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에 관한 책만 해도 집에 여러 권이다. 또 다른 책을 한 권 더한다고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같은 책이지만 관점과 상황에 따라 이해하는 바가 또 다르다.
사실 나는 같은 책을 두 번 읽지 않는다. 이런 일은 학교 다닐때 교과서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젊을 땐 기억력으로 버티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깜빡증을 해결하는 문제는 대단히 난해하다. 늙어본 적이 없는 녀석들은 이해할 수 없다. 사기에서도 조짐을 잘 파악해서 준비하라고 하듯 인생 준비에 독서만한 것이 없다. 나이먹고 물어보기도 창피한데 찾아볼 곳도 없다면 엄청 막막한 일이다.
어째든 같은 책을 두 번 보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같은 책이지만 다른 책을 사서 볼 때가 있다. 한 번 읽을 책은 읽을 때 지난번에 생각했던 것들이 떠올라 새롭게 읽기 어렵다. 글자가 주는 강렬한 기억 재생은 생각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다른 생각을 방해하는 편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접근법이 기획, 전략, 협상에도 도움이 된다. 쉽게 기획이란 한 가지 사물을 몇 가지로 정의할 수 있는가? 어떤 상황을 몇 가지로 해석해서 풀어갈 수 있는가? 많은 이해 관계자들은 어떤 방향과 결과를 생각하는가? 이런 문제에 가깝다. 그 상상과 해석을 바탕으로 새롭게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이다. 사실 모든 분야가 동일하다. 기획과 계획이란 대부분 작은 관찰과 생각에서 시작한다. 이런 생각을 현실로 갖고오는 일이 쉽지 않은 것은 모두 사람때문이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그나마 낫지만 세상 일중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세상에는 수많은 공통점과 수많은 차이점을 갖은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정작 문제의 핵심인 그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의견을 모두 들을 수 없다. 미래의 사람들은 알 수가 없고, 과거의 사람들은 접할 수 없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내가 처한 상황과 똑같은 사례는 더욱 찾기 힘들다. 다만 역사의 사건, 상황, 이해관계자, 해석 그리고 나의 상상력이 현재를 풀어가는 작은 열쇠를 준다. 과거의 진실을 잘 담으면 미래의 가능성을 구체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뿐이다. 내가 사기를 처음 읽으면 들었던 생각은 마치 내 주변이 책 속의 일화와 데칼코마니처럼 시간을 넘어 겹치는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익숙해지며 상황 속에 몰입하면 또 옛날 바보짓을 내가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느낌이 될 때가 다시 한번 스스로를 점검할 때가 아닐까?
'사기의 인간경영법'이란 글씨만 보면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 기원전 역사적 상황, 그 상황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탕으로 한 선택과 행동, 결과를 볼 수 있는 좋은 책이 사마천의 사기다. 그 속에서 인간의 관계가 형성되는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서 사람들 속에 자리를 틀고 있는 다양한 품성, 인격, 본능, 욕망, 의지, 탐욕 등 다양한 것들을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의 조각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있다. 과거의 그들도, 오늘은 살아가는 사람도 이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결정한다. 무엇보다 결정과 실행 후에 망작인가? 평작인가? 띵짝인가?를 통해 희로애락이 스쳐간다. 대부분 망작은 잘못된 생각과 시작에 기인한다.
모든 것을 인공지능 컴퓨터처럼 기억하고 소환해서 처리할 수 없다. 대신 인간은 다른 것들 속에서 본질적 동일성을 꿰는 능력이 월등할 뿐이다. 자신의 가치관에 어떤 좋은 것들 특히 과거의 진실 중 순도가 높은 것을 어떻게 담는가가 중요하다. 돌아보면 몰라서 망작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망작으로 가는 선택 과정에서 내 그릇의 원칙이 잘못되지 않도록 보살피지 못한 탓이다. 쉽게 내 탓이란 말이다.
다양한 고사들의 상당 부분은 읽으면 다시 기억이 난다. 그러나 지난번과 상황이 다르고 또 눈에 들어오는 다른 글들이 있다. 인문 고전이 좋은 점은 이런 이유다.
"세상의 일에 사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과 본래부터 그런 것이 있다"
이 뜬구름 잡는 알쏭달쏭한 말이 무심코 넘어가지질 않는다. 별반 차이가 없는 뜻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그 작은 차이가 아주 큰 결과의 차이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제정신만 잘 유지해도 원래 망작은 좀 피할 수 있겠다. 이런 근거없는 생각..
"이사는 더 올라갈 곳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발판으로 자신이 손쉽게 다룰 수 있는 대상을 선택하려고 했습니다. 그 대상의 품질은 고려하지 않은 채 말이지요"
동문수학한 한비자를 제거하고, 진시황이 죽고 조고에게 놀아난 이사. 뛰어난 지식인이지만 세상은 지식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다. 명문대학 나왔다고 모두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좋은 시작은 더 좋은 일에 접근 가능성과 확률이 있다는 것일 뿐이다. 학교 졸업하고도 그때까지 산 기간의 몇 배를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한다. 기계와 달리 사람은 upgrade도 되고 down grade도 되는 희한한 존재다. 기계처럼 폐기할 수 없는 존엄성도 갖고 있는 존재다. 세상이 달리 요란 잡다한 것이 아니다.
별거 아닌 해석이 최근에 읽었던 "행운에 속지 마라", "소로스 투자 특강"과 같은 투자책을 읽으면 든 생각에 연결된다. 참 희한한 일이다. 투자는 확률의 문제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서 왜 사업계획 세우고, 매달, 매분기 점검을 하는가?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 본래부터 그런 것의 차이를 알고, 자신의 생각과 상대방의 품질을 고려한다는 것은 인생의 확률에 관한 문제란 생각을 했다. 이것은 세상의 현상을 대하는 아주 좋은 공통점아닐까? 아무리 높은 확률이라도 본래부터 그런 것이라면 안 될 수도 아주 잘 될 수도 있다. 사실 이 문제는 인간의 통제가 먹히는 분야가 아니다. 이사의 일화처럼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나와 타인 사이에 있다. 무엇보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구체적이어야 머리가 움직인다는 점이 좋은 점이자 아쉬운 점이다. 자신만의 원칙을 만들어 가는 것은 인문이 말하는 역사의 구체적 사실, 그 속에서 인간들이 만들어낸 망작, 평작, 띵작의 근원에 자리 잡은 생각이 있다. 세상 기원 전이나 지금이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머리 굴리는 법이 아닐까?
주말에 너무 머리를 굴리고 있는 것 같다. 쉬면서 다음주를 활기차게 보내길 기대해야 겠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수 천년동안 인간이 반복하고 있는 것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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