보내라고 난리인 고객도 있다. 우리 고객말처럼 I don't have a word다.
사전영업때 나보고 실물도 없는 것을 고객에게 프로모션한다고 미친거 아니냐는 잔소리를 하던 우리 팀원이 요즘은 팔 걷어붙이고 제일 많이 수주를 했다. 그렇게 오더가 몰려서 우리 회사에서 새롭게 만든 제품군이 만들어지고 오더가 시작되고 있다. 제품군이 여러가지가 패키지로 되어 있는데, 상위제품군은 시제품을 만드는 단계에서 보지도 않고 덜컥 덜컥 오더가 오고, 다시 추가 오더까지 오니 사실 겁도 좀 난다. 시제품수준을 대량생산 수준으로 빠르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다들 입에서 단내가 아니라 꿀단지가 되어 실을 뽑겠다고 하는 요즘이다. 그래도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개발팀장이 "내가 죽겠다고!!!"하면서도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만들고 있다. 처음 데려와서는 복마전에 불렀다고 투덜대더니 요즘은 신이 나셨다.
오늘은 일본 고객과 conference를 하느라 각 관련 부서 핵심인력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단하신 일본 고객님의 세심하고 꼼꼼한 질의이 혀를 내두르게 하지만 대부분 OK를 받았다. 오분만 쉬었다 하자니 바쁘다고 안된단다. 마치 특검을 받듯 취조인지 conference인지를 마치고 모두들 중국집에 모였다. 기분도 좋고, 이과두주를 한잔씩 했다.
'다음달에 제조하려면 SCM은 큰일이네'라는 농담을 시작으로 상기된 얼굴의 표정이 살아있다. 중국세에 하루하루가 불안하던 사람들의 표정이 살아난다는 것만으로도 큰 즐거움과 희망이 생겼다. "다음달에 한번더 이 수량을 받으면 컨베이어라인 하나 깔아야겠다"했더니 생산부장이 현재도 충분하단다. 그러더니 바로 말을 바꿔서 세달 연속받으면 사람들이 녹초가 되기 때문에 컨베이어라인을 하나더 깔긴 깔아야 한단다. 우리 팀원들이 품질관리, SCM등 사람들이 신이 났다고 수근대고 라인을 터쳐서 라인하나 깔아줘야겠어요 하는 목표아닌 목표가 생겼다.
나도 영업이기에 오더를 많이 받는 것은 대단히 큰 즐거움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생산라인을 터트려보는 것이다. 과유불급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인 영업의 꿈이라면 수주를 어마무시하게 받아서 도저히 생산하지 못할 정도를 던져주는 아주 큰 즐거움 말이다. 조금 짖꿎어 보이지만 그렇게 해보고 싶다. 그렇게 어마무시한 꿈을 통해서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자 해외영업 동업자들의 삶이 훨씬 더 행복해지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삶도 윤택해지고, 함께 파트너이자 고객으로 살아가는 산업의 동업자들도 윤택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그런 목표를 갖고 해외영업을 하고 팀원들과 동료들을 닥달하면서 잔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요즘은 우리 파트장님들의 잔소리가 마나님보다 더 무섭지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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