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에 보니 '케인즈 하이에크'에 관한 책이 들어 있다. 담아둔지 5-6년은 넘은 것 같다. 눈에 들어온 책은 카트에 먼저 담아두고, 목차를 구경하고, 서점에 들르면 한 번 찾아본다. 시간이 흘러도 카트에서 지우지도 않고 담아 두었다는 것은 사실 아리까리하다는 소리다. 그런데 선뜻 이 책을 샀다.
책을 산 이유라면 전쟁, 질병, 기근과 같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시대를 내가 살아내느라 고생이 많다는 점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불현듯 '총 균 쇠'라는 어마어마한 책이 생각났다. 케인즈는 인간이 만든 최악의 해결책 전쟁의 시대를 살아냈고, 우리는 COVID-19라는 알 수 없는 질병의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중이다. 전쟁의 피해가 크고, 직접적이라면 질병의 피해 또한 전쟁의 피해와 비교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을 체감 중이다. 동시에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도 크다. 전쟁처럼 건물이 부서지지 않는 점은 전쟁보다 낫지만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결코 피해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현재 1/5일 넘어서 읽고 있다. 더 읽다 보면 이렇게 두툼한 책은 그 앞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몰입의 강도는 나이가 들면서 조금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내가 산만해지고 손이 많이 가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2~3번에 읽은 것을 정리할 계획이다.
나도 케인즈를 경제학자라고만 생각해왔다. 그가 말한 시장에 대한 국가의 역할 정도로 이해해 왔다. 교과서에 한 줄 정도 나왔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배운 경제학 이론 수업에도 갈수록 수리적 분석, 미적분을 통한 미시적 분석, 확률 통계(대학 졸업할 때나 돼서 게임이론 이런 걸 가르쳤던 것 같음. 머리 아프게..), 헥셔 오린 그래프가 나오면 경제학에 국제를 붙여서 만든 이론들을 배워본 것 같다. 케인즈에 대해서 무엇을 특별하게 배운 것 같지는 않다. 기억나는 일화라면 금본위 제도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금 투자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 그에 대한 질문에 "경은 어떠한가?"와 같은 현타 오는 우문현답의 사례만 머릿속에 강인하게 기억이 남았다. 이런 나를 보면 학사, 석사, 박사, 자격증 시간 지나면 자격유지인지 확인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이 좀 있어야 한다.
1/5을 읽는 동안 특별한 이야기보다 케인즈에 대한 배경지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젊은 시절 구시대의 체제와 질서를 거부하는 반항적인 사고, 자유를 지향하는 조금 급진적인 젊은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시점에서 본다면 좀 똑똑한데 아는 척하며 놀기 바쁜 재수 없는 있는 집 자식 그룹 정도가 아닐까 한다. 그런 배경에서 관료의 길을 갈 수 있었다는 것은 탁월한 재능과 학습이 준비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잘 놀고, 재능도 부여받은 것이다.
숫자에 대한 탁월한 재능과 감각을 갖고 관료가 된 후, 자신이 지향하던 이상적인 삶과 거리가 멀어진다. 그 이상적인 삶에 대한 동경과 그 삶에 영향을 주는 현실의 문제 사이의 차이에 대한 접근을 보여준다. 그만큼의 the difference가 삶의 문제가 아닐까? 그 차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그의 장점이 숫자로 산출된다.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 같지만 道를 꼭 산에서 닦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중용이란 서로 상충하는 상황을 이해하고, 그 차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전쟁 속에서 재화의 소진과 전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전투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략을 수립하고 계획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인간이 창작하는 최악의 드라마인 전쟁이 자신의 이상과 상충하고 그 차이를 숫자로 정리한다는 것 또한 케인즈가 道를 닦는 과정과 유사하다. 그가 변하는 것이라는 표현보다는 상황에 적합한 대책을 찾기 위해 스스로 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생각이 든다.
전쟁이 끝나고 배상금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 세상을 굴리는 두 바퀴가 금권과 권력이란 이야기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돈과 정치적 권력이란 두 바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그 차이를 적절하게 균형 잡지 못하면 탐욕이란 놈이 인간의 행복과 희망을 갉아먹게 된다.
참 아이러니한 것은 지식의 많고 적음, 부의 많고 적음, 권력의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전쟁에 참여한 많은 이해관계자들과 배상에 대한 태도를 보면 차이가 없다. 전쟁이 급하면 우선 있는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전쟁이 끝나면 패자에게 죽지 않을 정도까지 온갖 이유를 붙여 착취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인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대영제국의 화려한 영란은행은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미국의 눈빛과 선심을 기대하며 자신의 제국을 갉아먹는다. 유럽 대륙의 국가들은 다시 영국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제국을 갉아먹는다. 이 이야기가 벌써 100년 전의 이야기다. 정작 그 시대의 최대 승자는 미국인 셈이다. 전장의 한 복판에서는 전세를 읽기 어렵다. 전세를 읽어도 전쟁을 이끄는 방향은 천차만별이다. 그런 점에서 더 읽어봐야 하겠지만 케인즈가 인정받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보는 중이다.
그런데 지금도 영국은 유럽 대륙에 대한 금융적 부담을 걷어차고 브렉시트를 했다. 그날 런던에 있었는데 다들 멘붕의 하루였다. 독일도 그런 상황에서 이웃집에 지원을 나 혼자 하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PIGS라는 나라의 부채 상당 부분은 프랑스가 갖고 잇다. 이렇게 복잡하게 돈이 얽히고 엮인 유럽 상황이 100년 전과 다름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전쟁이 없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엔 전 세계에 역병이 돌아 전쟁과 다름이 없다. 이런 와중에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배경을 모르는 한국에서는 전쟁 기운이 돈다는 소리가 많다. 우크라이나도 반은 유럽에 가깝고 반은 러시아에 가까운 환경을 잘 모르기 때문에 미국이 말하는 것을 필터 없이 그냥 다 믿는다.
케인즈를 계몽주의적 또는 철학자처럼 비친 모습도 인상적이다. 화폐와 이자에 대한 이론적 배경도 전쟁, 전쟁의 종식 과정에 나타난 다양한 국가의 역할, 국가의 역할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 시장이 각 개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생각이 담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특히 요즘 이론적 경제학 이론과 같은 논리적 접근의 한계성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쉽게 4차 방정식 이상이 되면 문제를 푸는데 엄청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수가 넘쳐난다. 요소가 많고 복잡하면 인간의 수리력을 넘어선다는 말이다. 왜 학교에서 3차 방정식까지만 알려주겠어.. 그나마 마지막 숫자는 에라 모르겠다 무시하면서. 반면 너무 정밀하고 작아져도 계산이 안된다. 현미경을 만들고 미분을 하지만 결국엔 그냥 극한으로 수렴하면 0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엄밀하게 같지는 않지만 이런 것도 인간이 일일이 계산하는 범위를 넘어선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어중간하다. 다만 이런 어중간한 것들을 둘둘 묶어서 신기방기한 통찰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케인즈를 경제학적 용어와 조금씩 나타나는 판단을 보면 중간에 힘쓰자는 공자와 칸트의 말에 참 부합한다는 생각이 든다.
시장 가격과 이자와 같이 확실한 숫자로 표출되는 것이 미래를 확정적으로 어떻게 바꾼다는 의미는 아니다. 왜 경제분석이 항상 틀리고 경제 중계방송이란 소리를 듣는가? 숫자로 표출되지만 숫자가 내포하는 상황과 의미를 잘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그 상황이 매일매일 변화하면 의미의 변화를 따라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 또는 경제정책도 세상을 일구어 나가는 한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한 시대는 시대를 풍미하는 생각이 있다. 그 생각은 인간이 처한 상황이 만든 필요다. 케인즈가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사고에서 탈제국주의적 사고를 갖으려는 노력(읽은 곳까지)은 전쟁으로 인한 영향이 크다. 그 시대의 생각 중 높고 고결한 00이즘 또는 시대를 관통하는 사유는 철학이다. 그 철학이 결국 시대의 주류 생각이라면 그 생각이 결국 인간의 문명과 생활에 영향을 주게 된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을 반영한 제도와 법이 출현하고, 경제정책이 출현한다. 그 결과의 호불호에 따라서 유지되고 개선되고 폐기되는 정책이 출현하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 곧 국가의 문화, 세상의 문명이 변화한다.
10년, 2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 시대는 이념적 접근보다 시대의 요구에 누가 더 부흥하는가의 문제다. 동시에 그 요구가 시대에 적절한가는 더욱 중요한 문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케인즈가 세상의 현상을 직시하고 그 세상이 운영되고 돌아가기 위해서 미국의 역량과 필요를 이해하는 것처럼 더 생각할 부분이 있다. 지금의 요구가 시대에 적절하고, 부합한다는 것이 우리가 살아갈 내일과 미래에 부합해야 한다는 점이다. 당장 오늘 집 팔아서 내일부터 고기 먹자는 말이 아니란 말인데.. 더 읽다 보면 어떤 생각이 또 떠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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