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의 욕망과 권력에 따라 서복은 불로초를 찾아 출항한다. 영생에 관한 인간의 욕망은 동시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반증한다. 외부로 표현되는 욕망과 내적으로 남은 근심과 걱정은 인간이 갈등하고, 생각하는 근본적 원인이다. 이 영화를 통해서 인간이 품고 있는 근본적 갈등에 관한 질문이 계속된다.
그 근본적 질문에 관한 인간의 이중적 태도도 잘 그려졌다. '내가 죽어야지'라는 말을 듣고, '그럼, 잘 죽어라'라는 말을 한다면 비인간적이고,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말을 듣기 쉽다. 서복이 죽음에 관한 질문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모두가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그러나 산다는 것이 항상 좋은 일로만 가득한 것도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적절한 표현은 "어쩌라는 것인가?"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자신의 존재 이유가 한정되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좋은 일일까? 나는 죽음과 관련하여 퇴마록에 나오는 루시퍼의 한 맺힌 소회가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죽지 못하는 것은 영원히 살아야 하는 일이고, 영원히 산다는 것이 항상 좋은 일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욕망의 상상은 젊음을 유지하고 영생을 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병원에 누워 움직이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면, 영생이 욕망의 달성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다. 생동감이 없는 삶은 고해의 바다를 헤매는 것과 같다. 약에 취해 환영 속에 검은 바다를 헤매는 기현의 모습이 그렇다.
민기현은 뇌종양이란 제한된 시간 속에서 힘든 삶을 하루하루 살아간다. 꼬라지가 영 시원찮다. 그러나 그는 영생의 욕망보단 하루하루 살겠다는 의지와 생동감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서복은 영생을 강요받았지만 삶의 목표가 없다. 이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하는 질문이 생긴다.
하이라이트라고 느끼는 부분은 동양적 장풍과 기공이 표출되는 장면이 아니라 자연 속의 돌이 둥글게 둥글게 모여 서도 돕듯 작은 탑을 만드는 장면 아닐까? 멋지게 파도가 역류하며 일어서고 축하하고, 새들이 하늘에 멋진 그림을 그리는 자연의 경외감과 인간의 조화 속에 삶의 생명력이 솟아난다. 다시 보고 싶은 멋진 장면이다. 왜냐고? 살아 있다는 감각 속에 살아야겠다는 욕망이 아니라 조화로운 인간의 의지가 존재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당연할 이유가 없다. 우린 무심코 지나칠 뿐이다. 어쩌다 일어난 일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한심한 나에게 또 물어봐야겠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려고 하는가?
그럭저럭 잘 가고 있는가?
힘들 땐 쉬어야지!?
그리고 주위에 많은 존재와 사람들에게 관심을 보내야겠다. 그들도 잘 살고 있는지, 그들은 어디로 가는지, 같은 길로 가고 있는지 아니면 더 힘들거나 재미있는 곳으로 가는지.
만약 영생이 가능하다면 영화 속의 대사처럼 인간은 파멸을 부를 가능성이 많다. 무엇보다 지구에 대체 얼마나 많은 인간이 살아야 하는 거야? 인공지능처럼 6천 년을 살아온 경험을 100년도 안된 존재가 감당을 할 수 있겠어?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칭찬해 줄 일은 태어날 때 완전 format을 해준다는 것일지도... 이게 아닌가? ㅎㅎ 화창한 주말을 다들 열심히 살아봅시다.
#서복 #진시황 #영생 #죽음 #영화 #공유 #박보검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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