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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출장 (行)

흐르는 시간이 소중한 여행 - 언제 또 갈 수 있을까?

by Khori(高麗) 2023.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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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격 예민한 누나가 연락이 와서 느닫없이 매형하고 여행 스케줄을 잡았다.  말에 다들 정신없는데 호텔, 비행기 일정을 잡으라는 성화에 머슴 둘이 정신이 없다. 게다가 호텔은  가보고 싶은 곳에 자겠다는데  마음대로 세상일이 다되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결국 전문 출장러가 호텔 일정과 비행기 일정에서 호텔 예약이 가능한 날을 기준으로 잡아서 '무조건 이날로 합시다'라고 시작된 묻지마 여행이다. 팔순이 넘은 어르신 모시고 가는 여행이라 1박 2일, 50M 이상 주행, 잘 먹고 푹 쉬자는 일정으로 잡았다.

 

 쓸데없이 여행을 잡았다고 잔소리를 하시다, 열흘 전에는 '그래 가자' 하셨다가, 며칠 컨디션이  좋으신지 닷새 전엔 '나 안갈란다'를 오가며 겨우 출발했다. 막상 출발을 하는 날엔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갑자기 '나 죽거든 흉한 사진 말고 이쁘게 나온 사진 많이 찍어서 그중에 하나 써라'라는 말씀에 '20년 뒤에 다시 찍자고 하셔요'라고 대답했다. 

 

 비행기를 타시곤 어려서 여행 가셨던 이야기, 50년  넘은 리즈시절 사진을 보여주신다. 누나랑 내겐 어려서 추억도 나고  처음 듣는 이야기도 하게 된다. 여행의 중간중간 시간이 흐르고, 모르던 잊었던  소중한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제주도에 내리자마자 점심은 갈치조림을 먹으러 갔다. 식당 예약러를 맡은 매형이 일단 맛보단 경치라며 바다가 훤하게 보이는 식장을 잡았다. 

 기다라 갈치조림에 새우, 전복, 낙지가 들어있다. 어린이 입맛의 내겐 그저 그렇지만 어머니와 마나님이 아주 맛나게 드셨다. 오는 길에도 맛이  좋았다고 하시니 기분이 좋다.  와중에도 손주 녀석들  떼놓고 왔다고 걱정이 많으시고,  때문에 오지 못한  누나 걱정이 많다. 부모란 항상 자식을 마음에 품고 사신다. 나도 마누라도 누나도 매형도 그렇게 소중한 시간 속에 추억과 마음을 담아간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보자고  이중섭 미술관이다. 매화  그루가 이쁘게 펴있다.(매화가 맞나? ㅎㅎ)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을 다녀와서 훨씬 새롭다. 이중섭이 살던 터를 보며 어려서 보았던 초가집이 생각난다. 아는 대로 가족들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보니 방문한 아저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씀을 보태주신다. 이중섭 미술관에서 그림을 공부하는 작가들의 그림인데 '여운'이란 타이틀이 붙어 있다. 작은 오름 같은데 선상일출봉 같기도 하고, 백록담 같아 보이기도 하고 단색의 강약이 좋은 느낌이 든다. 그래봐야 그림 문외한의 '내 생각'일뿐이다. 

 

 미술관을 나오면 '작가의 거리'라고 붙은 경사로에 공방, 기념품 가게가 있다. 여인 3명이 쪼르르 가서 흥정을 한다. 4천 원짜리 '황소', '흰 소' 미니액자를 샀는데 주인장이 현금카드 대신 현찰을 내라고 우기신다. 현찰을 주고 옆가게에 갔는데 여인 3명의 흥정에 웃음이 난다. 반짝이는 목걸이를 서로 해보라며 이거 얼마냐고 묻는다. 아니 제주도에 와서 그걸  사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행은 무엇을 하는 것보다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아저씨 보고 물어보고 미리 결제를 했다. "계산했으니 아무거나 골라요?"라고 했다. 마누라가 자리를 조금 비켜 조그만 고양이 키체인을 하나 골랐다. 계산을 하려니 아저씨가 인심 후하게 "써비습니다"라고 해서 인사를 했다. 

 

 마침 이중섭 미술관에서 처음 보는 풍경화를  점 보았는데 사진 속에 있다. 아저씨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시고, 황소는 아마 국립박물관에 있다는데 기회가 되면    있지 않을까? 경매에 37억인데 그걸 이건희가 산 것 같다며  다른 배경 지식을 알려주신다. 그러고 가게를 나왔는데 어머니가 자석 팔찌 같은 것을 주신다. 누나가 "야, 아저씨가 서비스라면 2만 5천 원이 붙은 팔찌  개를 줬다"다고 한다. 후한 인심에 웃으며 "아니 결제한 것보다 훨씬 많이 서비스를 받아오며 뭐가 남아? 너무들 하시는 구만"이라며 함께 웃었다.

 

 호텔로 가기 전에 여미지 식물원에 들렀다. 여미지가 무슨 뜻인지? 如美地 아름다운 땅이란 세상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무릉도원이라도 옮겨놓은 곳일까? 삼다도의 위력  바람이 세차게 불어 실내만 보고 왔다. 돈을 너무 쓴다, 너희들이 고생이다 하시면 계속 잔소리를 하시는 분을 보면 여행을 오셔서 기력이  살아나시나 보다. 

 

 백종원 호텔이라고 하는데 신라스테이 느낌처럼 깔끔하다. 방음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지만 나머지들은 아주 좋은 편이다. 조식 뷔페도 가성비로 보면 우수한 편이다. 무엇보다 체크인할 때 여러 가지 쿠폰을 준다. 할인 쿠폰이라고 생각했는데  곳에 모아놓은 백종원 브랜드 프랜차이즈에 가서 마케팅적으로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맥주집에 갔는데 묻기도 전에 쿠폰을 달래서 맥주 2잔과 스낵 안주를 준다. 베이커리는 처음 봤는데 아침에 방문하니 생크림 빵과 커피를   준다. 할인 쿠폰이 아니라 교환권 같다. 

 

 조금 쉬고 나서 다시 저녁을 먹으러 갔다. 모두들 차다고 1시간 이내로 움직이고 잠시 몸을 움직여 구경하고 다시 먹는 일이 반복된다며 하루를 돌아보며 웃는다. 어머니가 "야 그렇게 먹고도 자꾸 먹는  보니 내가 놀랍다"라고 하실 정도다. 송훈 셰프가 하는 제주도 흑돼지 식당에 갔다. 제주빵집이라는 곳도 같은 셰프가 한다고 해서 들렀다.

 

 서귀포와 제주시 중간쯤 숲 속에 위치한 식당이다. 제주도 토종 흑돼지를 저온 숙성한 것 같은데, 기름기도 적당하고 아주 부드럽다. 3종류가 나오는 A코스와 B코스가 각각 2인분이라 주문했는데 나중엔 주인에게 아무거나 코스 하나를  달라고 했다. 특히 젊은 직원이 고기를 구워주며 가게의 이력, 인테리어, 주인장에 대한 설명 특히 자신들이 제공하는 제주도 토종 꺼먹돼지에 대한 설명을 더해서 재미있다. 맛도 좋고, 무척 친절해서 모두 즐거운 식사를  것 같다.

 

 그렇게 밥을 먹고 '제주빵집'에 갔다. 차나   하기로 했는데, 웬걸 블루베리 케이크, 단호박 케이크, 초콜릿 크로와상, 치즈빵을 시키고 서로 너무 하는  아니냐고 웃었다. 한라봉   잔만 드신다던 어머니 빵이 아주 맛있다고 하신다. 직원이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는데 5명이 직원 퇴근에 지장을 주지 않고 맛있게 먹고 함께 퇴근했다.

 

 아침을 먹고 천천히 유채꽃 길로 향했는데, 대문 사진처럼 유채꽃이 아직 활짝 피지는 않았다. 풍력발전 중인 엄청  바람개비 구경만 했다. 마침 제주에너지 풍력발전소와 업무적 연관성이 조금 있어서 자꾸 보게 된다. 이것이 아니라면 레고 때문이겠지. 

 

 그런데 섭지곶이에 갔더니 남쪽 방향이라 그런지 유채꽃이  생동감 있게 피어올랐다. 멀린 성산일출봉도 보인다. 예전에 제주도에 왔을  유채꽃 밭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었었다. 그땐  유채꽃이 나보고 크다고 생각했었지? 

 

 옥빛이 나는 바다가 신기하다는 여인들도 잠시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었다. 내겐 정말 에메랄드처럼 파랗고,  옅은 푸른빛이 나던 그리스 바다 색이 훨씬 좋다고 했다. 분위기가 별로 그만 떠들었다. 지중해 봤다는 자랑질 밖에 되질 않는다. 그러고 보면 내가  눈치가 없다.

 

 성산일출봉에 도착해서 모두 올라갈 생각은 일도 없다. 각자 예전에 왔던 추억을 이야기한다. 죽으라고 올라갔더니 넓은 공터를 보고 내려온 허탈함,  누런 언덕배기에 조랑말 하나 세워놓고 새신랑, 새 신부 사진 찍어주고 돈 받는 사람들도 이젠 나이를 많이 먹었을  같다. 이렇게 멀리서 보니 모양이 원래 저랬나?  둥글둥글하지 않았나? 기억에 '외인구단' 영화에서 보면  꼭대기에서 야구를 했던  같은데.. 이런 생각을 하며 근처 국숫집에서 고기국수와 파전을 열심히 먹었다.

 

 공항으로 가다 아이들이 보고 싶다던 도깨비 길에 갔다. 착시로 오르막 같지만 내리막 같은 느낌이랄까? 여러 사람들이 물병에 굴려보며 '그짓말이네 그짓말'등등 한참 떠든다. 대학시절 친구들과 이런 길에서 차를 세워주고 천천히 뒤로 가는 경험을  적이 있다. 2차원적인 소실점과 3차원적인 위상의 차이 때문일까? 영상을 찍어 아이들에게 보내줬다. 

 

 공항에 도착해 매형한테는 담배를  보루 사달라고 하고, 술을   사서 드렸다. 다들  쉬라고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 즐겁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거리 여행을 하셔서 그런지 기분이 좋아지신 분과 소중한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있을까? 마나님도 부모님과   그런 시간을 만들어줘야겠다. 이러고 보면 아들이 소중하다고 하지만 남편 되면 매일 죄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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