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신반의하며 산 책이다. 전념이란 뜻은 한 가지에 몰두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몰입은 무엇인가에 빠져든 상태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전념한다'는 마도 요즘 드물지만 문득 몰입과 다른 의미란 생각을 했다. 책 제목이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다.
"뭔가 하기로 했으면 제대로 배우고 연마해야 한다"라는 어린 시절의 충고를 책의 초입에 꺼내고 있다. 이 문장을 보고 난 내 삶의 시간에 어떤 것들들에 전념했을까? 어려서는 놀고 재미있는 것에 전념하고, 고등학교 시절 문과생이나 그냥 수학이 재미있었다. 희한한 일이나 나이 먹어서도 도움이 많이 된다. 대학시절에 전혀 세상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 것도 아니지만 여행처럼 싸돌아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사람에 전념해서 집에 다 모셔두었더니 엄한 AS센터에서 나올 법한 말이 가끔 나온다. ㅋㅋ 그 후론 취미란 이름하에 레고, 독서, 영화보기가 전념의 단계를 넘어 익숙한 것들이 되고 있다. 돌아보니 별로 한 게 없네. 그 외에도 잡다한 것과 일을 하며 시간을 죽였는지 살렸는지 지나왔다.
현대에 미래의 불확실성과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liquid modernity로 표현한 것은 참 문학적이다. 노매드처럼 어디든 흘러갈 수 있다는 것, 난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일을 시작할지, 아니면 하던 일을 계속할지,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다"는 말처럼 자유의지, 선택에 대한 책임을 안고 갈 뿐이다.
인생에서 방황의 시기, 질풍노도의 시기는 불가피하다. 노무 곱게 크면 역풍 노도의 시기가 나이 먹고 생긴다. 그 역풍에 좌절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청소년기만큼 많은 것도 분석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복도의 여러 문을 두드리는 것보다 하나의 문을 열고 그 안에서 확실한 하나를 준비하는 것이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왜 나는 이것이 하나의 길들이기 프레임처럼 느껴질까? 물론 어떤 성취에 있어 전념의 과정은 필요하다. 문제는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관심과 재능이 잘 부합하는지 한 번에 알 수 있을까? 척 보면 압니다도 아니고.
내 관점에서 이 책에서 말하는 전념의 과정과 개인의 자유의지를 보면 상충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된다. 그 길을 빨리 찾는 것은 옛날처럼 할아버지의 직업을 아들이 갖고, 아들의 직업을 손자가 갖고 가업이란 이름하에 재능과 상관없이 방에 가두고 그 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모범적이고, 누군가는 잔인한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 이런 사례가 먼저 생각난다. 너무 순종을 강요하는 느낌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비주류적이나 반모범적인가?
만약 일정한 시기엔 무한 탐색의 시기를 보내고, 또 일정한 나이가 되었을 때 선택과 전념의 방식으로 설명하면 어땠을까? 지우학, 약관, 이립, 불혹, 지천명은 인생의 시기에 맞게 무엇인가를 요구한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지우학에서 학이 국영수만 의미한다고 볼 수 없다. 학교에서 그 다양한 과목을 왜 가리키나? 얼마 전 읽어 본 Gig에 관한 책을 보며 공감이 떨어지는 이유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온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과하게 설명하면 직업 선택의 자유는 선택할 역량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런 유사한 말들이 30년 전에도 많았지만 복잡 미묘하고 인간의 갖은 해괴망측하고 놀라 자빠질 역량을 보면 그대로 된 것이 드물다. Gig의 생활을 위해서 내가 하나에 매달리지 않아도 삶을 영위할 수단, 실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세상이 완전고용이나 국가가 민생고 해결을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 동시에 인간의 역량은 영원하지 않다. 내가 일용직이라 매일매일 다른 일을 하게 되거나 종종 쉰다는 것을 최악의 gig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자유로운 직업과 휴식 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 대상과 life cycle에 따라 다르다. 때에 맞는 일을 해야, 조금이라도 결과가 좋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실패와 좌절의 맛을 본다는 것은 큰 배움이다. 계속된 실패와 좌절은 나와 내 방향성을 돌아봐야 하지만 적절한 실패와 좌절은 내가 나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는 기회다. 전념은 세상과 나를 바꾸는 큰 동력이지만 주변과 상황, 체험과 학습을 통해 다양성을 먼저 느끼고 스스로의 결핍을 인지했을 때 필요한 것이다. 왠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열심히 하라는 말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 거부감이 있다.
"첫발을 떼지 않으면 제대로 전진할 수 없고, 제대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전념이 필요하다"라는 세스 고딘의 평에 감히 과격한 의견을 달아보고 싶다. 대부분의 첫발은 누군가의 도움에 기초한다. 그 첫발이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인지는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무조건 처음 한 것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은 강박일 뿐이다. 이것은 순서의 문제다. 아이만 봐도 첫발을 떼면 여기저기 산만하게 다니며 좌충우돌하다 결국 스스로 전진을 하게 된다. 그런 실패를 통해서 방향을 더 정밀하게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탐색 없이 달려들면 타고난 재능이 없다면 실패 확률만 늘어나다. 그리고 좌절하면 스스로 일어나는 독립성에 큰 타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왈저의 복합 평등, 가치 영역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한 가지 영역의 힘을 다른 영역의 힘으로 바꾸면 부조리가 생긴다는 점이다. 그 사례가 아마도 돈과 권력의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지식은 하나의 영역을 배워, 다른 영역에 영향을 주고 성과를 내면 부조리가 아니라 혁신에 이루는 한 가지 길이다. 무한 탐색과 전념의 균형이 시간에 따른 단계로 구성돼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분야와 대상, 과정을 보면 다를 수 있는데 책의 시야가 조금은 협소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자신의 손을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은 도와줘도 한계가 있다. 또한 타인은 도와줄 수 있을 뿐 결국 어떤 성취는 자신의 힘으로 한다. 성취는 일시적 전념으로 다다를 수 있지만 무엇을 전념해서 어떤 수준을 성취할 것인가는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다. 열심히 보다 제대로가 먼저라는 삶의 교훈은 항상 옳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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