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에 나누어 읽으려는 의도는 철회해야겠다. 대공항, 희소성의 종말로 이루어지는 편을 읽으며 100년 전의 이야기가 맞는지 되새긴다. 최근 많은 경제 관련 이슈와 뉴스에서 언급되는 이야기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일반이론'을 한 번 읽어볼까 하는 호기심도 생긴다. 개념적으로는 이 책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책 표지 옆에 작은 글씨로 쓰인 "The price of peace"라는 문구가 새삼스럽다.
경제학은 식민지 시대에 생존학으로 번역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현대적 경제학은 글쎄 100년, 애덤 스미스부터 계산해도 300년이다. 대학시절 이야기하던 말처럼 사회과학은 과학인가? 더 직접적으로 경제학은 과학인가? 내 생각에 과학은 아니다. 무슨 법칙과 원리가 상황이 바뀌면 매번 틀리나? 그러나 관념적인 개념 접근에 과학에서 사용하는 수리적 기법을 통한 가설, 검증, 입증이란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에 과학은 아니지만 과학적이거나 과학처럼 하려는 경향이 높은 학문은 맞다. 솔직하게 인간의 두뇌로 처리할 수 없는 다양한 요인을 반영하지 못하고 간단하게 만들다 보니 맞을 때도 틀릴 때도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알아서 잘 적응해야 하고,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했는가에 따라 다르다. 자신의 학습 수준과 경험, 통찰력에 따라 경제학은 같은 수업을 들어도 큰 결과 차이가 나는 학문일 가능성이 높다.
"경제학은 확고부동한 자연의 법칙에 대한 냉혹한 과학적 탐색이 아니고 인간이 택한 정치 방식의 동향에 대한 일련의 관측일 뿐이었다"는 책의 문구가 아주 맘에 드는 이유다. 이런 관점이 개인과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과 효과를 만들까? 그것이 중요하다.
절약보다 수요를 이끌어 낼 과감한 투자(물론 감당할 범위 안이라고 생각)가 필요하고, 어떤 면에서 시장의 이해관계자이며 막강한 힘을 갖은 국가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타당하다. 갈수록 정부조달 시장의 규모와 힘이 강력해지는 것을 보면 100년 뒤의 세상인 현재에 케인즈의 의견은 세상에 유효한 셈이다.
K9 자주포를 정부가 사면 50억이란 돈이 기업과 협력사에 내려가고, 다시 그 돈은 임금으로 분배된다. 그 임금은 다시 소비가 되어 타인의 소득이자 다른 기업의 수입으로 이전된다. 이렇게 부가가치가 창출되고 정부는 다시 세금을 환수한다. 이 고리가 끊어지는 지점부터 승수효과는 사라진다. 또 이런 지출이 유지되다가 갑자기 없어지면 반대의 현상, 마이너스 승수효과가 난다. 이런 당연한 이야기가 100년 전에는 잘 정리되지 않았나 보다. 그렇다고 이해하는 사람이 그 전에도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단편적으로는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고, 연결고리를 끊는 방법은 개인의 판단, 기업의 태도, 정부의 정책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가능하다. 해결책은 경제적인 결과로 측정되겠지만 '개인, 기업, 정부가 그런 마음이 생기도록 어떻게 유인할까' 명제를 구축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결정 권한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에 따라서 각 참여자들이 느끼는 불평등, 평등의 수준은 결정된다. 이 관점을 갖고 경제와 정치를 바라보면 더 효과적이다.
현상은 경제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만, 해결을 위한 정책, 제도의 지원이 없다면 개인적인 노력에 따라 제한적으로 결정되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불평등을 양산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케인즈가 정치에 대한 관점을 갖는 것은 이런 배경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의 실패는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말은 나도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시장에 널린 물건을 보며 무조건 사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드는 바보는 없다. 욕구(want)와 필요(need)란 수요가 공급을 유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인간의 부작용은 감정적으로 욕구와 필요를 과대망상적으로 생각할 때가 있고, 합리적 이성이 돌아올 때 후회와 현타가 발생할 뿐이다. 바보도 한 달 뒤에 먹을 자장면을 지금 주문하지 않는다. 이런 실수와 부작용이 시스템적으로 발생하면 재앙이 발생한다. 케인즈가 대공항을 바라보는 관점도 비슷하다. (사실 다 같이 한 일인데 모든 원인이 한 놈들 탓이라는 것은 너무 무지한 망상이다. 사실 프로파간다에 가깝지만)
케인즈의 사상이 미국에서 실현되는(?) 과정은 2008년 금융위기를 이해하기 위해 읽었던 퍼즐 조각을 더 잘 이해하게 해 준다. 이 책을 통한 이해를 보면 대공항이란 어떤 관점에서 한심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불명예에 가깝다. 그 과정에 국제적 담합의 순환고리가 존재하고 탐욕, 적대심도 있다. 상황의 변화가 극적으로 좋아지면 별일이 없었겠지만, 악화일로가 되면 순환고리는 활화산의 순환고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누군가 삐딱선을 타거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은 인간의 역할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는 부작용이다. 도스 법, 금산분리의 기원이라고 하는 글래스-스티걸 법안의 과정을 보면 당시의 심각성보다 웃음이 난다. 이 과정에서 루스벨트가 금융시스템에 신뢰를 주려는 노력은 현명하고 또 인상적이다. 그러면 이것은 경제 문제인가 종교와 같은 믿음의 문제인가? 왜 심리학이 경제에 자주 나오는지 이해해야 하는 대목이다.
나는 제1금융권과 우리가 상상하는 사채(합법적이란 기준, 장기매매 이런 것 제외하고)의 차이를 이자율의 차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한다. 케인즈가 투자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따른다는 의견은 존중할 부분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투자는 기업의 투자 내용을 잘 모르는 비전문가 즉 금융권의 투자 승인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이 문제를 상쇄하기 위해서 정부지원 프로그램들이 존재하긴 한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위험을 관리하는 객관성의 측면에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의 지원자금이 기업에게 연결되는 중간 밸브 관리자들의 농간으로 사라지는 비용이 많다고 생각한다. 신뢰하지 않는 시스템(예를 들면 야바위)의 참여자가 저조하고, 신뢰하는 시스템(예를 들어 은행)의 참여자 수가 다른 것은 당연한다. 그런데 경제에 대한 참여자의 신뢰가 무너지면 재앙이 생긴다. 은행은 신뢰할만한가? 혁명 쿠데타 횟수와 뱅크런의 횟수를 비교하면 무엇이 많을까? 그것이 신뢰의 정도를 볼 수 있는 하나의 입증자료가 아닐까? 금융의 투명성은 제도적으로 더 규제의 틀이 명확하고 엄격해야 한다. 사실 남의 돈으로 투자에 대한 자금 투입을 결정하고 삽만 한 숟가락을 너무 얹는다. 가끔 일하지 않는 포클레인 같아 보일 때가 있다. 망해도 항상 정부에 제일 먼저 손 벌리는 대상이다. 기업은 또 은행을 거쳐서 손을 벌린다. 수도꼭지를 맡겼더니 돌릴 때마다 고리를 뜯는 느낌이랄까? 순기능이 많지만, 내가 금융권에 갖는 편견이다.
지출(마중물)을 통해서 펌핑을 한다는 케인즈의 생각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사고와 행동의 결과란 측면에서 아주 효과적이다. 일에 순서가 뒤바뀌면 좋은 계획도 망할 수 있다. 불이 나서 화재경보기를 누르면 표창을 받지만, 화재경보기를 누르고 불 지르면 감방에 가는 이유와 같다. 경제 정책에서 후자와 같은 일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장담은 아무도 할 수 없다. 심증적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빈도가 아주 높다고 생각한다. ㅎㅎ 사람들은 재앙과 불편을 직면한 뒤에 그 놈들이 화재경보기 누르고 불 질렀다는 것을 가끔 알 수가 있을 뿐이다. 민주적인 공소시효가 면죄부를 주기도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아주 경계해야 할 종자들이다. 경제와 더불어 올바른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케인즈의 탁견에 공감을 보내는 이유다.
희소성의 종말이란 챕터는 누구나 한 번 읽어보면 좋겠다. 교과서의 내용대로 세상이 돌아가지 않지만 교과서도 안 보면 중간도 못 간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애꾸가 장님을 쫓아가는 일을 할 수 있다.(신체적 결함을 비하할 의도는 아니라 더 효과적이고 적절한 비유가 생각나면 바꾸겠음) 현실에서 경제의 불완전성, 임금이 경제에서 말하는 최소의 투입에 따른 최대 효과(이 말이 한계효용 임)에 따라 최소에 수렴될 가능성이 많다는 말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고 최대의 투입으로 극대의 만족이란 조건에서 최대의 의미는 '주어야 하는 최대 금액'이 아니라 '주고 싶은 최대 금액'(또는 줄 수 있는)이란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대부분의 분쟁은 해석 문제다. 내 해석도 중요하지만 말하는 자의 해석이 중요하다. 확인이 중요한 이유를 알면 삶이 조금 현명해진다.
초기 확률과 빈도에 대한 케인즈의 말처럼 효율성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효율의 정의, 효율적이라고 판단하는 기준, 효율을 만드는 원인과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효율을 추구하는 그 대상과 목적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일이 시작된다. 쓸데없는 일을 더 효율적으로 쓸데없이 만들기 위한 노력은 드물다. 경제에서 돈과 신용관리는 국가의 고유 기능이고 이에 원인 제공에 대한 적절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케인즈의 관점이다. 어떤 면에서 경제 성장이란 이름하에 나라님 옥새를 찍어야 하는 일을 또 다른 시장 참여자들이 맘대로 해왔다. 이것을 고상하게 자유방임주의, 신자유주의(여긴 제도를 활용?)란 이름으로 과하게 진행된 시대를 살았다. 인간의 욕망에 부합하지만 올바른 방향과 균형적인 성장과 배분의 사회적 시스템을 위해 과유불급은 조정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화폐, 돈에 대한 케인즈의 생각을 보면 "돈을 다양한 상품의 상대적 가치 정보를 전달하는 메커니즘이자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이 소유한 물질의 가치를 안전하게 판단하게 하는 가치의 저장고로 인식했다"는 말은 재화의 교환 수단이란 고전 경제학자들의 생각보다 세련되고 적절하다. 그가 신용을 강조하는 것은 이 문장을 통해서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금본위 제도를 탈피한 지금 달러의 강세 또는 달러의 약세는 그 화폐에 대한 신용의 변동이다. 달러의 가치(이자율, 총통화 공급량)를 결정하는 FRB와 달러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미국에 대한 신용의 변동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환율이 항상 수요 공급에 의해서만 결정이 되는가? 작년 통화스왑 이슈가 나올 때 갑자기 폭등한 환율이 수요공급에 의한 결과일까? Panic sales가 더 적절한다. 통화스왑이 결정되자마자 폭락한 환율도 수요공급에 의한 결과가 아니다. 미래의 가능성, 그 가능성이 신뢰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요즘 FOMC 회의에서 나오는 제롬 파월의 입에 전 세계가 업 앤 다운을 한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신용인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믿을 만한 행동이 될 때 신뢰가 형성된다.(요즘은 인터벌도 짧고 이랬다 저랬던 널을 뛴다. 정확하게 지들도 모른다는 말이지 뭐) 그런 이유 때문인지 항상 아리까리한 말을 조심스럽게 한다.(얍삽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불확실성은 어쩔 수 없다. 대신 과정이 민주적이고 투명하다면 신뢰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경제규모를 생각하면 깜깜이를 조금 벗어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투명성이 얼마나 떨어지면 금피아란 말이 나오나.
케인즈가 경제문제를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의 문제라고 믿었던 이유는 그의 사고 흐름을 따라 걷다 보면 너무 당연한 결과다. 주어진 문제가 아니라 문제의 배경과 원인을 두루 넓게 보고 다시 문제의 근본에 다가서는 사고가 시대의 사람으로 남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녁에 3개 챕터를 더 읽었다. 일반이론이란 위대한 업적, 2차 세계대전과 전후 복구를 위한 국가 간의 활동에 대한 케인스의 견해를 볼 수 있다. 특히 하이에크에 대한 편지를 통해 아량과 겸손의 수준을 알게 된다. 일상에서 선빵이란 사실 약자의 전략에 불과하다. 자유를 기존 세상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은 세상 사람들의 자유를 보호하려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의 차이다. 내 관점에서 둘 다 자유를 지향한다는 점은 긍정적이고, 자유의 범위가 다르다는 것은 이견이 나뉜다.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고저의 차이에 따라 한 쪽은 다른 쪽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비난한다. 70~80년 전의 철학적 논쟁을 내가 사는 현대의 시대에도 보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움이다. 인간의 세상이 더딘 것은 시대의 철학과 실행의 시간적 차이가 존재하고, 그것이 세상에 구축되는 오랜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이 존재하고 사라져 가며 조금씩 더하고, 덜어내는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우던 브레튼우즈 체제에 대한 체감은 없다. 교과서에 나왔을 뿐이다. 그런데 미국의 정략적 결정을 보면 70~80년 전의 미국은 시대를 보는 통찰이 있었다. 케인스도 마찬가지지만 자신의 의도만큼 실현한 힘이 부족했다. 개인에게 차라리 안 보인다면 별일이 아니지만 잘 이해하고 할 수 있지만 할 수 없는 것은 큰 아쉬움이다. 예전에 읽던 화폐전쟁, 중국이 현재 미국과의 분쟁을 예견하던 책들을 보면 시대의 변화와 흐름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미국은 영국의 금권을 전쟁의 과정에서 쉽게 인수했다. 지금은 중국의 잠재력을 보며 선빵을 날리는 중이다. 내가 사는 시대는 미국의 힘이 남아있겠지만 우리 자식 세대, 손자 세대는 어떻게 변화할지 상상해 볼 부분이다.
무엇보다 전쟁, 분쟁, 불안정한 사회에 대한 진단을 현실적으로 바라본 케인스의 시야가 좋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하지 못한다'는 말은 자립을 요구하는 말이라고만 생각해왔다. 문득 극심한 가난은 나라가 운영되지 못한다는 말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케인스가 2차 세계대전을 극심한 실업이 불러온 사태로 파악한 점이다. 생존의 위협은 사람을 이성적인 존재에서 동물적인 존재에 가깝게 만든다. 하이에크가 비난한 루스벨트의 4대 자유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다. 동물적 본성을 중심으로 이성을 조금 더 할 것인가? 동물적 본성을 근간으로 이성적 역량을 쌓아 갈 것인가? 개인도 국가도 세상도 그 선택에서 자유롭지 않다. 생존력은 전자가 더 강하겠지만 후자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더 사람처럼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둘의 균형이 시대의 안정을 결정하는 것 아닐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완독이 가까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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