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너무 머리가 아파서 일찍 잠들었다.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다는데 요즘 나를 보면 낮게 체력이 찌질해지니 헤롱 거리다 일찍 잠들고, 다시 일찍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부모님들의 신체적 고충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조금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18년이 요단강 건너면서 무슨 짓을 했는지 흰머리가 살살 늘어나고 있다. 마나님 울분을 토하던 지적사항이 우려사항으로 변해가고 있다.
새벽이라고 하기에도 이른 밤에 잠이 깼다. 꿈이란 걸 잘 꾸지 않는다. 자면 누가 들고 가도 잘 몰랐는데, 점차 잠 귀가 밝아지는 것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꿈에서 얼핏 큰돈이 생겨서 잠에서 깼다. 집을 살 정도의 돈도 아닌데 기분 좋을 시점에 잠에서 깼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전화기를 보니 4시간 전에 메시지가 와있다.
낮에 팀장에게 오늘 고객 사내 발표 결과가 어떤지 확인하라고 지시를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에요~'라는 말처럼 담당자가 대표이사에게 잘 발표하고 전략적으로 사업 확장을 하기로 했다는 메시지다. 그럼 그렇지. 꿈은 개꿈이 미련이 없고, 현실은 이래야 즐거움이 생긴다.
어두운 밤에 창밖을 보면서 2년 전 아니 해가 바뀌었으니 3년 전 3월이 생각난다. "00야, 우리 이 고객에게 A제품을 잘 프로모션 해보자~"라는 말에 훌륭한 대꾸가 나왔다. "팀장님! 미친거 아니에요!" 그때를 돌아보면 걱정이 가득 들어찬 똥그란 눈동자가 생각난다. 난 한참을 웃었던 것 같다.
그 해 가을에는 또 다른 고객 앞에 제품을 시연하던 때다. 원래 잘 돌아가던 녀석도 손님만 만나면 속을 썩인다. "팀장님~"하며 그런 다정한 소리를 듣기도 힘든데, 손을 꼭 부여잡고 나에게 마우스를 넘겨주던 기억이 난다. 미팅을 그럭저럭 마치고 "많이 늘었네. 그래 힘에 붙일 땐 넘길 줄도 알아야지"라며 서로 위로를 했던 기억도 있다.
이젠 그 녀석이 팀장이 되어서 A제품을 잘 팔고 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온 메시지가 "미친거 아니에요"라는 그곳의 고객이다. 세상에 고속도로와 같은 빠른 직진만 있다면 좋을 것 같지만, 굽이굽이 돌아가는 사람 사는 길가에 핀 이쁜 풍경과 사람을 천천히 자세하게 볼 수 없다. 조금 돌아왔을지도 모르지만, 정상을 직진으로 케이블카처럼 올라가지 않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해서 새로운 시작의 계기가 됐다는 것은 참 보람이다.
다음 주에 그 녀석과 고객을 만나러 출장을 간다. 봄이 오면 뭐 아저씨가 특별한 일이 있을 리 없지만 마음이 즐거운 건 사실이다. 호사다마라고 즐거움은 다시 고난을 붙여갖고 다니니 이건 일상다반사라고 생각하련다. 그냥 잊혀지는 기억이 될 수 있는 사건이 좋은 추억이 되었다는 즐거움이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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