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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冊)

쟁경(爭經)-동양고전에서 배우는 이기는 기술

by Khori(高麗) 2013.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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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쟁경

자오촨둥 저/노만수 역
민음사 | 2013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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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경(爭經)이라는 생소한 제목을 접하며 전에 TV토론에 나온 최재천 의원이 "쟁"에 대해서 말하던 것이 생각난다. 내가 쟁으로 끝나는 말을 생각해봐도 경쟁, 분쟁, 논쟁, 전쟁등 힘과 논리등의 대립적인 의미를 많이 내포하는 것 같습니다. 우스개소리로 아쟁만 빼면요..

그렇다면 쟁의 장에서 이긴다는 것은 나의 논리를 상대가 인정하거나, 나의 논리가 상대방의 논리를 파쇄하거나, 상대방이 나에게 감화되거나, 아니면 세부적인 부분은 다르겠지만 큰 흐름의 주도권을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서구학자들이 설득의 심리학, 프리젠테이션, 협상의 법칙등을 논하는 것보다 이를 복합적인 의미로 선택한 쟁이란 단어가 좀더 멋져보이기도하고 또 가까이하고 또 가까이하기엔 어려움이 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협소한 의미로 쟁자체가 삶에 유익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적은대신 그것을 잘 이해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 넓은 의미로는 우리가 매일 매일 체험하고 실행하는 과정이고 책에 나오는 사람들을 통해서 어떻게 상대방과의 차이를 통해서 새로움과 바름을 같이 추구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게됩니다.

책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 양한/위진남북조 시대, 당송시대, 원명청의 시대로 구분하여 그 시대의 걸출한 쟁의 달인을 소개한 셈이다. 책을 읽으며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기전체와 같은 구조로 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좋은 예를 취한것 같아 고전을 읽는 익숙함을 갖게한다. 각 시대에서 뛰어한 논변가들의 시기, 논변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붙인 시대별 테마 타이틀이 재미있다.

1부 제가백가가 나타나고 다양한 유파가 출현하한 시대는 이책과 더불어 사기열전을 같이 읽으면 좋을듯 하다. 한문을 잘 안다면 원전을 같이 보겠지만, 김원중 교수의 사기열전이 완역되어 볼만하다. 물론 쟁경두권만한 책이 더해지는 부담이 있지만, 열전은 재미가 있기에 관련 부분만이라도 찾아서 다시 볼만한 책이 아닐까합니다. 통으로는 저도 한번정도밖에 못봤지만...다시 찾아보면 또 새로울 때가 있다고 봅니다.

춘추전국시대에서는 등석, 공자편이 그래도 제일 기억이 납니다. 뛰어난 논리와 비유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재주가 아니라 등석편에서는 우리에게 분별있는 쟁을 말하기 때문이고, 공자는 보다 다차원적이고 남을 몰아붙이기 보단 상대방을 품을 수 있는 보다 큰 의미를 느끼게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노자는 아리랑볼과 같은 커브, 맹자는 직구..공자는 그사이 슬라이더정도라고 해야하나요. 물론 강속구를 던지는 분들도 있긴합니다만 시대배경으로 이익에 관한 쟁이 많은듯 합니다.  특히 한비와 이사를 보면 세닌에서도 유세의 특징을 잘 말하고 본인들의 비참한 말로를 보면 쟁에서 중요한 것도 최소한의 바른 진실이 아닐까도 합니다. 


2부 궁정논변을 펼치다를 보면서는 세상의 틀이 체계화되고, 치자(治者)의 틀속에서 논변이 많은것 같습니다. 따라서 거대담론보다는 상황의 이해와 판단, 이에 적합한 논리와 감동등 보다 세밀해진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또한 상황의 이해와 판단이라는 것이 그때 그때 변화에 대한 대응을 내포하기에 어렵다는 생각과 무엇으로 딱 정해서 말하기 힘들지만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낀 몇가지 생각은 바름(正), 논리의 합리성 그리고 동방삭과 같은 유연성 마지막으로 인간이 느끼는 상식(common sense)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내가 하고자하는 바를 적절하고 통렬한 비유를 통해서 상대방을 이해시키고 감동시키는 것도 그 속에 이런 것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째던 2부에서 여러이야기보다 저는 논형의 저자 왕충이 참 맘에 기억됩니다. 왜냐하면 바른 논리는 최소한 평균을 보장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조금은 너무 세밀하고 조금은 쫌팽이같기도 하고 하지만 쟁의 장에서 세밀함과 논리는 충분히 필요한 무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동박삭의 유연성이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요. 맘에 딱 든다고 생각하는 말미에 그를 자유주의 사상의 철학자로 말하는 설명이 제가 꿈꾸는 자유인의 수준보다는 분명 높겠지만..살짝 동류라고 우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긴합니다. 


그외 제갈량의 평가가 삼국지보다는 낮은듯하지만 그의 말속에 현실의 흥망성쇠의 논리속에 필요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마치 현재의 유행의 반대가, 현재의 결핍으로 존재하고 다음의 유행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던것 같네요. 그리고 범진을 통해서 서양철학과 같은 세밀하고 현실적인 논리의 한 단면을 보게되어 됩니다. 물론 신멸론이란 책을 본다면 좀 어렵겠지만 소개된 글을 상당히 논리정현하게 현상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점은 내가 그 굴레의 상황속에서 이런 판단이 동요없이 가능하려면 스스로 수양이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3부 당나라, 송나라의 시대에 들어서면 사놓고 읽지 못한 오긍의 정관정요를 쟁경을 통해서 조금이나 보게되어서 좋은것 같습니다. 왜 당태종의 시대를 정관의 치라고 하는지 알게된것 같습니다. 그사람의 시대는 하늘이 줄지 모르겠지만, 그 오늘에 시의적절하게 경청하고 바른 뜻을 따른 다는 것은 나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위징이란 반대편의 논객을 품어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는 모습이 둘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합니다. 우리나라의 시각으로만 당을 보다가, 또 반대의 입장에서도 보면 그는 큰 성공을 한셈인것인데 그런 생각은 좀 안해왔던것도 같습니다. 송을 열어낸 조광윤을 보면서도 세상은 준비된 사람이 문틈으로 볼 수 있는 짧은 시간과 장소라 할지라도 제 역할을 다 해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구양수의 붕당에 대한 논리는 정말 핵심을 잘 가르는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나라의 운영이 중앙집권적이고 체계적으로 가면서 왕조란 시스템안에서의 논쟁이 갈수록 세밀해지고, 더 높은 뜻과 달리 권력, 명예, 욕망을 따르는듯 변해가는 것을 느끼게됩니다. 갈수록 정적을 제거하는 수단과 틀을 보게되는 것도 같구요. 


4부 원, 명, 청의 시대로 올수록 더 논쟁의 주제는 협소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특정분야에서는 고도화되는 것이겠지만요. 중간에 나오는 이지를 보면서는 여러가지 생각이 듭니다. 논쟁에 있어 중요한 것은 논리, 정당성을 바탕으로한 현재 상황의 해석등이 중요하지만 상대방과의 관계가 수평적이지 않을때에 처해야하는 자세, 그리고 상대방이 듣지 않을때는 우리 속담의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것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 현실은 뭐라 말하기 참담합니다.비록 틀리지 않지만 모난돌이 정을 맞고, 사라지는 과정을 보면 왜 사람들의 생각이 바름으로만 가지 않는지도 생각하고, 꼭 그리로 가야만 하는 것이 맞는지도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물론 당연히 옳은 방향으로 가야하지만 책임져야할 일이 너무 가혹할때가 많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속에서도 신념과 용기를 택한 많은 사람들이 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책이 두껍긴합니다. 하지만 사기, 정관정요와 같이 잘 보이는 곳에 두고 한편식 본다면 삶을 보다 유연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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