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총무팀장님이 주신 화분이 있다. 그러고 보니 화분에 있는 풀데기 이름이 뭔지도 모르겠네요. 이번 주에 보니 잎사귀 하나가 절반 이상 누렇게 변했다. 가르치는 일과 화초 키우는 일은 완전 젬병이다. 화초 같은 경우에는 얘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좀 한심해 보여서 "화초에 황달이 왔네 황달이. 여긴 너무 많이 왔는데" 그랬더니 팀장 녀석 하나가 또 잔소리를 한다. "내가 물 좀 주라고 했죠"하면서 돌아보더니 "어휴 앤 망했네 망했어"라면 기 까지 죽인다. 오늘 읍내에 다녀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누굴 가르친다는 생각, 나, 이런저런 일이 황달 온 잎사귀와 비슷한 결과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출장 가기 전에 강제 독서를 마무리하려는데 전화가 와서 읍내에 다녀왔다. 사람들의 관점은 다 다르다. 이해관계를 얹으면 더 복잡하다. 그래서 일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친하나 안 친하냐, 기분이 좋냐, 나쁘냐의 관점을 최대한 배제하고 생각하려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다 계획이 있다. 타이슨의 말처럼 "상대방도 링에 오를 땐 다 계획이 있다" 결과는 실력이 가른다. 운은 예측할 수 없으니.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에 업무적인 부분이 있어서 이야기하다 보면 묻는 사람은 조금은 야속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콕 찍어서 답을 구하길 원한다. 답이 문제가 아닌 일에는 결국 자신이 판단해야 한다. 단지 다른 관점의 가능성, 내 관점의 가능성에 대해서 논할 뿐이다. 내가 결정할 일은 이렇게도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내가 파악한 상황에서 내가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을 선택할 뿐이다.
종종 오해가 생기는 일도 있다. 물어보고 자신을 가르친다는 느낌을 받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런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누굴 가르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그런 일에 조심한다. 팀장들에게도, 신입사원을 OJT 하는 선임팀원에게 하는 잔소리가 있다. 무엇을 알려주는 것은 타인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이다. 명작은 못 그려도 절대 낙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모두들 집에서 금지옥엽 아닌가? 가르친답시고 상사라고 타인이 인생에 낙서를 한 죄는 대단히 큰 죄다.
대학 1학년 때 잠시 고등학교 모교에서 방학기간 교생처럼 한 달 일한 적이 있다. 한 달 일하고 받은 15만 원 대부분을 후배들과 함께하는 매점 습격으로 마무리했다. 학교 요청에 불려 갔지만 누굴 가르친 다는 것보다 그 시간이 재미있었다. 3학년 여름방학에는 영어 학원에 공부하러 오신 아주머니가 매일 물어보시길래 몇 번 대답을 해드렸는데 며칠 있다가 중학생 소녀를 데려와서 과외를 해달라고 해서 몇 달 가르쳐 본 적이 있다. 한 달에 5만 원을 받았는데, 가르치는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 날 공부를 하기로 한 것이 끝날 때까지 한다'가 기준이었다. 한 번은 애가 안 오니 걱정돼서 찾으러 오신 적이 있다. 겨울방학에 다시 연락이 오셨는데 좋은 성적으로 고등학교 갔다고 좋아하신다. 그리고 과외는 못 한다고 했다. 좋은 결과가 나왔으니 기분은 좋지만 적성에 안 맞았다. 그러다 대학원 시절에 고액과외를 할 기회가 있었다. 마지막 날 애를 집어서 침대에 던지고 안 한다고 했다. 이해를 안 하는 녀석인지 이해가 안 되는 녀석을 내가 이해할 수가 없으니 잘 될 리가 없었다. 애는 하기 싫고 나는 뚜껑이 열리고. 지금 돌아보면 할 마음이 없는데 해야 하니 이해할리가 없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때 성격으로 보면 침대에다 던진 것만 해도 그 녀석 다행인 줄 알아야 한다. ㅎㅎ 그 후로 사람을 가르치는 일과는 손을 끊은 셈이다. 그래도 지금은 무엇을 모르는지 물어본다.
회사에 들가서 과장이 될 때까지도 신입사원 OJT교육 같은 것은 해 준 적이 없다. 나도 첫 직장에서 바로 위 선배가 처음에는 "야! 이것도 몰라"라고 구박을 한다. 괜히 ㅈㄹ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취급 품목 매뉴얼을 다 찾아다 읽고 동작해보니 대충 이해가 갔다. 몇 달 뒤부터 뭘 물어봐서 대답하면 "잘났다 잘났어"라며 비아냥을 듣게 됐다. 사실 회사에서 이것저것 잘 알려주는 사람 드물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도 없어서 대충 하향 평준화되기 일수다. 공부한 새로운 인력이 와야 좀 변하지. 이런 문화는 점진적으로 개선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팀장 되고 신입을 잠시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나이 차이도 있고 오랜만에 해야 하니 영 성가시다. 그래도 옛날처럼 성깔이 나오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회사를 옮겨하다 보니 또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 조금 새로운 것을 하려면 학습이 필요한데 누가 잘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 내가 공부를 해서 조금씩 해보고 자료를 만들어 줬다. 서너 번 해주고, 시키면 난리가 난다. "주말에 나 못살게 할 궁리만 하고 나오나 봐요?" 하며 입은 댓 발 나와서 면전에 퉁을 준다.
불만이 있으니 다음에는 필요한 자료를 미리 준비한다. 한 주에 조금씩 한 개씩 만들게 하거나 여기에 찔끔, 저기에 찔금 일을 나눠서 키고 내가 합체한다. 양이 적으니 불만이 없는데, 나중에 내가 하나로 묶으면 "아니 이런 식으로 하기예요?"라며 또 투덜거린다. 지금은 본인들도 좋아진 점이 있겠지만 "엄청 못 살게 굴었다"라는 대다수의 혹평이 지배적이다. 얼마나 같이 소주 한 잔 하던 차장 녀석은 "사실 혹독하게 일 시키긴 했지요 ㅎㅎ"라며 건배하자는 녀석도 있다. 다른 녀석은 negotiation skill을 전수해 줬더니 "맨날 이런 식이야!!!"라면 출장 내내 잔소리를 한다. 직원이 3개를 사면서 2 파운씩 깎았다. 그 순간 "하나 더 사면 얼마 깎아줘요?" 했더니 4개를 사면 3파운드씩 깠아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많이 깎아 준거다" 그랬더니 종일 옆에서 '일 할 때도 그런다', '이런 식이다', '전에도 그랬다', '기분이 나쁘다'... 쫑알쫑알 하루 종일 징징거려서 힘들었다. 대신 까먹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신 내가 만든 자료, 자료의 원천 데이터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팀원에게 전부 공유해줬다. 가출한 자가 없는 것을 보면 힘들긴 해도 본인들에게도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그렇겠지요. 그러나 내가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의도적으로 갖아 본 적은 없다. 가르치겠다는 목적이 생기면 머리가 아프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한 번, 필요하면 여러 번 보여주는 것이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주는 방식인 듯하다. 보여줄 것도 별로 없다. 닥치면 해 보는 거지. ㅎㅎ 따라 할지, 도전해 볼지는 본인이 결정하라는 의미다. 한 가지더 '공부 좀 해라'라는 잔소리는 더 하는 것 같다.
다시 한번 표준 정규분포로 특정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측정해보면 잘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 표준 정규분포를 360도 회전시켜보자. 그 각도마다 분야를 설정하면 정말 자신이 잘하는 것은 몇 개 안된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누굴 가르치나? 나는 누구에게 학습지도라기 보단 누가 배우려고 할 때 내가 해 본 것과 아는 것을 통해서 아주 조금 도와줄 수 있고, 그 범위도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결국 타인이 결정하고 스스로 배운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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