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 해가 엄청 길다. 머릿속도 복잡하고, 마음속도 복잡하다. 3개월 동안 업무를 바꾸고 조직변경, 인력조정을 작업을 마무리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변화는 결국 해도 지랄, 안 해도 지랄이라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후배 녀석이 "형, 정말 유병장수의 길로 직진입니다"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사람들에게 감사함, 미안함이 교차한다. 원래 눈물이 잘 없는데 늙나 혼자 눈물이 글썽일 때가 많아졌다.
무엇보다 욕도 먹어야 하는데, 혹시라도 내가 사사로왔는지, 특정한 방향이 전체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혹시라도 내 이익을 위해서 한 일인지를 여러 번 돌아보고 계획을 점검하게 된다. 나는 항상 틀릴 준비가 되어있을 뿐 아니라,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며 내가 아는 것만 갖고 사고칠 위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는 것은 힘이지만, 아는 것만 알기 때문에 대형사고가 난다. 인간이 갖고 있는 불가피한 오류다. 내가 최근 정관정요를 읽고 있는 이유도 그렇다. 동시에 어떤 의견을 접하면 다른 쪽의 의견도 수렴할 방법을 계속 찾아보고, 묻고, 들어보려고 노력한 이유다.
직원 정신만 갖고 사는 나에겐 참 안 맞는 일을 처음으로 하다 보니 참 거시기한 몇 달이 지나간 듯하다.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 행동을 보면 이해가 간다. 스스로 편향을 가속화하지 않기 위해서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가 없고, 걸어온 길을 지울 수 없기에 또 다른 상처가 될까 말을 아껴야 할 때가 있고, 서로 이해하고 말하지 않아도 알기에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다. 물론 말하기 싫은 때도 있지만, 밉던 곱던 해줘야 할 말을 하지 않은 적은 적다. 주어진 상황에서 사고와 행동들을 다 내가 겪어본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해가 된다고 말한 것은 인간에 대한 심리적 이해, 합리적(?) 추정이다. 12년부터 지금까지 읽은 책이 1000권은 넘고, 본 영화가 500편 가까이 된다. 그것을 통해서 내가 배우고, 익히고 생각한 것을 이왕이면 밝고 즐거운 곳에만 사용하면 좋으련만 세상은 꼭 내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는다. 하긴 내 마음대로 세상이 굴러가면 내가 신이지 인간 일리가 없지 않은가?
아쉬운 것은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말하지만 중압감이 생기면 누군가 내 삶의 구원자를 기대하는 것 같다. 그 불안감이 상황인식을 왜곡하고 어설픈 추정을 만들고, 어설픈 추정은 그럴싸한 요상한 스토리가 된다. 왜 묻지 않을까? 나는 사람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고,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했다.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돌아보면 학벌이 좋고, 능력이 좋은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 자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이 명확하고, 그 명확한 관점에서 자신의 질문을 던질 작은 용기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모습은 평상시에 보여주던 사람들의 모습과 많은 차이가 있다. 내게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떠했을까? 첫 직장 사표에다 "내 삶에서 회사를 해고한다"라고 쓰고 나온 성격(예의 바르다고 할 수 없음)상 몇 가지 질문은 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젊었을 때의 패기와 자부심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안다. 나이가 들어가며 그 패기와 자부심을 내가 어떻게 성품과 실력으로 발현할 수 있는가? 또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물러날 때와 나아갈 때를 잘 판단할 수 있을까? 이것 장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나의 기질이 순화된다고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주부터 어떻게 개인정보를 취득했는지 알 수 없지만 핸드 헌터 연락이 온다. 작년에는 설날 아침에 문자가 와서 황당했다. 어떤 연이 되어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매년 한 두 개는 받고 있다. 이런 일도 차츰 줄어들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더 높은 급여와 조건, 기업 위상, 사실 요즘은 그런 관심은 적다. 내가 함께하고, 정성을 쏟고, 서로 조금 부족해도 지지고 볶으며 어떤 방향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내 직업 선택의 원칙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급여가 더 좋은 직장이 좋을 것 같지만, 내 경험상 한국 문화에서 별로다. 돈 많이 받고,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만큼 기분 잡치는 일도 없다. 경험상 외국인 회사도 사실 거기서 거기다. 단 비슷한 근로조건에서 외국인 회사의 처우가 좋다는 생각은 있다.
아직 겨울이 한창이다. 인력조정으로 떠나는 사람들에게 뭐라 위로할 말을 다 할 수 없다. 내가 모두를 감당한 능력이 없기에 감당할 만큼이라고 움켜쥐려는 노력이 부족해 볼일 수도 있다. 미안함과 서운함이 교차하지만 시간을 조정하고 연말정산, 위로금 등 봄을 기다리는 시간이 새롭게 준비하는 시간이 되도록 조금이라도 돕는 것이 최선이라는 마음이 참 무겁기 그지없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던 생각과 내가 세상 속에서 바라보는 생각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다. 3개월 정도의 창살 없는 감옥살이가 끝났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지금부턴 또 다른 많은 일들이 있지만.. 제기랄..
긴 하루를 돌아서 집에 돌아오니 어제 내겐 작은 웃음을 주던 책이 도착했다. 읽던 정관정요는 며칠 뒤로해야겠다. 한 수 배우겠다고 읽어보려던 대학을 읽어야 할 상황이다. 저 책을 거의 30년 전에 사서 대강 철저히 봤던 기억이 있다. 조금 늦은 감이 있나... 또 지난번 베트남 고객사 사장 추천으로 사서 너무 많은 한자와 딱딱한 해석으로 포기했던 고문관지를 포기하고 있었는데, 올재에서 책이 보여서 얼른 구매했다. 도착한 책을 보니 고문관지가 아니라 고문진보다. 게다가 2권이 아니라 5권이나 된다. 올재에서 나온 안씨가훈, 신기전 시리즈를 하나 더 샀는데 거기에도 정관정요가 있다. 빠른 매진이 많아서 보이면 되도록 사는데, 사고 나서 확인한 결과랄까.. 하여튼 이번 주는 참 다양한 한주가 지나가고 있다. 내일은 종무식이고 나발이고 업체 미팅을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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