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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_인문_사회_정치 (冊)

창조력은 어떻게 인류를 구원하는가

by Khori(高麗) 2017.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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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의력은 선천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타고나는 분야가 분명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들도 자신이 선택한 분야에서 계발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를 통해 삶은 반드시 변화한다. 지난번 대답할 수 없는 주제에 대한 30가지 질문에 대한 책을 통해 사고의 확장을 꾀한 빅퀘스천도 재미있다. 다시 그의 책을 읽는 이유는 그의 생각을 다양하게 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엔 이스라엘의 교수도 동참해서 더욱 재미있다.


 4IR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고, 기계가 현존하는 많은 일을 대체할 것이다. 막대한 연산이란 장점을 갖은 이성적 영역과 이 분석에 기반한 패턴부석을 통해 인간의 행동예측은 상당히 가능할 것이다. 나의 관심은 이런 파괴력을 갖은 기계솔루션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지 강한 의구심이 존재할 뿐이다. 확실하게 단위당 노동 시간은 좋은 방향이던 나쁜 방향이던 줄게 될 것이다. 생산의 결과물이 어떻게 분배될지도 궁금하다. 기계가 생산하고 모든 사람이 조세를 통하던 스스로 먼저 나누던 경제적 관점에서는 공산주의와 무엇이 다른가라고 생각한다. 어떤 면에서 자본주의던 공산주의던 모두 잘먹고 잘살자라는 목표는 동일하다. 방법적인 선후와 통제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을 간과했는지 고려했는지의 차이다.


 책의 관점은 유휴한 노동력이 결국은 인간의 삶을 어떻게 윤택하고 즐겁게 할 것인가에 집중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휴가가 길어지고, 일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은 무료함과 자괴감을 느낀다. 시간을 사용하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고 배우지도 않았다.따라서 사람의 창조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라는 예상은 일리가 있다.


 이 과정에 다다르기까지 책은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많은 이스라엘과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수동적인 학습의 굴레와 fast follower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산업의 특징을 지속적으로 비교하고 관찰한다. 그 비교과정을 보면서 나는 동양의 고전도 그들의 사고와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 문득 중용과 노자의 구절이 교차한다. 왜냐하면 혁신은 서로 다른 것들의 접점에서 생성된다. 서로 다른 것들의 접점이 시작되는 부분은 명확하게 나뉘지 않는다. 서로 끊임없이 교차하고 변화하며 구체적인 새로운 것이 되어간다. 마치 무와 유의 경계에서 우리 인간의 삶이 있고, 도가 선명하고 명확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의견을 모아서 발전적이고 창조적인 중용의 도를 나가듯 혁신의 방법이란 동양과 서양이 같다고 느낀다. 모두 인간의 인지, 분석, 판단의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창조력이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넓게 알아보고 관찰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고 그 관찰을 통해서 새롭게 필요를 느끼는 수준과 새로운 필요를 정의하는 높은 수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빅데이터를 모으듯 사람은 토론을 통한 다양한 관점 즉 정보를 수용하고 분석하게 된다. 나는 빅데이터를 접근하는 과정이 사람이 경험을 축적해서 인식의 틀과 안목을 높이는 과정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그렇게 어렵게 말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딱 보고 인식하는 패턴을 기계가 흉내내도록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가 남들은 바라볼 때 나는 꿰뚫어 본다고 하듯, 동양에서는 수 천년전에 벌써 공자가 나는 일이관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관심과 필요가 적극적인 토론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질문의 형태로 표출되어야 더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 우리는 기계처럼 사람이 작업한 결과를 네트워크를 통해서 취합,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질문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타인의 관점과 정보를 획득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슬로건은 이러한데 질문을 많이 하면 입막음을 당한다. 너무 창의적인 접근은 보편적 사람들에게 또라이 취급과 왕따를 당한다.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조직도 마찬가지다. 그저 신기방기한 아이디어는 공장 돌리듯 짜면 나오는 줄 안다. 나도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불편함 때문인지, 다른 관점이 불편한 것인지 하여튼 획일적 주입식 교육은 일정부분 효과를 인정하고, 일부 적합한 분야와 사람이 존재하겠지만 모두에게 무식하게 강요하는 사회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질문을 통한 정보취득, 분석등의 결과를 갖고 새롭게 정의된 필요를 알 수 있다.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서 목표를 새우고 도전한다. 그 도전이 신이 아닌 이상 성공과 실패의 결과를 양산한다. 장수가 싸움에서 지는 일이 있을 수 있듯, 실패는 불시에 삶에서 다가온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이해하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에디슨이 전구가 만들어지지 않는 수많은 방법을 획득했다고 말하듯, 실패에 대한 압박과 좌절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나 실패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 가지 방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혁신의 과정으로 나아간다. 가죽을 벗겨 새살이 돋는 과정이란 의미처럼, 혁신은 유쾌하고 즐겁기만 한 과정이 아니다. 쉽게 얻어진 것의 가치가 낮고, 누구나 핸드폰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정보는 경쟁력이 없다. 그 과정에서 똑같은 것을 보고 새롭게 느끼고, 남들과 다르게 사용할 수 있는 안목과 도전이란 실행력을 키우는 것이 곧 학습과 반복을 통한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다. 


 지식과 경험의 축적은 결국 시스템과 교육을 뛰어넘게 되어 있다. 시스템이란 하나의 틀에 그 목표를 위해서 사람을 가두는 것이다. 그 굴레를 경험하고 다시 그 굴레를 벗어나야 높은 수준에 다다를 수 있고, 교육이란 과정을 통한 지식을 축적하고, 그 교육이 편견임을 자각해야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학습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도전적인 정의를 통해서 피터 드러커의 통찰력에 다시 한번 깊이 공감하게 된다. 책의 내용을 내 나름의 이해로 정리하며...


#김대식 #4차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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