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그 시대의 현대사다. 우리가 아무리 글을 통해서 읽어도 우리는 그 시대를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있다. 짧은 시간 사이에서 우리는 세대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세대 간의 차이란 살아온 환경, 경험, 지식 등 모든 변화를 포함하는 함축적인 말이다. 그 속에서 유지되는 것과 변화되는 것을 이해하는 만큼 우리는 전과 후를 분별한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가 만약 지금의 제도와 문화로 책을 다시 보면 혼자 웃음이 난다. 모든 왕들은 범법자이고 지금 보면 세상의 지탄을 받을 일들이 다양한 이야기로 펼쳐진다.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보지 않지만, 역사를 바르게 보는 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야사를 통해서 나는 그 시대의 정서와 감흥의 한 편을 접한다고 생각한다.
2천여 전의 일을 지금 현재의 시각으로만 바라본다면 역사를 알기 어렵다. 이런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인류의 노력이 기록이다. 사람이 생각하는 방식, 즉 휴먼 알고리즘에 관한 철학, 인간의 다양한 마음과 생각의 편주를 찾아보는 문학, 이런 것들이 혼합하여 만들어낸 결과인 역사가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되고 있다. 결국 세상은 자연과 사람의 행위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인문학적 이해가 인간의 역사를 보다 다차원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기록이란 매일의 현대사가 누적되어 계승되고, 우리는 그 시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은 땅을 파고, 기록들의 조합을 통해서 고증이란 것을 한다. 그리고 시대의 여건상 대부분의 기록은 나라, 국가, 정부라는 조직을 통해서 형성돼 왔다. 그것이 그 시대를 다 반영한다고 보긴 어렵지만 대표성을 띄고 있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것만 역사라고 보는 것은 어렵다고 본다. 사람의 느낌이 사람을 통해서 구전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내가 시대에 대한 생각을 남겼다는 것이 시대의 대표성을 표출하기는 어렵지만, 시대에 대한 한편의 정보를 남겼다는 의미는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기록을 남기는 시대가 아니었다. 비록 우리가 정사라고 일컫는 정치, 권력 중심의 정부기록도 시대의 한 단면이다. 그런 점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의 야사를 기록한 정성스러운 책을 읽다 보면 또 다른 느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느낌은 야사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신화와 전설을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상징이고 시대를 바라보는 느낌이다. 사대강을 파서 성공적인 경제발전과 알흠다운 국토발전을 했다고 정부가 기록한 기록과 사대강을 바라보면 녹조라떼라는 비아냥의 단어가 공존했다는 사실을 남기는 것 두 가지는 역사라는 관점에서 모두 중요하다. 정사에 대한 분노, 아쉬움이 반대로 이야기 속에 숨어 있기도 하고, 칭송과 갈채가 신화적인 이야기로 남는다. 지금도 이런 과정은 다양한 기록으로 남겨지고 있다. 단지 우리가 현재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렇게 볼 여유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영상과 음성이라는 기록이란 사실이 신화의 형태로 남는 것을 방지한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역사로 다양한 영상과 음성이라는 기록 과정에서 해학과 웃음, 상징으로 남을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가 좀 더 나이가 들고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옛날이야기하듯 읽어줄 만한 이야기들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매일매일 각박하게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희로애락의 이야기가 줄어드는 것이 나의 탓이라고 생각하게도 된다. 내가 걸어오고 걸어가는 길에 대한 모습과 내 마음속에서 표출되지 않는 나의 생각들도 생각하게 된다. 내가 보는 나의 이야기와 시대의 이야기도 책 속의 다양한 이야기만큼 좋아지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