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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아보세 (書)

차분한 나들이

by Khori(高麗) 2013.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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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www.binarymarketingshow.com

좋은 추억를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사람이란 천지조화의 결정체는 계절이 아니더라도 마음의 시계가 꼭 그맘때가 되면 스스로 알려주는 기능이 있는 것도 같다. 오늘이 마침 그런날인 듯 하다.


한녀석은 공주님을 모시고 오고, 장가안간 마음따뜻한 웬수는 혼자오고..같이 가려고 했던 녀석은 첫 애가 생긴 고단함인지 감기몸살로 자리에 누웠단다. 임신한 제수씨보다, 자기가 더 유난인듯도 하다. 바쁜 일상속에서 이렇게 짬을 내서 모인것이 고맙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매일 보고, 부데끼며 살던 날들이 아쉽기도 한것들 보니 근 20년이란 시간이 그리 녹녹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하긴 오는길에 다리가 쑤신다니까 "이젠 늙는거야"하는 소리가, 나한테하는 소리인지, 세월을 타박하는 소린지, 자신에게 하는 소리인지..내가 찰떡같이 잘 알아듣는것이겠지.


오랜만에 온 공주님한테는 장롱을 뒤져서 작은 레고하나를 줬다. 올때까지 만지작 만지작 거리는 꼬마공주님의 마음을 볼때마다 참 즐겁다. 마나님이 장롱속에 있는 건 아무나 잘 안주는 건데라고 칭찬인지, 퉁을 주고, 웬수는 다음엔 꼭 조카녀석이랑 같이 와야겠다고 한다. 내 마음이 스스로 급한것 같다. 다시 방에 들어가 두리번 거리며, 아이들이 읽을 만한 동화책 3책권을 들고나와 다음에 올지도 모르는 꼬마도령것도 챙기게 된다. 조촐한 일요일의 외출을 알리는 축사로, 마나님이 후배들에게 매년 크리스마스에는 꼭 놀러오라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매년 그렇게 만나고 이어온게 20년이 다되간다. 


차는 빨리 올림픽고속도로를 지나 남양주까지 쉽게 도착한다. 전에 올때에는 개발전이라 한참을 돌아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젠 1시간도 안걸려서 도착을 한다. 사람만나러 가는 길은 이렇게 짧아졌는데, 마음속의 길은 갈수록 첩첩산중이 된것 같다. 돌아올때도 반듯반듯 올라가는 네모난 인계장이 나는 답답하고 혐오스럽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선배다. 신입생시절 학교를 그만두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쓰는 나를 잘 다독거려주고, 의기투합해서 같이 시작한 동아리도 이젠 매년 연락오는 후배들이 있음은 뭔가 잘 되가는것도 같다. 또 희뿌연 연기속의 거리에도, 소주한잔을 할때도, 많은 것들에 대한 공감대를 갖고 있었고 내가 아직도 배운것으로 먹고사는 길을 가는데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요즘 많이쓰는 멘토란 정의가 한참 부족하다. 왜냐하면 그 시절 같이 해봤던 일들이 세상에 나와서 보니 필요한 경험이고, 잘 배워왔기 때문이다. 잠시 도와드리던 일이 잘 되가는 것에 즐거워하기도 하고, 선배아버님이 말씀하시듯 세상에 따로따로 왔는데 형제같이 지내라라는 말이, 지금도 빈말이 아닐만큼 서로 그랬던것 같다. 그 만큼 추억이 많다는건 또 되새김을 할께 많다는 말이기도하다. 오늘 길을 나선 녀석들도 다 비슷하다. 비록 만난 시간에 조금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이건 마치 삼류 르와르의 영화에 나오는 동지들과 같은 마음이니까.


선배는 잘 지내는듯하다. 나도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은데 마음만 급하다. 아니면 나 혼자서 듣고 싶은 말을 내 마음데로 이해하고 오는 것인지 잘 모르겟다. 함께간 녀석들까지 어찌나 똑같은지..하긴 그러니 이렇게 오래 부데끼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오느길에 공주님이 배가 고프단다. 그러고보니 밥도 못먹고 얼굴만 급하게 보고와버렸다. 예전에 같이 자주가던 식당에 가보니, 주인은 그대로인데 많이 변한것 같다. 더 맛있는 곳도 많은데..


금년 겨울 모임엔 식구도 하나더 늘고..빈자리를 지워갈것 같다. 해외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녀석도, 바쁜일로 연락이 뜸한 녀석도 다들 잠시 흩어졌다 또 만나는 것일뿐이란 생각이 든다. 년말 준비나 미리미리 해놔야겟다. 집에 도착해서 한시간쯤 졸다 일어나니, 그 양반 참 보고싶네..소주라도 한잔 같이 하고 올껄 그랬나보다.  


오늘 길에 해가걸린 소나무를 찍어봤는데, 당연한 것이지만 해의 밝기에 따라서 가만히 있는 나무가 참 다른것 같네요. 왜 소나무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조금 알겠다는 생각이 들기도합니다. 하지만 올곧게 큰 나무는 베어지고, 세월을 견디며 이리저리 휜 나무는 분재란 이름으로 가치를 더하고. 그런데 오늘은 좀 야속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YES24] 차분한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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