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람들의 변덕도 덩달아 끝이 없다. 하루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이 세상이다. 그런 일상의 작은 기쁨에 즐거워하고 슬픔과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것이 대한민국만의 일도 아니다. 내가 돌아다녀본 다른 나라도 비슷하다. 정도의 차이가 축적되고 그 지표의 대표적인 수치인 화폐적 계량 평가를 통해서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을 말하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더 혼란스럽다. 여러 나라를 가보면 물질적으로 한국보다 못하지만 살만한고 마음 따뜻한 곳이 있고, 잘 살아도 이런 곳은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나에게 다가오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사회와 문화가 만든 영향에 대한 느낌과 생각이다.
종종 어린 시절의 사회를 기억해보고, 현재를 보면 우리는 편리함과 넉넉함을 돈이란 수단으로 바꾸며 각박해진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인간의 문화와 문명이 정확성과 합리성이란 이름하게 조금씩 재수 없게 변해간다는 점인데 인간이 그렇게 완벽하지 못한다는 점을 보면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부작용의 원인은 탐욕이 근간에 자리 잡는다.
책의 서두는 경제적 지표인 소득, 성장을 통해서 전후 60년 가까이 우리가 얼마나 큰 성장과 성과를 이루었는지 말하고 있다. 현재 할아버지, 할버니 세대의 부모 시절부터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결과다. 현재는 열심히 해도 쉽지가 않다고 느끼는 점이다. 이런 부분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돈과 데이터는 좌우가 없다. 해석과 관점에 좌우가 있을 뿐인데 자신의 해석을 바탕으로 돈과 데이터에 좌우란 구시대적 개념을 더해 편견을 증폭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것이 문제다. 그렇다고 국민들에게 편익이 돌아가는 경우보다 중간에 일명 슈킹, 와이로를 먹었다는 사실을 통해 앞뒤가 안 맞는 세상의 현실을 바라볼 때가 많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다.
그럼 물질적으로 성장했는데 사람들은 왜 불평등하다고 생각할까? 최소한 전보다 나아진 것 아닐까? 내가 접한 작은 세상을 봐도 30-40년 사이에도 물질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런데 사람 인심은 훨씬 사나워지고 재수 없다는 생각을 금할 길 없다. 이런 느낌은 비관적인 나의 관점일까? 그럴 수도 있다. 동시에 물질적 발전과 대비해 뭔가 제대로 함께 성장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한 가지가 의식 수준 즉 문화 수준이란 생각을 한다. 책 속에 소득계층, 청년, 노인,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쉬운 점이라면 마땅한 해결책이 안타까운 현재의 적나라한 데이터와 사실이란 점이다.
세상이 발전한다는 말을 고도화라고 한다. 대부분의 고도화는 계산적 분석이 더 복잡해지고, 정확해지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을 쉽게 하면 예전에 콩나물을 사면 아줌마가 집는 손의 크기와 인심(=나의 태도가 미치는 영향)에 비례했다면, 지금은 비닐 봉다리에 저울로 정확한 양이 포장된 상태로 만인이 평등한 것처럼 느끼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인이 평등한지는 좀 생각해 볼 일이다. 특히 개인적 역량이 발휘될 기회가 원천 봉쇄되었다는 점이다. 다른 관점에서는 협상의 기회가 없음으로 판매자가 가격을 결정하고 휘두르면 대다수가 속수무책이다. 가끔 불매 운동과 같은 일이 있지만 개인들이 시스템에 영향을 주기 대단히 어려운 구조가 된다. 아줌마나 회사나 정책을 바꾸면 소비자들은 멘붕이나 불만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아줌마랑은 쌈박질을 하던, 협상을 하던, 뭔가 협의해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접근성이 있다면, 회사에 대해서 소비자가 뭘 한다는 것은 어렵다. 용기 있는 자가 소비자 보호원에 신고를 해도 결과가 아니라 업체에 권고 수준일 뿐이다. 이런 시스템이 갖는 구조적 특성에 대해서는 특별히 알려주는 곳이 없다. 단지 시스템이 주는 장점만 이야기한다. 불평등은 그 이면에 수도꼭지를 잠그고, 틀 수 있는 권한과 반드시 연결된다. 이것이 다시 권력, 계층, 권한과 연계될 소지가 높다는 생각을 한다. 동시에 시스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과 기관이 힘을 갖는다. 요즘 개혁이라 말하며 그 대상을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가?
시스템을 도입하면 일정한 포기도 수반되고, 성장 집중이란 결과를 낳기도 한다. 문제는 기분이 나빠지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출현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출현이 통계적 자료를 통해서 근거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부는 그런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에 익숙해져 가고, 누군가는 반발하고, 그렇게 당장의 기분은 나쁘지만 생존이란 문제 속에 무엇이 문제인지 잊고 살아가기 바쁘다.
이렇게 사람들을 몰아가는 시스템은 비문명적이고 비인간적이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것을 이해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세상을 볼 때 매트릭스 영화를 자꾸 생각하게 되는 이유다. 세상은 생산과 분배가 균형을 이루고, 이 생산과 분배를 조율하는 국가 관리들의 카르텔(공무원이 갈수록 가장 강력한 이익집단이란 생각이 들기도 함)이 최대 효과만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선 최대의 사람에게 또는 필요한 사람에게 자원이 집중되거나 분배되는 것도 필요하다. 일관성 있게 획일적인 것도 필요하지만 이것만큼 사람 맛을 보내는 일도 없다. 그렇게 해야 할 일도 있지만 사람에 관한 일은 융통성이 필요하고 이것을 제도화하기엔 인간의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워낙 서로 변덕스럽기 때문에) 사실 국가사업 예산 중 공무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소진하는 비용이 민간기업들의 프로젝트와 비교해서 얼마나 뛰어난지 의문이다. 영업으로 보면 판매관리비와 같은 비중이 높을 수 있다. 높아야 하는 분야도 있지만 세금 거둬서 정말 자기 집안일하듯 하면 많이 바뀔 소지가 있다. 요즘 걸핏하면 전화기에 나타나는 허경영의 말이 과하지만 관료들과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 되돌아볼 부분이 많다. 그가 틀렸다고 반박하기 어려운 부분이 존재한다.
회사를 다니며 출장비 기준을 보면 임원, 팀장, 팀원들의 기준이 다르다. 숙박비의 기준은 업체 미팅 대상에 따라 달라지고, 직원들과 기업의 체면을 위해서 한도가 다르게 책정될 수 있다. 내가 제일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은 체류비(식대, 교통비) 부분이다. 임원은 하루에 10 끼 먹고, 직원은 3 끼 먹나? 기본 비용은 비슷하다. 식사 대접의 경우에는 별도 비용 처리를 한다면 기본 지급비용은 사실 거의 비슷해야 한다. 내가 임원이 되어 회의상에서 해 본 말이다. 차라리 임원 입장에서도 얼마 안 되는 비용을 줄여 함께 더 잘하기 위한 비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세상에 나와보면 그런 일은 참 드물다. 심지어 악착같은 사람들이 더 많다. 한편으로 불평등에 대한 피해의식이고 한편으로는 남들도 가능하니 나도 그렇게 악착같이 탐욕 때문에 불평등을 가속한다. 동물의 세계와 무엇이 다른가? 세상의 약자에 대한 복지는 다른가? 기업도 세상 속에 있고, 세상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평상시 '아이들이 미래다'라는 말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아이들과 청춘들이 즐겁고,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문화를 통해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20대를 돌아보다 지금의 20대들의 문화를 단편적으로 보면 글쎄? 미안함? 20년 뒤 미래에 대한 걱정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세상의 미래인데 미래가 떡잎이 누렇게 떠서 황달이 오르는 사회가 희망을 잉태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매체에다 이 문제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좋은 효과가 나오는 것은 별로 없다. 아님 내가 잘 모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불평등 뒤집어 생각하면 공정(특정 정당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사전적 의미)이란 의미가 세상에 더 넓게 활용될 필요가 있다. 정치에서 공정은 마치 "공격은 정확하게"라는 수단과 말장난이란 생각을 더 많이 한다. 효과와 결과가 고도화된 사회만큼 측정이 되어야지...
통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전체의 부는 증가했다. 그런데 한 마을의 부자는 한 명이고 나머지 마을 사람들이 소작농이라면 아니 그런 세상을 향해 달려간다면 모두들 좋아할 일인가? 그래서 제도와 법률이 세상의 변화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그렇게 변화해도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 정책이 나오면 대책을 낸다. 한 발 느리지만 제도와 법률이 따라가면 사람들의 행동이 변하고 사회적 문화에 영향을 준다. 불평등은 어쩌면 세상의 변화와 흐름들을 모르거나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 크기만큼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 크기만큼 사회적 문화도 물질적 수준에 비해 떨어지는 일이다.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면 현재 우리나라가 졸부의 위치에 다다랐고, 졸부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정말 그 이상의 과정을 걸을 것인가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란 생각을 한다. 배부른 소크라테스는 없다. 배부른 돼지와 헝그리 한 소크라테스의 이전투구는 계속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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