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부터 내려오던 환율이 갑자기 치솟고, 3월 말 라스 베가스 출장을 가며 환전을 하며 실감이 난다. 1200원 안팎의 환율이 체감지수라면 10%는 인상(평가절하)된 느낌이 팍팍 다가온다. 2019년에 가고 코비드 재난 사태로 올해 가게 되었으니 4년 정도가 지났다. 뉴스로만 보던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한 것도 사실이었다.
내게 인플레이션이란 어려서 오일쇼크가 있었던 시절 같다. 시간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MBC에서 기름이 부족한 현실을 아주 재미없는 드라마로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고도성장의 시기에 학교를 다니고, IMF를 청년시절에 겪고, 금융위기 사태를 사회생활하며 체험했다. 중년이 되어서는 코로나 사태까지 어떻게 보면 10년마다 이런저런 사건들이 많았다. 하지만 돈이 휴지가 되는 인플레이션이란 것을 체험한 적은 없다.
공항에서 내려 우버를 끊으며 벌써 체감이 온다. 25달러면 가던 거리가 38달러가 넘는다. 우리나라 택시 기본요금은 거의 맥주 한 잔 가격이다. 90년대 짜장면, 맥주, 당구 10분, 담배값이 거의 같은 수준이다. 그러나 10년 전부터 이 가격이 제각각 갈길을 가기 시작했다. 미국 택시 기본요금은 대충 커피 한 잔과 비슷하다고 기억했는데, 이젠 우버가 택시보다 한참 비싸다. 팁을 25%씩 받는다.
베가스는 코로나에도 일 년에 4천6백만 명이 오가는 관광도시다. 사진처럼 화려한 불빛과 불빛을 등진 어두운 그림자가 혼합되어 더 화려해 보인다. 불나방들이 달려드는 이유가 뭐가 있겠나? 사실 가봐야 볼 것도 별도 없다. 이런 인위적인 시스템이 부조화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LA 쪽에서 온 지인들에게 물가가 4년 전과 비교하면 4-50%는 오른 것 같다고 했다. 훨씬 더 올랐다고들 한다. 인 앤 아웃 버거가 LA는 아직 7불인데 베가스는 12불이나 된다고 한다. 더욱이 12불 정도 하던 점심이 20불 정도 오르고, 그렇다고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라 난리라고 한다. 하긴 아침에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 마셨는데 7.95달러나 나와서 기가 막혔다. 두 배는 오른 것 같은 느낌이다. NJ에서 온 동생들은 한 달 전기료가 270-280불이었는데 지난달에 480불이나 나와서 충격 먹었다고 투덜댄다. 난방비 폭탄은 한국만 나온 게 아니다. 특히 전기로 난방하는 미국은 더 심각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에 한 마디 썼더니 친구가 빅맥지수가 있지 않냐면 물어본다. 맥도널드는 못 가서 인 앤 아웃 버거 가격을 말해줬다.
화창한 날씨 같지만 처음 베가스 날씨가 4도 정도인 것 같다. 대개 긴팔 입고 가서 더웠던 기억밖에 없는데, 패딩을 입은 사람이 많다. 같이 간 후배 녀석은 추워서 옷을 사 입었다. 수년 전에 낮에 비를 본 적이 있었다. 다들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했는데, 19년엔 눈이 오고, 작년엔 홍수가 났었단다. 환율만큼 날씨도 요지경이다.
KA는 본 적이 있다. 가장 유명한 O쇼는 한 번 보고 싶었다. 르레브 쇼는 볼기회가 있었는데 직원들만 보내고, 일하느라 가질 못했다. 이번 출장 중에 여유 있는 시간이 있어 찾아봤더니 170불이 넘는다. 19년 기억에 120불대로 기억하는데 170불이나 되니 부담스러워 건너뛰기로 했다. 혹시 티켓부스에서 할인표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후배들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더니 식당 예약을 본인들이 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문제는 다음날 시간을 잘못 예약해서 4시에 저녁을 먹자는 황당한 연락이 와서 한참 웃었다. 식당을 취소하고 대신 자신들이 오쇼 예약을 해줄 테니 저녁에 술을 사라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자리가 앞자리인데 맨 끝쪽이라 사각이 많은 지역이다. 그런 표가 179불이라니.. 술집도 마찬가지다. 혼자서 안 주 몇 개 먹으면 4-50불은 훌쩍 넘어간다. 한국식당에 가서 3명 정도면 카지노 슬로머신 돌아가는 느낌이다. 대체 미국 애들은 어떻게 사나? 돌아오는 전에 저녁으로 혼자서 치즈케이크하고 간단한 음식에 맥주 한잔을 시켰는데 50불 가까이 된다. 게다가 팁도 이젠 18%가 최소고 25% 정도까지 받는다.
리바이스 청바지가 49달러가 저렴해 보인다. 혹시나 하며 검색해 보니 국내 최저가가 5만 5천 원이다. 49달러도 2개 살 때의 가격이고, 8%대의 세금도 붙지 않은 상태다. 게다가 환율이 오른 지금은 훨씬 높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는 벌써 청바지를 몇 벌 샀다며 망했다고 후회한다. 입이 방정이네. 체감으로 5-60%가 달러기준이고, 원화로 보면 6-70%는 올랐다는 생각이다. 다들 이젠 백 달러가 예전 백 달러와 같은 기분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100달러 위조지폐를 슈퍼노트라고 하는데 이젠 어려서 할머니가 이야기하던 작기장 수준이랄까? FRB 대차 대조표를 봐도 금융위기에 총화폐량을 4배 늘리고, 코로나로 다시 두 배를 늘렸으니 총 8배 정도가 15년 전보다 늘어났다. 6-70% 오른 게 안 올랐다고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에 가면 사람들 얼굴을 보게 된다. 금년엔 더 자주 보게 된다. 업체의 국가와 사람 얼굴만 봐도 상태가 짐작이 간다. 미국 업체들은 고만고만하다. 하지만 예년만 못하다. 한국업체들은 과거보다 조금 나아진 것 같아 보이지만 여유가 있다는 느낌은 없다. 일본업체를 보면 측은하다. 업체도 이젠 보기도 힘들지만 까맣게 타들어간 일본 업체 직원을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이다. 반면 중국업체들은 미국시장의 제재에도 부스며 얼굴빛이 좋다. 전시회도 몇 줄이 통째로 비어있고, Sands Expo라는 전시장 이름도 Venetian Expo로 이름이 변했다.
화려한 카지노들이 바글바글한 도시다. 담배를 자유롭게 피우는 동네에 있다 보면 조심스럽게 100달러를 내는 사람들과 달리 중국 사람들은 수 백 달러를 만 원짜리 꺼내듯 한다. 작은 경험이지만 현재 돈 있는 나라는 중국이란 예측이 가히 틀린 것 같지 않다. 환전 제한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무색할 정도다. 중국에서 오신 분들은 중국이 미국 국채를 열심히 팔고 있다고 한다. 저녁 텔레비전에서는 일본이 미국 무기를 왕창 구매하는데 이례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것저것 미국에 투자를 엄청 한다. 어떤 면에서 많은 국가들이 미국에 돈을 주고 있는 셈이다. 마치 조직 폭력배가 관리비를 받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와중에 아주 익숙한 얼굴을 봤다. 제복을 말끔하게 입고, 낯빛 좋게 여러 수행원과 이리저리 날뛰며 사진 찍는 사람들과 돌아다닌다. 첫날을 제외하면 사람들도 없고, 전시회도 좀 슬로하고 마지막 날은 파장분위기인데 한국 경찰청장이 라스 베가스엔 왜 왔을까? 전시회를 오래 다녔어도 이런 일은 또 처음이네.
실제로 전시시간에 본 제한적인 미국을 보면 연준이 긴장을 놓지 않고 날뛰는 것이 이해가 된다. 혹시 버블이 많이 부풀어 오른 것은 아닐까? 독일에서 온 지인은 유럽은 돈이 아예 없고 믿을 건 독일밖에 없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출장 오기 전 도이치방크 상태가 안 좋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이게 믿을 곳이라니 참.
오래전 영국 파운드는 압도적인 통화였다. 지금도 달러보다 높지만 예전처럼 2배 이상은 안된다. 유로도 아직 높지만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그 외에 라트비아 동전이 파운드보다 높아서 놀랐던 적이 있긴 하다. 그러나 지금 보면 윤전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문제가 심각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누구 말처럼 '이러다 다 죽어'라는 말이 농담이 아닐까 걱정이다. 게다가 다들 헝그리해지면 예민해지고, 예민해지면 성질대로 해서 사고가 나는데 말이다.
#미국 #인플레이션 #환율 #체감경제 #출장 #kh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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