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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너드 케인즈(2) - 세상을 읽는 통찰, 무엇이 중요한 일인가?

by Khori(高麗) 2022.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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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을 읽어나가고 있다. 읽고 정리하는 것은 삶의 작은 시간을 들여 머리를 쓰고, 생각에 잠기는 휴식이 될 때가 있다. 당연히 피로가 몰려오거나 오늘처럼 읽다 잠을 자는 원인이 될 때도 있다. 얼마 전 학자가 될 것 같다는 댓글에 눈이 침침하다고 했더니 작작 좀 읽으라는 타박성 댓글이 달렸다. 삶도 일고, 즐거움도 해도 지랄, 안 해도 지랄, 하면 더 지랄이다. 적당한 것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케이즌가 전쟁 전후의 상황인식은 그가 풀어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후 리디아를 통해 본 러시아를 통해서도 영국 정당정치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내 관점에서 정치는 특정한 원칙과 방향으로 움직이지만 수용하는 범위가 제한적이다. 경제는 생존, 성장, 합법성, 시대정신과 철학, 성장 단계에 따른 변화의 범위만큼 더 운신의 폭이 넓다. 그렇게 세상을 보면 경제는 좌우가 없지만, 정치가 개입하면 자신의 방향성에 따라 범위를 제한한다는 생각이 든다.

 

 성장의 방식이 책의 구닥다리 분류 방식인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나눠서 보자.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정책이라도 성장이 가능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성장의 대가가 사회에 공감과 평화의 씨앗을 내리는가? 대립과 불만의 씨앗을 심는가의 문제다. 모두가 전자를 지지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 일이 내 이익과 관련되면 사람들의 태도는 다르다. 그 정도가 사회의 수준이다. 동시에 내가 혐오하는 상대방을 돕지 않는 방식의 선택도 만연한다. 양립할 수 없다는 단정은 검증이 필요하다. 케인즈의 말처럼 이런 획일적인고 편협한 무지가 문명 발전이 더디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케인즈를 보면 무지에 대한 혐오가 있다. 무지가 양산하는 폐해는 너무나 다양하다는 생각과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이 어떤 면에서 사회 부적응자 같고 불만이 많아지는지 이해도 된다. 그 사이에서 양립할 수 있는 관점, 사고를 만든다는 것은 이런 지식인들의 깊은 성찰, 사회에 대한 관심, 사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백 년 전의 이야기와 기록을 토대로 케인즈를 타인에 의해서 알아간다. 시대가 백 년 전이지만 현재의 시대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2008년의 금융위기를 1차 세계대전으로 2020년 코로나 펜데믹을 2차 세계대전으로 가정하고 읽어도 별반 차이가 없다. 전쟁의 고통이 크지만 생존의 위협이란 관점에서 둘은 교집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의미 있고 재미있는 말도 많다. 책을 잘 접지 않는데 몇 페이지를 접어놨다. "케인스는 확률과 동계적 빈도에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라는 문장을 몇 번 읽어봤다. 지금 시대에는 이런 부분이 더 고도화되는 중이다. 그러나 카지노 확률을 생각해 봤다. 손님이 이길 확률 49%, 카지노가 이길 확률 51%는 상당히 괜찮아 보이지만 그 확률이 만들어지는 빈도, 베팅과 수익의 총액 관리 관점으로 보면 이 말이 얼마나 허구인지 알게 된다. 한 명이 잭팟을 맞아 49%를 채우면 나머지는 모두 호구다. 그런데 확률은 맞다. 빈도 외에도 가중치도 생각해 볼 부분이란 생각을 했다. 경제가 로또는 아니니까. 그 문장의 마지막에 "확률을 판단하는 데 수학적 데이터가 유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확률 자체는 될 수 없다"라는 말도 재미있다. 나는 이것을 시간의 개념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할 때의 확률은 그것을 무한대로 일반화해서 수렴한 확률과 다르다는 것으로 생각해 봤다. 게다가 "합리적인 것과 옳은 것 사이에는 차이다 있다"는 말은 그의 사고가 다각적이고 더 깊은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펜데믹이 발생하고 정부의 적자재정의 증가를 통한 정부지출의 강화, 금융시스템에 대한 양적완화가 진행되었다. 그 재정지출과 비용의 규모라면 전쟁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지만 막대한 비용임에 틀림없다. 사실 그 돈은 모두 국민과 기업에게서 나온다. 그 돈이 다시 국민과 경제시스템의 윤활유로 작용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백 년 전에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사람들이 고통받았지만 또 그 과정에서 막대한 혜택을 보는 계층도 있었다. 지금은 이러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독재국가, 후진적 정치체제가 있는 소수의 국가에서나 발생한다. 인류가 그만큼 학습효과가 생겼다는 말이다. 케인즈가 잦은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경제를 죽이고, 경제활동의 참여자인 사람, 국가, 시장, 자본 또한 죽이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나의 지출이 너의 소득이고, 너의 지출이 타인의 소득이란 개념이 더 많이 언급된다. 그런데 경주 최부자가 100리 안을 관리하는 이유도 그것이 자신이 보유한 부의 근간을 훼손하지 않는 양립 가능한 방법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간의 연결고리와 역학관계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은 아니다. 나는 천 년 전에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는다. 과학기술이 범위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이 본질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시간 속에 이것을 이해하고 활용해서 세상의 발전을 견인하려는 사람과, 이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했을 뿐이다. 또 이해했다고 구현한다는 말은 아니다. 

 

 급격한 변화의 시대를 사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어느 세대라도 내가 급변하는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려서 한국전쟁을 경험한 세대인 부모님은 그때는 굶주리고 힘들고 어려웠다는 말씀을 하셨었다. 최근에는 요즘 세상이 과거보다 더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이 드신다고도 한다. 케인즈의 위대한 업적은 더 읽어봐야겠다. 한 가지 확실한 부분은 노자처럼 "합리적으로 보이는 것이 합리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비이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독자의 본능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란 표현을 통해서 나타난다.

 

 이 말을 곱씹어보면 어떤 상황과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상황의 인과 관계와 복잡한 연결성을 파악하고, 현상으로 나타난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진단하는 것이다. 그 후에 유지하고자 하는 대상, 앞으로 움직이고자 하는 방향, 문제의 해결과 예측이란 다양한 것을 고려해서 조치해야 하고 이 또한 합리적이고 옳은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옳은 방향까지 더하는 것은 미래과 연관되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시간 제약이 있다면 합리적인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읽을수록 매력 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아도 세상은 정치와 편견이 관여하면 이런 말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지식인의 고뇌를 통해 나온 바른 소리 하면 정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을 지향하는 큰 손과 큰 손이 되고 싶은 왕의 이전투구 속에서 지식인이 올바르고 합리적으로 걸어간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케인스와 같은 생각이 동양에도 우리나라에서 있었겠지. 단지 그것을 구현해야 할 때, 그것을 구현한 의지, 역량, 준비가 안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연휴에는 다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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