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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연 (劇)

영웅과 마귀의 경계선에서 - 야차 (Yaksha: Ruthless Operations ★★★★)

by Khori(高麗) 2022.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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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라국에서 염라대왕의 명에 따라 죄인을 다스리는 야차는 염라국의 입장에선 법을 수호하는 공무원일 뿐이다. 차원이 다른 현세의 사람에게 야차는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무릎을 맞대고 이야기하면 자기반성과 후회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이 두 경계에선 야차는 염라국과 현세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또한 재미있는 생각이다. 공사 구분이 AI 로봇 같은 재수 없는 녀석인지, 홀로 안타까움과 동정심에 슬퍼할지 난 알 수 없는 일이다.  

 

 사실 Yaksha라고 하는 말이 야차인지 이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됐다. Ruthless Operation 말을 보면 공사 구분이 명확한 목표 실행 기계라는 의미일까?

 

 첫 장면의 인트로는 그럭저럭 평범함의 수준이다. 스릴러, 르와르, SF, 판타지의 임팩트는  장면이 중요하다. 하나의 호기심이라면 적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한국말을 한다는 점과 홍콩의 야시장과 같은 화려한 도시 그림자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호기심이랄까?

 

 나 홀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려는 검사의 등장은 인트로와 간격을 만든다. 그리고 교과서에 나올 법한 공정은 세상의  앞에 좌절한다.

 

 이 두 시작점을 통해 실패라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하나는 후레시가 터지는 포토라인에서 실패했고, 하나는 뭔가   없지만 어둠과 그림자 속에서 실패했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하나는 명확해 보이고, 다른 하나는  수가 없다.  결과로 양지에서 활동하던 검사는 국정원으로 전출이 된다.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하는 커다란 비석만큼 그는 양지를 지향하고 자신의 정의한 정의에 집착한다.

 

 그림자는 선양을 배경으로 국정원 블랙으로 활동 중이다. 화려한 도시의 드론 샷과 각국의 정보 전쟁이 펼쳐지는 배경으로 나쁘지 않다. 너무 인위적이고 형광빛이 난무하는 도시가 내게  어색하다. 양지를 지향하는 검사는 국정원 선양 지부 감찰을 가게 되며, 이야기가 슬슬 복잡 미묘하게 꼬이기 시작한다. 사실 양동근인가?라는 잠시든 생각이 후반부에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북한, 일본, 중국, 러시아의 첩보전이 복잡하게 돌아간다. 블랙이란 말이 주는 의미가 복합적이다. 멋져 보인다고   있고, 다른 면에선 목적을 위해 불법과 살인을 일삼는다.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역할이 현실의 면죄부이지만 영혼의 면죄부인지는   없다.

 

 그렇게 정의를 부르짖는 검사와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물불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조합이  돌아갈 턱이 없다.  차이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계기가  뿐이다. 하나는 정의를 정의롭게 지키기 위해서 움직이고, 다른 하나는 정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켜야 한다는 명제만이 존재한다. 중간이 있으면 좋으련만. 중용의 도는 상상의 스토리에서도 어려운가 보다.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동북아시아의 정보요원과 정보가 MSG란 생각이 든다.

 

 공동의 목표가 정의임으로 음지에서나 양지에서나 정의는 실현되가겠지? 그런데 감흥이 떨어진다. 철학, 사고, 생각, 행동, 결과는 시대의 생각에서 나온다. 아쉽게도 상상의 반대편에 현실이 존재할 때가 많다. 지금은 정의롭지 않은 세상인가? 딱히 정의로운 세상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정의만 갖고 세상이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정의의 정의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어떤 결론이라 지향을 확정하지 않는다. 양지를 지향하던 녀석은 같은 뿌리에서 나와 다른 음지를 이해하고, 음지에서 활동하던 녀석은 서로 연결된 양지와 함께 걸어가고자  뿐이다. 세상은 여전히 그러할 뿐이다. 

 

#야차 #Yaksha #설경구 #박해수 #양동근 #넷플릭스 #Netflix #영화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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