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원제는 Merchant, Soldier, Sage : A new history of power (상인, 전사, 현인 : 새로운 권력의 역사)라고 되어 있다. 번역된 제목은 "권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는 책의 내용에 대한 재해석이다. 이해한 내용으로는 책의 원제가 훨씬 적합한 설명이다.
역사학자가 중세부터 현대까지 경제학사를 현인과 사제, 지배자와 전사, 상인, 소작농과 같은 신분제 또는 전문성 그룹으로 구분하여 기술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서 각 그룹(신분제라는 표현이 최근의 개돼지 논란으로 자극적이라 피하고자 한다)의 이합집산과 시대의 배경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여 현재까지 왔느지 잘 설명되었다. 역사적 배경없이 이를 책한권으로 술술 읽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구구절절 흘러가는 만연체가 지루함도 준다. 하지만 한권으로 이정도의 흐름을 정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주목할 점이라면 우리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서 자주 인용하는 아담스미스의 다른 면, 신자유주의의 기반이 갖고 있던 취약점과 그들이 전제한 가설의 위험성, 금본위제도중심의 브레턴우즈 체재의 이탈이 갖고 온 영향, 금산분리를 유지하던 글래스-스티걸법의 무력화에 따른 영향등 아주 포괄적인 사항을 잘 정리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금융위기와 함께 맑시즘이나 케인즈주의에 대한 회고가 많아진 이유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경제학자가 보는 관점과는 다른 묘미가 존재한다.
어째던 결론은 상인들이 현인그룹의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신자유주의적인 부채기반의 레버리지를 통한 성장을 가치로 내걸다가 금융위기와 같은 재앙을 초래했다는 의견이라고 생각된다. 상인으로 인한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아직 존재한다는 덧붙임이 조금 거북하다.
나는 일부는 동의하고 일부는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그림자와 같은 금권과 외형적으로 표출되는 권력이라고 하지만 현인과 지배자이라는 집단은 어떤 면에서 정치다. 금권과 권력을 조율하는 정치를 투입한 시각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터너모델을 통해서 인플레이션을 용인하고 부채를 통해서 추가적인 성장을 기인하며 이의 선두에 은행이 가입했다는 판단도 적절하다. 과거에 배우던 가계의 저축이 기업에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저축을 하고 가계는 빚에 헐떡이는 현실을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시대의 경제학은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와 통찰, 이를 현실로 구체화하는 정치가 함께 한다. 이 정치를 통해서 제도와 법률을 확정함으로 결핍을 해소한다. 해소되면 태평성대요 해소되지 않으면 춘추전국과 같은 난세가 지속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인들의 과실을 그룹간의 협력과 반목과 같은 이합집산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정치란 금권과 권력의 혼합물이기도 하고, 금권과 권력의 한계를 설정할 능력(견제능력)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그 능력의 부제 또는 그 역할을 방기하고 얻은 탐욕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로 금융과 제조를 통칭해서 상인이라고 정의한 점이다. 금융을 포괄적인 상인으로 보는 것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실질 생산을 하는 조직과 실질 생산에 기반해서 virtual economy(통화의 생산, 파생상품을 통한 가상경제의 확산)를 양산하는 금융은 그 영혼(spirit)이 다르다. 같은 그룹에 있지만 본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실질생산에 기반하는 상인은 홀로 설 수 있지만, 현재와 같은 금융산업구조에서 실질생산없이 홀로 설 수 있는 금융이란 대단히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금융이 상인의 그룹으로 인정받을 때는 실물경제와 동조화되었을 때이다. 탈동조화부터는 금융은 실물경제와 별개의 가상경제와 별반 차이가 없다. 주식에서 실적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이유는 투기와 같은 탐욕, 근거없는 모략에 기인한 가수요나 폭락이 이유가 아닌가 한다.
또한 국가와 산업의 발전단계에 따른 산업의 이동과 영향이 있다. 실질 생산을 하는 상인조직이 국경을 넘어서 현실적인 수고를 한다. 하지만 금융이 실물경제와 커플링되어 연동한다면 모르지만 디커플링이 발생하고 이의 결과가 파국을 치닫은 이유는 엄격하게 금융산업의 탐욕, 금융산업과 연계된 전사, 지배자 그룹, 이들의 탐욕을 방기하고 이론적 배경을 곤고히한 현인 그룹이 어찌 자유로운가? 금융의 자유로운 이동이 법률과 제도로 허용되고 통제되지 못한 책임은 상인에게 묻기 어렵다. 경기의 규칙이 바뀌었는데 합법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성인군자와 같이 이를 지키기를 요구하는 것은 현인과 사제의 그룹도 지키기 힘들일이 아닌가 한다. 이는 경기 규칙을 바꾼 지배자/전사, 현인의 몫이다. 그리고 왜 바꾸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상인은 지배를 추구한 것이 아니다. 지배란 권력과 정치가 추구하는 것이다. 상인이 권력을 탐할때 문제가 생기고, 부당한 이익을 위해서 정치와 협잡을 하고 이를 용인하는 제도와 법률이 만들어 질때(쌍방과실)에 문제가 발생한다. 공범이 없다면 문제의 발생은 지배자/전사그룹, 현인그룹보다 훨씬 적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경제는 기본적으로 산수라는 만국공통의 논리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담 스미스가 말했던 불평등한 사회보다 훨씬 더 악화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생산을 위한 잉여라는 맑스의 논리는 일정부분 자본주의의 한계로써 볼 수 있지만, 상인을 부채질한 다른 두 그룹의 도덕적, 현실적 과오를 절대 낮게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작농, 현재의 노동자 또는 근로자들에 대부분이 피해자라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적은 부분은 아쉽다.
이 책은 예스24 리뷰어 클럽에서 제공받아 작성하였으며, 책의 내용보다는 읽고 느낀 생각을 정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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