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정이가 내 또래쯤 될것 같다. 오월 광주의 시간은 아주 먼 시간을 돌아서 내게 다가왔다.
불타는 광주 MBC와 혼란한 도시에서 전국체전을 알리는 을씨년스러운 길거리 조형물이 기억난다. 흐릿한 흑백텔레비전의 모습인데 선명한 명암을 남겼다. 섬뜩한 기억은 간첩이 와서 난리가 났다는 할머니의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월남전에서 작은 아버지가 갖고 온 빨간색 라디오를 새벽부터 안고 사시던 할머니의 소식통은 박정희가 죽었을 때에도, 광주에서 난리가 났을 때에도 언제나 어김없이 소식을 날랐다. 그때 집안 어른들도 사람이 죽고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를 소곤소곤 모여서 하곤 했다.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대전에선 그랬다.
시간이 흘러 공부하고 놀기 바쁜 시절엔 한반도 방방곡곡이 한 여름 최루탄과 돌팔매질에 여념이 없었다. 올림픽도 열렸다. 그리고 9년 전 광주에 대한 청문회가 이루어졌다. 전두환에게 국회의원 명패를 던지던 의원이 인상적이었다. 왜 부산 출신 국회의원이 광주에서 벌어진 일에 저 난리일까? 세상엔 알 수 없는 일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일에 관심을 갖기엔 노는 일이 주업인 시절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갔다. 학교 앞 서점에서는 판매 금지된 책이라고 하던데, 그런 책들을 교내에서 볼 수 있었다. 대학교 대자보에 실린 역사의 사실은 내가 보고 듣고 배운 것과 거리감이 있다. 이런 것이 빨갱이라고 하는 것인가? 도통 알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명백한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이념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바르게 함께 살아갈까의 문제이지 어떤 정치적 이념을 선택해야만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 것이 있다면 인류는 벌써부터 다 잘살아야 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일에 그런 것은 없다. 어째던 당시 나 같은 청춘에겐 조금 책임감이 떨어지는 소리지만, 자유라는 단어가 확실하게 어울리니까 말이다.
우연히 친구들과 보게 된 오월 광주의 영상은 큰 충격이었다. 전쟁을 경험한 적도 없고, 전쟁이 주변에 있었다는 소리도 들어본 기억이 없다. 기껏해야 배달의 기수를 보며 슈퍼히어로보다 정신적으로던 육체적으로던 뛰어난 군인들의 각색된 모습이 훨씬 많이 내 머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빨갱이 인민군이 아니라 무고한 양민들의 참혹한 시신에 입을 담을 수 없었다. 영화가 아니라 실제이기 때문이다. 독일 나치의 유태인 제노사이드를 방불케 한다. 왜라는 이유도 알 수가 없다. 그저 힘없는 양민들이 걸리적거리기 때문인가? 우리는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를 함께한 단일 민족이다. 삼국 시대에도 영토의 확장도 아니고 아무런 이유 없이 적의 양민을 도륙하지는 않는다. 항우가 그런 일을 하고 몇 천년의 오명을 남기지 않았나...그렇게 조금씩 힌츠페터의 참혹한 영상은 내게 각인되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파렴치한 권력자의 등장을 위해서 벌인 일이다. 그 대사가 수많은 사람의 피값으로 치러진 너무 가혹한 역사는 유구한 반만년이 아니라 파렴치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내가 살아간다는 상처를 다시 남긴 셈이다.
37년이 지나서 "택시 운전사"라는 영화가 나왔다. 이정현이 출연한 "꽃잎", 안성기가 출연한 "화려한 외출"등 오월 광주는 다양한 영화로 남았다. 즐라도 표현으로 가장 짠한 것은 꽃잎이다. 하지만 택시 운전사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곳에 상처받은 사람들과 그 상처를 기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기자정신과 그를 돕고 사실을 알리려는 노력들을 통해서 우리는 광주의 기억 조각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정이가 이제 40대 중후반쯤 됐을 듯하다. 택시를 운전했던 김만복은 생존했다면 70세가 넘었을 것이다. 군인으로 그 오월 광주의 학살 현장에서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살아가는 이들도 50대 중반을 넘어섰을 듯하고, 그 현장을 기획하고 역사의 큰 업과 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이젠 80대에 즈음할 것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신승리법의 이름하에 불의를 정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아직도 숨쉬며 살고 있다. 책도 냈으나 판매금지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시대가 바뀌고 있는 것이고 시대를 돌려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 다른 형식으로 재현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따뜻한 심장을 갖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세대가 역사의 상처와 오명을 안고 사라질 것이 아니라, 속죄하고 사과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도 많이 남지 않았다. 때를 놓치면 지울 수 없는 기록이 되고, 역사적 사실이 된다. 저승길에 무거운 업을 또 안고 가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거금 10만원이란 말에 동료의 뒤통수를 때리며 시작된 광주행 택시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한 항해를 시작한다. 초록색 브리샤 택시의 색이 긍정적인 신호와 오월의 신록을 상징하는 것 같다. 예약과 빈차의 동그란 빨간 메터기는 작은 경고등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시 아마도 50원을 조금 넘는 정도가 택시 기본요금이라고 생각된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10만원이면 엄청나게 큰돈이었을 것이다. 우연히 역사의 현장에 휩쓸리기 시작한 만복의 행동은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 몸부림치던 세대를 그대로 투영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작된 오월 광주는 가혹한 권력자의 폭거에 대한 사람들의 인간애와 분노, 정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힘을 기폭 시킨 계기가 되었다. 황태술(유해진)이 영웅이기 때문에 사람들에 대한 노력과 힘을 쏟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을과 나라가 지켜져 왔다는 사실을 알기에 반응하는 본능적인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가장 안타까운 인물이 구재식이다. 영화 시작부터 조용필의 단발머리가 시대를 상징한다. 가수가 되기 위에서 대학을 갔다는 대사가 젊은 시절에 갖던 많은 꿈들을 생각해 보게 했다. 혈기왕성하기 때문에, 냉정하게 현실에 다가설 줄 모르는 나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보안사 사복조에게 잡혀서도, 자신이 해야된다고 생각되는 역할에 충실했다. 동시에 피터가 생로를 찾아갈 시간을 번다. 죽음이 두렵다기보다는 그래야 한다는 사실과 명제에 충실했다. 그런 청춘이 논바닥에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큰 아픔이다. 많은 사람들이 해가 바뀌어도 오월 광주를 기억하려고 하는 것은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살아 숨쉬는 한 계속되고 또 이어질 것이다.
목소리만으로도 크게 다가오는 배우가 있다. 박 중사 역의 엄태구다. 짧은 순간에 나왔지만 긴박감이 크게 고조되었다. 트렁크 속의 물건과 김만복과 교차된 시선에서 시대의 양심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아마 더 큰 위험을 감수한 이유는 그들이 원해서 그곳에 있었던 것만은 아니기도 하다. 그래서 다시금 박 중사들의 역할을 기대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 장훈의 작품을 한번 다시 보았다. "영화는 영화다"는 아주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의형제는 그저 그랬던 것 같다. 고지전은 상당히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다. 취향이겠지만 꽤 공백을 갖고 좋은 작품으로 돌아온 셈이다. 다음 작품은 무엇일지 기대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