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왜 분노해야 하는가 CAPITALISM IN KOREA Ⅱ
장하성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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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를 사두고 묵혀두고 있다. 그의 저서가 많지 않아 아껴두고 읽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책들에남긴 장하성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시대를 보는 관점에 마음이 간다. 내가 세상을 보는 것과 유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관점과 사고를 갖고 있기에 그의 책을 보는 것이 깊이를 더하는 것이기도 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편견을 심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작은 아직 읽지 않았지만 한국이란 세상을 경제란 관점으로 해부해 보려는 것이었다고 추정하게 된다. 이 책을 읽고 그렇게 생각했다. 제목을 통해서 "왜"라는 화두를 던지는 것이 하나의 도발이고 문제 제기다. 이런 도발과 문제제기는 세상의 사람들에게 바라는 바가 있다고 믿는다. 탐구와 호기심, 관심과 열정이 없는 사람에겐 질문은 시간낭비이자 사치이기 때문이다.
책의 요지를 나를 이렇게 읽었다.
1. 경제적 불평등이 사회적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양산하는 체제가 금융위기 이후에 구축되어왔다. 90년초까지 경제성장과 적정한 분배구조가 사회 불평등을 양산할 수준이 아니었다고 통계를 들어 전제한다.
2. 불평등의 원인을 거시경제지표(정부자료, 국제기구자료)를 통해서 경제주체인 정부, 가계, 기업이 어떻게 양산하고 어떻게 분배되어 왔는지를 확인한다. 동시에 정부, 가계, 기업이 경제주체로써 요구되는 역할을 정의한다.
3. 정부는 세수를 확보하고 정책을 통해서 부의 재부배 역할을 한다.
4.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목표와 동시에 정부에 주어야 할 몫(세금), 주주에 대한 이익과 채권자에 대한 이익(배당과 이자), 협력회사에 대한 대금의 지급, 임금을 통해서 1차적인 부의 분배를 해야하고 그리고 남은 이익을 축적해야한다. 금융위기 이후 정부의 몫은 변화가 없고, 가계의 소득은 줄고 동일한 만큼 기업의 이익 축적이 늘었다.
5. 3의 복지가 OECD대비 절반 수준이지만 복지예산은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각 개인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점을 1차적인 분배구조의 문제로 설명하려한다. 이 과정의 통계는 설득력이 상당하다. 이 과정에서 한국 경제에서 재벌이 갖는 특수성과 가계소득이 전체 총생산에서 할당된 비율이 적어지고, 그 만큼이 기업내 유보되는 현상이 원천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는 가계소득이 되는 임금과 2차/3차 협력사와의 신의 성실한 공급계약이 2차/3차 업종의 소득과 관련됨으로 상생의 방법을 찾아야 하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미준수가 양산하는 정규직/비정규직의 문제가 임금을 착취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과 현 제도의 폐단을 지적한다.
6. 계층별 급여소득과 재산소득의 추세와 영향을 분석함으로 재산소득이 현재 삶에 주는 영향보다 당장의 소득이 불평등을 양산하는 원인이라는 가설을 설득력있게 풀어낸다.
7. 금융위기 이후 18년간의 소득불균형의 과정속에서 세대간의 시각차이를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나의 이해로는 경제 주체들의 변화를 위해서는 제도의 변화를 유인해야하고, 제도를 만들고 수정하는 정치에 대한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8. 교과서의 이론 설명을 위한 완전경제시장을 통한 가격결정은 현실에서 적용되지 않는다. 불균형한 가격이 양산되고 불균형을 이루는 원인은 각 경제주체가 갖는 권력의 크기에 비례해서 불평등해진다. 따라서 권력의 크기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냉정하게 경제주체를 바라보는 학자의 양심은 참으로 옳곧다고 생각한다. 이론의 한계와 세대간의 갈등, 현재의 젊은 청춘들에게 강요된 사회제도의 문제점, 기성세대에 가까운 입장에서 기성세대들이 구축한 계층이동의 장벽을 잘 설명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래를 살아갈 청춘의 세대에게 세상을 혁신하고 혁명하라는 바램을 담았다. 마치 매트릭스의 네오를 기대하면 빨간약과 파란약의 처방전을 내리는 듯 하다.
선전과 선동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덮어 씌울 권력과 권력의 하녀는 충분히 많다. 그럼에도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학자의 솔직함과 통찰력이 있다. 그가 청춘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라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가 생각하는 미래는 젊은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다시 그 다음에 올 또 다른 젊은 세대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닐까한다. 젊은 세대에 대한 응원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들이 뛰어든 사회의 일그러진 규칙을 정확하게 보게한다는 것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어제 하루종일 지쳐 누워있다가 보게된 38사기동대를 보고나서 인지, 책의 내용이 나의 마음을 훨씬 우울하고 슬프게 한다. 나의 소득이 누군가의 비용이고, 서로 공유함으로 가치를 상승하고 불법을 징계하고 정의를 실현하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청년일자리 직원이 "내가 자야 정규직인 공무원들이 편하지 않느냐. 그리고 일이 있으면 또 깨우시잖아요"...그 말이 그렇게 마음에 남을 수가 없다. 그래서 인지 내가 그 세대가 아니지만 책속에서 젊은 세대들이 더 불평등한 제도와 소득속에서도 다른 세대보다 행복하다는 이야할 수 없는 통계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것도 같아서이다. 한편 또 분노하고 그들을 응원하고 도울 방법을 지지하고 해야하는 의무감도 느끼게 된다.
나는 요즘 우리나라의 세대간 단절, 조직내에서의 세대간 자리 싸움이 넌덜머리가 난다. 먹고사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고 모든 세대에게 동일하다. 그런데 전후 세대가 먹이고 입혀서 키우고, 그 세대가 다시 곱게 키워서 손자세대에 테러를 가하는 구조를 양산하는 것은 의도적이라기 보다는 못먹고 못살던 시대의 고도성장이 가져온 후폭풍이다. 아마도 우리는 졸부와 같이 품격과 삶의 철학이 한참 뛰떨어져서 일지도 모른다. 중진국 선진국이 물질문명의 판단만으로 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우려되는 세상에 나의 아이, 아이의 친구들에게 상속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이 싫을 뿐이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리고 나중에 후세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주도한 세대에 대해서 양심도 없고, 80년대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흡혈귀 좀비세대라고 말할까 무섭다. 어느 외국인의 말처럼 장유유서란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들간의 질서가 있다는 말이지, 무조건 나이든 사람을 따라야한다는 말이 아니다. 시장은 책 처럼 완전하지도 균형잡혀 있지도 않다. 무조건 책을 따라야 할 이유도 없다. 내게 새로운 변화를 갖고 오지 않는 허황된 제도와 정책을 그냥 믿고 따라줄 사람이 아니라 의심하고 비판하며 내게 도움이 되도록 고치라고 할 용기가 필요한 시대다. 비록 교육제도는 말잘듣는 수동적 인재를 양성하려고 하지만 그래서 잘되봐야 설국열차의 첫머리에서 부품을 교체하는 어린아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저자가 말한 청춘의 특권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 잘못된 현재에 대해서 저항할 줄 아는 신념과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미래는 조금씩 진보한다고 믿는다. 나이들면 변화란 새로운 불편함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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