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하는 후배들과 맥주를 많이 마시고 뱅기를 타기로 했다. 라운지는 거의 휴게실이 됐다. 국내기업 대표이사들도 전시회 마지막날 라운지에 가면 거의 볼 수 있다. 이런 곳이 어쩌면 스스로를 영업하기 가장 좋은 기회일 수 있을지도. 비행기 타고 시체놀이에 정신줄 놓았는데 순식간에 인천에 도착했다. 예전과 다른 점이라면 한 자세로 오래 잠들었더니 엉덩이가 아프다. 예전엔 몰랐는데 어르신들이 하는 말이 뭔 말인 줄 알겠다. 쿠션 솜이 별로가 된 듯. ㅎㅎ 하긴 사람은 늙어 본 적이 없으니 자신의 경험으로 살아간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고 문득 옛날에 들었던 말이 체감으로 승화할 때가 있다. 다들 그렇게 사는 것 아닐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의 차이를 이해하고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하고 싶은 방향으로 조금씩 옮겨가는 것이 인생의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잔소리하는 후배와 이야기하는 내용도 결국 이 범위에 있다. 웃으며 “너 하고 싶은 걸 나보고 하라고 하면 형만 골병드는 거 아녀? 어휴 십 년 전에도 둘이 하고 싶어도 너도 안 되고 나도 안 되는 거 하느라 고생도 많았구먼 ㅎㅎㅎㅎ”라고 했더니 신나서 웃는다. 그렇지 않아도 공항 도착 전에 본 골로라는 광고를 보며 한참 웃었는데.
일이란 안 할 수도 있다. 평생 회사야 뭐 안 가도 그만이지만 지금처럼 집엔 반드시 돌아가야 하니까. 일 이야기보다 서로를 생각하는 그런 마음이 항상 돌아갈 지점이 아닐까?
맥주를 잔뜩 마시고 셋이서 품절되어 사기 힘든 히비키 양주를 사겠다고 면세점에 갔다. “구래 내가 한 번 깎아볼게”라고 했더니 무슨 면세점이 할인을 하냐? 미친 거 아니냐는 잔소리를 한다. 가끔 면세점도 말만 잘하면 깎아주기도 한다. 면세점 문 닫는 매니저를 보며 재미 삼아 흥정을 하다 서로 한참 웃었다. 그리고 사러 간 히비키가 아니라 각자 필요한 걸 샀다. 매니저도 재미있나 보다. 후배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하냐고 물어본가. “즐겁게 살려고. 또 한 가지는 영업이 감 떨어지면 안 되고 어떤 상황에서도 내 역할의 감을 살랴놔야지” 게이트에 물건을 갖고 온 매니저가 나를 보고 웃는다. “오늘 내가 마지막 고객인데 내년엔 할인해줄 거죠 매니졈님?”이라고 농담을 했더니 희한한 놈을 보고 재미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전시장에서 벌인 오지랖이 생각난다. 우리 업종에 못 본 스타트업이다. 영업사원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놀러 간 부스에 와서 영업을 한다. 나는 해외영업을 하는 사람은 업종을 떠나 동업자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서른도 안 돼 보이는 녀석이 이렇게 부스 영업을 하는 걸 보면 기특해 보인다.
AI관련 제안을 하길래 불러서 짓궂은 질문을 몇 가지 했다. 대답에 큰 기대가 있는 것이 아니다. 몇 가지 더 질문을 하며 좀 더 궁지로도 몰아보며 “내가 왜 이런 질문하는지 알아요!”라고 물었다. 당연히 젊은 친구는 그걸 알리가 없다. 그저 작은 내 생각과 25년 가까이 한 요약으로 더 좋은 해외영업 사원이 되라는 취지라고 말해줬다. 나도 언젠가 풋내기 해외영업을 할 때 세계 많은 사람들 중 일과 상관없이 전시회 조언들을 통해 배운 적이 있다. 그럴 수준인지 모르겠지만 흉내를 내본 것이다. 다만 도움이 되길 바라는 진심을 담았다.
그런데 오후에 덩치 크고 건장한 양반이 또 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영업하러 간 직원을 혼내서 찾아온 듯한 포스랄까? 스타트업 CEO가 찾아왔다. 엄훠 일이 커졌네. 3년을 경영했다니 젊은 친구가 대단하네라는 생각과 잘 성장하길 바라며 같은 이야기에 조금 더하고 높여서 이야기를 했다. 뜬금없이 명함을 달래서 이메일만 줬다. 자신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 것만 갖고 영업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문제를 자신들의 장점으로 해결한다는 신뢰를 얻고 그렇게 생각을 디자인해서 목표, 전략, 마케팅을 alignment를 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것이 곧 그 사람의 경영철학이 되고 기업의 역량방향과 문화가 되기 때뮨이다.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절반 놀러 간 전시회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참 감사하다. 졸지에 도와달라는 일도 있어서 좀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졸지에 잡오퍼를 몇 개를 받았다. 말이 잡오퍼지 이런 제안을 받으면 “날 데려다가 또 뭘 부려먹으려고”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미국 와서 영업할 생각이 있냐는 엉뚱한 소리와 국내업체 부사장님이 도와달래서 도와드렸더니 우리 회사에 와서 일 좀 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신다. 그 회사 대표님이 몇 년 전에 그런 비슷한 말을 하셔서 나도 두루뭉술하게 피해 간 적이 있다. 국내 분야 일등 기술력업체다. 그런데 괜히 내 자격지심이 이럴 때 아주 잘 작동한다. 오십넘어 길거리 헌팅을 받는 기분 나쁘지 않다. 애들이 왜 길거리 헌팅에 흥분하는지 기분은 좀 알 것 같다.
일을 떠나 살면서 오래 기억할 가출시간이 아니었나 한다. 매번 정신없이 왔다 후다닥 돌아갔는데 오쇼도 보고. 마나님이 맛있는 된장찌개랑 김치찌개 해준다고 했는데. 어느덧 이렇게 전화기로 뚝딱거리다 보니 집에 다 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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