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보고 온 LIFE사진전 때문인지 오래전에 보았던 김기찬의 골목길 풍경에 대한 사진 책이 생각났다.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우리 막내 녀석이 "아빠, 여기는 베트남 아이들이야?"라고 물어보던 기억이 난다. 70년대만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벌써 4~50년전의 과거이다. 부모세대에게 어렴풋이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그 사진책을 보면서 즐거웠던 것은 내가 그것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슬픈 사실은 "골목길의 아이들이 소리가 사라진 만큼, 세상은 빛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그 빛을 인공의 네온사인이 차지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인간의 문명이 발달한다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관점이고, 자연의 관점에서 인간은 영원한 문제아일 수 있기 때문이다.
gentrification의 문제가 요즘은 많이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상당히 도시화되었고, 지금도 재개발에 따라서 지역민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강요를 받는다. 이 책을 보면서 20여년의 기간동안 세상이 발전이란 이름하에 도시화되는 것을 느낀다. 편리함과 윤택함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건물을 세우고, 벽을 치고 하며 우리도 소외된다는 것이다.
서울 근교, 천안, 하남, 성남, 미사리, 지방의 사진들이 있다. 나는 서울 태생이 아니라 사진속의 기억은 없다. 서울에 올라와서 살기 시작하기 얼마전에도 서울안이 이랬는지 잘 알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곳에 이런 발자취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또 마음이 가는 부분이 있다. 지금은 반듯반듯한 거리로 변해가는 부천을 보면 이런 초가집을 상상하기 힘들다. 불과 43년전인데 말이다.
어쩌다 들르게 되는 부천 중동은 지금은 다양한 건물, 관공서, 백화점등이 즐비하다. 42년전의 부천은 지평선이 보일것 같은 평야였나 보다. 하긴 어제 구로 마리오라는 건물에서 영화를 봤는데 그곳도 창업한지 37년이라는 간판이 놀라웠다.
여긴 송파 어디쯤일까?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일품일 것 같다. 작가는 보았겠지만 나는 이렇게 수묵화와 같은 사진으로 작가가 바라보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된다. 그런데 화려한 컬러사진보다 흑백의 사진은 더 많은 상상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작가가 사진첩 중간중간에 기록한 그 시대를 보면서 사진넘어 사람들의 삶, 삶의 변화를 잘 관찰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관찰이 기록이 되고, 이 기록을 통해서 세상과 함께 사람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재개발과 집한채를 높은 산정상에 올린듯 한 사진이 오래전에 신문에서 본 기억이 있다. 신문의 사진보다 이 사진은 gentrification의 상처를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산위의 기와집과 갈퀴로 긁은 듯한 깍아지는 절벽에서 상처와 그럼에서 생존의 의지를 갖고 있어 보인다. 참 위태로워 보인다.
이런 사진은 웃음이 난다. 개발과정에서야 어쩔 수 없겠지만, 작가는 이를 조롱의 의미인지 기억해야할 사건인지 어떤 의미로 앵글에 담았는지 모르겠다. 예전에 선생님이 시골에서 국회의원 선거할때 전기 들어온다고 해서 뽑아주고, 다음엔 진짜 전기 들어온다고 해서 뽑아고, 마지막에서 전봇대를 갖다 설치해서 이번에는 해주겠지해서 뽑아주었더니 당선되자마자 전봇대를 뽑아갔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왜 그런 이야기가 이 사진을 보면서 생각났는지 나도 알다가도 모르겠다.
지금은 개발가치를 제외하고 시설로본다면 형편없을지도 모른다. 바뀐 시대의 모습과 닭장처럼 빼곡한 칸들이 복잡해진 사람들의 마음같다.
"세월이 가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변하고 사라질 것인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존할 수 없는 노릇인가"라는 작가의 한 마디에 깊은 울림이 있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기술의 발전과 사람들의 편리를 위한 선택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지만 인간이 갖고 있어야 할 것들은 더 아름답게 보존되고 또 이어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