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님이 나이 먹고 무거운 가방 들지 말라며 가벼운 가방을 사줬다. 문제는 내가 사용하는 15" 노트북이 들어가지 않는다. 컴퓨터를 들고 다녀야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튼튼한 가방을 들고 다닌다. 무거운 백팩은 브랜드나 이름값보다 무릎보호 차원에서 장식용이 되어간다.
날이 갈수록 난시가 심해지고 있다. 옛날 할머니께서 바늘귀를 좀 꿰어보라던 말이 이젠 무슨 의미인지 잘 알아가는 중이다. 여긴가? 아닌가? 뭐 이런 느낌이랄까?
삶이란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고, 늙어 본 적이 없으니 이 분야는 사실 상상의 영역이며 관찰의 영역이다. 마주하면 좋은 것도 있지만 신선한 막막함도 있다. 그래서 큰 맘먹고 17" 노트북을 하나 장만했다. 문제는 15"는 개인 소유고, 17"는 회사 소유란 점이다. 아이 노트북을 하나 사주려던 참이었는데, 내가 쓰던 15" 노트북을 주고 욕을 엄청 얻어먹었다.
애한테 새것을 사줘야지, 본인은 매번 새것 쓰고 애한테 매일 쓰던걸 주냐는 마나님의 잔소리. 건수가 걸린 거지. 패드나 뭐나 다 애들 새거 사주고, 안 쓰면 내가 얻어 쓰는데. 소심하게 "내가 새 걸 쓸려는 게 아니라 요즘 뵈는 게 없어서 그런 거지"라는 말이 효과를 보는데 시간이 음청 오래 걸렸다. 사양으로 보면 15" 노트북도 일 년도 안되고, 영상을 만지작 거리다 보니 지금 웬만한 컴퓨터와 비교해서 성능이 우수하다. 사실 학생이 사용하기엔 고사양이다. USB-C 허브도 새것으로 준비하고, Tumi 노트북 파우치도 주고 거의 약발로 살 나이라 봐준다는 뉘앙스의 멘트가 날아온다. 마우스는 새것 줬더니, 왜 내 걸 갖고 가는 거야. 다행히 블루투스 기계식 키보드가 사무실에 있는데 다행인 거 같은 느낌적 느낌이. 췟. 그래도 모양을 보더니 새것 같다는 소리가.. 헐. 보고 잔소리를 하시던가.
저녁부터 컴퓨터, 노트북 2개를 놓고 데이터를 옮겼다. 300GB 정도 데이터를 옮기다 보니 완전 노가다가 따로 없다. Subscription으로 사용하는 office계정을 만들고 옮기고, 온갖 패스워드 2차 인증 반복작업을 하다 보니 짜증이 난다. 정작 데이터를 옮기려고 찾아보니 갖고 다니는 외장하드가 없다. 맞아... 그 녀석이 빌려가서 장기 사용 중이지. 작은 USB로 옮기려다 보니 엄훠 세월아 내월아다. 그래.. 클라우드가 있었지? 여기서 올리고 저기서 받고 하다 보니 게임방 만든 둘째나 드라마 보던 마나님이 인터넷이 안된다고 잔소리가 심하다. 다시 거실 공유기 살려놓고 작업을 하는데, 클라우드 동기화가 문제다. 데이터가 2번 날아갔다. 바보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건, 이게 왜 올리고 받기만 하려고 하는데 언제 누가 어째서 동기화를 한 거지? 신기한 일이다. UI가 보기만 좋지, 30년 전부터 사용하던 ftp가 훨씬 간단하니 좋다.
예전 롤스로이스가 '우리는 AI를 하지 않습니다. 우리 고객은 기사를 두고 있습니다'와 비슷한 광고를 한 적이 있다. 클라우드 저렴한 가격에 '고가제품 집단 장기 할부 서비스(일명 subscription, 구독)'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유가 있다면 내 하드에 담아서 내 맘대로 쓰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컴퓨터에 붙은 백업하드에 데이터를 다 올리고, 새로운 컴퓨터에 다시 다 내려받았다. 사용한 시간이 엄청 아깝다. 클라우드에 대용량을 올리고 내리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급할 때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백업용 대형 USB외장을 NAS로 바꿔서 하드를 8개쯤 달아서 raid를 만들어 볼까? 이런 생각을 하다 '욕을 빠르게 먹는 방법'이란 생각이 떠오른다. 내 마음이 나를 위해 종을 치는 것 같다. 그러다 경을 칠 거라고.
노트북 정리하고 정들은 데스크톱으로 마무리 중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신문물과 거리가 조금씩 늘어나는 세대가 되어간다. 사실 클라우드, AI가 모든 것을 할 것처럼 지금 열광하지만, 100년 뒤에 기술발전은 있으나 무모한 부분이 많다는 기록이 나올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이건가 저건가 막 해보는 시대가 지금 일지 모른다. 황금개척처럼 눈에 보이는 돈도 아니고 많은 사람이 매달려서 하는 중인데. 신기한 것과 사업화가 되는 것은 또 다른 일이다. 전기만 나가면 난리 나는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전기가 나가면 인터넷, 전화, 컴퓨터만 작동 안 해도 원시시대 느낌일걸? 배달의 민족만 안 와도. ㅎ
마나님이 약발로 사는 시대라고 해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산삼 진액을 판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외근에 너덜너덜해져 가는 팀장 녀석이 걱정이라 두 개를 샀다. 하나는 이 녀석주고, 하나는 마나님이랑 드시면 되겠지. 분명 새파란 달봉이 별봉이 먹이겠지만. 돈 쓰고 마음 쓰고 노가다하고 혼나고 이렇게 주말에 진입하고 있다.
약발만 받아봐라, 한 번 더 사지 뭐. 팀장 녀석 둘째 생기면 하나 더 사줄께라고 했더니 쫒겨난댄다. 이 말의 해석이 아리까리하지만, 알 수가 없음으로 '쫒겨나면 자유인'이라고 해줫다. 자유인이 홈리스일수도 있지만 본인이 알아서 하는거지. 그 틈새에 올재에서 삼국지가 출간돼서 샀다. 광화문 읍내 가기 싫었는데 온라인 주문이 된다. 설마 머리에 이고 자라고 하진 않겠지. 그런데 15" 노트북이 하나 더 생길지도 모른다. 이건 마나님 줘야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마나님이 데스크톱을 애 사줬는데 속이 쓰리신가? 대학 가는 별봉이 가방을 사준다고 하니 카드를 내놓으라고 하고 별봉이는 어마어마한 가격표 가방이 어떠냐고 해서 "한 번 날도 추운데 맞아볼래"라고..
잔돈 생길 때마다 재미로 하고 있는 미국주식 소수점 거래는 40%나 수익이 나고(왜 이래 한 주도 안 샀는데.. 0.67주, 0.48주 ㅋㅋㅋㅋ), 우리나라 주식은 갖고 있던 20주가 상한가를 가더니, 다음날엔 3주 갖고 있는 녀석이 상한가다. 익숙하지 않은 일이 생기면 잘 납득이 안된다. 펀드는 한 달 만에 6%나 수익이라 환매를 했다. 저축하고 남은 돈이 조금 늘었다. 동시에 또 뭔 골 때린 일이 생기려고 갑자기 왜 이러나 이런 생각도 든다.
자 그럼 지금부터 주말에 책이나 좀 보고, 뒹굴러 다녀야겠다. 손가락 깔짝거리며 쇼핑을 너무 한 거 같아. 알리에서도 전화기 2년 쓴 기념으로 케이스도 사고, 헤드셋도 하나 샀는데. 당분간 닥치고 검소하게. 오랜만에 오락실이란 노래와 산다는 건 다 그런게 아니겠니나 들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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