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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잡부(天上雜夫)_ 사업관리 시즌 2 (해외영업 시즌 1) )

꿈을 현실로 갖고 오는 역할

by Khori(高麗) 2019.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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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장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갑자기 가방에 달린 액세서리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버킷리스트라고 생각하고 들러본 Legoland의 열쇠고리가 슬리퍼다. 가방에 달려있는 슬리퍼가 구두가 닳도록 걷게 되는 해외영업 팔자 같다. 타인들은 "언제 거기 갔어", "여행이 직업이야?"라는 속도 모르는 부러움의 질문을 아직도 하지만 동료의 말처럼 발바닥에 일어나는 '임진왜란'이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천천히 걸어야 자세히 애정을 갖고 볼 수 있지만, 너무 가까운 거리는 피곤한 일도 많다.


 그 위에 영문 nick을 비드로 만들어 대충 가방에 달아두었다. 내가 바라보는 것처럼 나도 누군가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어떻게 기억해할지 타인이 결정하겠지만, 그 타인의 결정은 나의 행동이란 재료를 다듬은 결과다. 그저 그런 별 볼일 없는 음식인지, 꽤 요긴한 한 끼의 식사인지, 두고두고 생각나는 요리가 될지 모르겠다. 나는 별 볼일 없어 보이지만 매일 먹는 밥과 같이 질리지 않는 음식이 좋다.


 새해의 시작은 새해 이전에 준비한다. 사업계획도 마찬가지다. 새해가 시작되면 상황 변화가 발생하고, 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 계획도 세부적인 조정을 하면서 대응하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것은 조정을 할 때, 사업의 방향과 얼마나 alignment가 되도록 조정하는가?의 문제다. 그 방향을 변경할 때에는 우리의 상태와 역량과 사업의 실현 가능성을 예측하게 된다. 그 예측 중 내 경험에서는 1분기의 결과가 년간 계획의 4배가 되는 수준이 가장 많다.


 쭉 이어진 리니어한 시간의 흐름은 아주 정확하고 벗어날 수 없다. 사람들은 '시간이 문제다', '시간만 있으면'이라고 한다. 내가 볼 때 시간이 움직이는 불변의 힘, 무적의 직진성을 생각하면 '시간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받아들여야 하는 불변의 조건이다. 년 초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유다.


 작년과 달리 산을 기어올라가는 루트에 변화가 생겼다. 베이스캠프의 위치가 변화하지 않았고, 정상이란 목표점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올라가는 과정은 변화했다. 꽃 피는 봄이 오면 시장은 활기차게 움직이겠지만, 어느 길이 꽃길이고 어느 길이 뱀이 나오는 위험한 길인지 미리 사전 답사를 하려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태평양 건너 큰 땅덩어리에서 미중의 총성 없는 원거리 이전투구의 모습을 보았다. 서로의 기대가 있고, 서로에게 요구사항이 있다. 기대가 현실로 다가오는 시간과 현실로 다가오게 하는 역량이 문제다. 화중지병이 현실이 꽃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겠지만 서로의 믿음과 협력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얼마큼 갖고 오는가의 문제지만 작년보다 훨씬 좋은 꽃밭을 가꿀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이것을 확인하고 점검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지금도 동료들이 이 일에 매달려 있고, 현실로 꿈을 갖고 오는 일은 최종적으로 영업의 역할이다.


 이번 달에는 현해탄 건너 과거의 우리의 영토인 대마도를 건넜다. 올해는 조선통신사를 꾸려 가는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그렇다고 했더니, 임진왜란 전 조선 통신사의 자중지란에 대해 입방정을 떨며 잘하고 오라는 메시지가 왔다. 선봉이 출정을 할 때에는 무사귀환과 좋은 성과를 기원하는 것이 맞는 일이다. 봉건시대라면 목을 쳐서라도 재수 없는 입방정은 단속할 일이다.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려다 도착하자마자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면, 초심이란 목표를 잃게 되지만 목표와 역할을 잘 기억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라고 짧게 메시지를 남겼다. 영업은 주도권이라고 할 수 있는 기호지세( 騎獸之勢)가 중요하다. 사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이며, 내가 목표를 위해서 관리해야 할 항목이다. 


 3년 전 미쳤냐는 소리를 들었던 추억이 즐거움이 되려고 한다. 그 기억이 좋은 추억이 될 시작점에 섰다. 고객도 내부 승인이 잘 마무리되어 이번 미팅은 아주 즐거웠다. 약속, 승인, 결정이란 과정까지가 힘들다. 그리고 이 과정을 넘어서 공동의 실행이 진행되면 훨씬 홀가분하다. 일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성취의 만족감, 서로에 대한 격려는 사람을 쉽게 몰입하게 한다. 지난 이야기와 해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고, 서로를 위해서 축배를 들었다. 


 그런가 하면 변덕이 하늘과 땅을 셔틀하는 조변석개의 고객도 만난다. 들어가자마자 고객사 영업 부장님이 "야~~ 우리 좀 살려줘"라며 엄살과 손을 싹싹 비빈다. 그의 유머 있고 진심의 행동을 보며 마음이 누그러진다. 딱딱한 분위기를 살리는 그의 역량을 보면서 내가 종종 감탄할 때가 있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능력이다. 동시에 그의 행동에 어떤 비굴함도 느껴지지 않는다. 과장의 말과 행동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에 와서 '영업이란 무엇인가?'를 한 번만 강의를 해달래도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고객사의 다른 분들이 '달리는 폭주기관차'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때에는 '영혼이 맑고 자유로운 분'이다. 게다가 사람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 옆에 매일 조변석개와 결정장애를 갖은 사람도 있다. 일본 문화를 경험하며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전문성이라는 이름하에 '안 되는 이유'만 기계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많다. 전문가는 '어떻게 하면 될까'와 '그렇게 했을 때 보완해야 할 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이 실력 있는 전문가다. 이것도 문제, 저것도 문제라고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사람들을 나는 '면피의 일상화'라고 생각한다. 피곤한 일이라면 이런 사람과도 이야기를 하고 협의를 해야 하는 일이다.


 면피가 일상화된 사람들은 여러 가지 특징이 있다. 전문적으로 소신을 품고, 내가 이해가 안 되면 어떤 것도 대응하지 않고 앵무새처럼 자기 말만 한다. 곤란하면 애꿎은 낮은 지위의 사람들에게 "내 말이 틀려? 맞아?", "그렇게 할 거면 난 못 들은 거야?"라고 하며 상대방이 아니라 내부에 총질을 한다. 이런 부류는 나름의 믿음이 가는 구석도 있고, 소신이 깨지면 재빠르다. 


 다른 부류는 참 피곤한다. 사람의 주둥이는 거짓말을 한다. 침이 옥구슬처럼 흘러도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얼굴 가죽의 색도 그 사람의 상태를 나타내는 하나의 신호등이지만 훈련된 철면피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눈은 거짓, 불안,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 심연에서 올라오는 동물적인 감각은 눈으로 알 수 있다. 종종 공격적이라는 말을 듣지만 앞 테이블의 상대가 이야기할 때에는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높은 사람일수록 더욱 집중해서 듣고 본다. 피곤한 부류는 나의 허점이 노출되면 눈이 좌우로 빠르게 흔들린다. 머리만 굴리면 되지 눈은 왜 굴리는지 모르겠다. 어려서 담임 선생님이 "숙제를 왜 안 했어?"라고 꾸중을 할 때, 고개를 팍 숙이고 "여기서 뭐라고 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출장 중에 땅이 5.7 강도로 부르르 떨었다던데, 멀쩡한 이곳에서 눈은 좌우로, 머리는 점점 고도가 떨어지며 쪼그마한 전화기로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이는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을이라는 공급사다. 고객이 요구하는 날짜를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잘못된 것은 먼저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 사람의 관계에 신뢰를 쌓는 방법이자 큰 용기다. 용기 없는 자들은 변명과 하소연을 한다. 


 그럼에도 사달은 벌어졌고, 가장 큰 대책 수립은 '선 문제 해결, 후 개선대책'이다. 고객의 고객으로 인한 문제가 내가 직면한 고객의 문제다. 내가 옳고, 기분이 나쁜 것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여기에 온 초심이 더 중요하다. 해외영업의 역할은 고객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solution을 창의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상황이 여간 빡빡한 것이 아니다. 사쪼까지 와서 점잖하게 닦달을 하다 결국엔 잘해서 3월에는 축배를 들자고 한다. 나도 그 목표를 위해서 왔지만 "사장님! 저희 정말 힘들어 죽을 것 같아요~~'라고 엄살을 부렸다. 그랬더니 여러 가지 사업 배경, 고객사와의 관계도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다 "사실 우리 고객이 정말 못됐어. 내가 컨퍼런스하는데 조용히 들어보니 그 놈들 정말 못됐더라고. 여기 있는 직원들에게도 미안해. 엄청 심하게 하더라고'하면서 에둘러 두둔을 한다. 이런 상황이 'I don't have a word'다.  어쩌겠는가 해야지 뭐. 갖고 간 술 한 병을 드리고 3월에 축배를 들고, 그 축배에 대부분은 머리 숙이고 곤란하면 들락날락하던 그 양반에게 몰아주기로 하고 미팅을 끝냈다.


 다른 곳들은 사업도 사업이지만 인간적인 관계가 좋다. 사실 너무 친해서 문제다. 서로 애틋하게 하려다가도 뭐가 잘 안된다. 두 곳은 친히 한국인 직원을 통해서 저녁 식사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자주 보던 인심 좋은 아저씨, 형님처럼 재미있게 이야기하시던 분의 다른 면모를 보게 된다. 직업의 특성도 있겠지만, 소믈리에를 버금가는 사케 달인을 볼 줄이야? 그날의 미팅에서는 사케 달인처럼 우리의 사업 논의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장하는 부분을 논의했었다. 일과 술 마시는 것의 경계가 애매한 조선통신사지만, 일과 술 마시는 것의 공통점을 느낀 하루였다. 다른 하루는 서로의 사는 이야기와 많은 정보를 통해서 기획을 하는 과정이 되었다. 서로 일찍 들어가라며 다시 한 잔을 기울이며 "김상, 이상, 박상, 진상 건배!", "진상??? ㅎㅎㅎㅎ"이러며 즐거운 하루를 마무리했다.


 상대방의 문제는 상대방이 해결해야 한다. 상대방의 문제를 내가 해결할 수 있을 때, 내가 해결하려고 노력할 때 나도 그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움을 받게 된다. 사실 그렇게 나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조율하는 종합예술인이 해외영업이다.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공통의 꿈이 소리 없이 조금씩 현실에 꽃을 피우게 된다.


 그런데 나는 내일 출근하고, 언놈은 연차를 내고.. 이거 좀 기분 나쁜데. ㅎㅎ 그래도 온갖 번역과 노력 봉사를 하기로 약속했으니 봐주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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