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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잡부(天上雜夫)_ 사업관리 시즌 2 (해외영업 시즌 1) )

[天上雜夫] 왜 그리고 대체 무엇을 걱정하나? - 또라이와의 대화

by Khori(高麗) 2021.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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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의 걱정은 무엇인가?

 요즘같이 삶의 환경이 오르락내리락하면 불안하다.   없는 이유로 온갖 걱정이 생긴다. 통제할  없는 환경적 문제와 통제할  있는 작은 오류들이 하루아침에  정리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상상은  입사한 회사 막둥이나, 조직을 관리하는 조직장이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장 모두의 희망사항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 사랑하는 혈육이 모인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현실 속에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는  새로운 하루를 살아간다. 이것만으로도 삶은  개인들이 만들어가는 가치와  괜찮은 스토리를 품는다. 

 

 미래는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기대가 깨질까 봐 걱정하는 불안감,  봐도 명확하고 확실하게 내일 문제로 다가올 확률이 100%에 가까운 일, 문제를 알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현실은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킨다. "아~ 미치겠네!"라는 말속에 벗어나고 싶은 열망과 정말 미치면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중의적으로 담겨있다.

 

 이럴 때마다 "어휴 미치면 안 되지"라고 역설적으로 말할 용기, 그렇게 몰아가는 그 알 수 없는 녀석을 떼려 잡을 뭔가가 필요하다. 마인드셋, 멘탈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런 것 아닐까? 그런데 이건 작은 방패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든다. "쫄지마"라는 시대의 언어가 유의미하다. 누구나 쫄린다. 쫄린다고 찌그러질 것인가? 정신 바짝 차리고, 호흡을 천천히 하며, 머리를 굴리며 생존의 길을 열 시간을 벌어낼 것인가?  작은 차이가 다른 결과를 갖고 온다.

 

 해야 할 일, 내 마음 같지 않은 연인, 요구사항이 다양한 가족, 뉴스에 나오는 나랑 상관없는  같은 소식까지 답답하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가족이 중요한 이유다. 가족마저 서로 싸우면 인생 갑갑한 외톨이가 된다. 마음을 터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도 좋다. 하지만 나는 먼저 내 마음과 대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대화 속에 순도 높은 진실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화하는 내 속의 또 다른 녀석도 사실 믿음직스럽지는 않다. 제일 환장할 때는 그 녀석 때문일 때가 많다. 못된 걸로는 명인 수준이다. 걸핏하면 "거 봐라"라고 말하는 그 메아리는 단전부터 척추를 타고 올라 종 치듯 머리를 후려갈긴다. 재수 없는 자식. 좋을   녀석을 찾지 않는 이유가 이것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방심할  없는 녀석이다. 약간 방심하면 술 마실 때, 방치를 오래 하면 맨 정신에도 느닷없이 튀어나와서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녀석인지  까발린다. 성깔까지 더러운  때린 녀석이다. 그런데  녀석만큼  마음을 100% 알고 이야기할  있는 녀석도 없다. 미운 정 고운 정은  마음이 속에 사는  녀석에게 가장 많이 쌓인다. 분하지만 그렇다.  녀석도 나한테 기생하며 걱정을 너무 많이 먹고살아서 그런  같다.  녀석은 걱정이랑 물아일체의 경지라니까...

 

 나를 돌아보면 사무실을 나서며 매일 걱정과 연을 끊으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좋으나 싫으나 매일 만나는 친구, 협력자 또는 개의 자식인지 스토커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는 박힌 총알 같다. 얘도 성격이 요상한게 어딜 가질 안는다. 이 녀석을 이고 지고 안고 달려봐야 나만 지친다. 자주 보기 때문에 정도 안 가지만 그립지도 안은데 떨거지처럼 찰싹 붙어있다. 한 여름 뙤약볕에 연인들이 포옹하고 몇 시간만 있어도 살인의 충동을 느낀다는데 너는 보이면 능지처참 감이다. 아무렴. 법 있어서 다행인 것들과 달리 혹독하게 처리해야  필요가 있다.  방법이 요원한 나날이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니 참 억울하다는 생각이  때도 있다.

 

 그런데 다들 한 녀석씩 달고 살고 있지? 가끔 이 녀석이 걱정 친구를 모아 반상회라도 하면 나는 떡실신이 된다. 그런데 누가 인생은 내가 짊어질 수 있는 만큼 짐을 준다고 한 거야? 내 생각엔 짊어지다 보니 자꾸 이 녀석들이 종친회, 반상회, 동창회를 열어서 짊을 얹어서 비자발적으로 체력이 늘어난 거 같은데! 난 이 말 한 녀석만 한 또라이도 없다고 생각한다. "잘 때도 계속 짊어지고 천하장사되거라,  그럴 생각이 전혀 없도다!"라며 저주를 퍼부어도 시원찮다. 그래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무력감이 생긴다.

 

 가장은 가장이라 걱정이 있고, 엄마는 엄마라서 걱정이 있고, 자식은 자식이라 걱정이 있다. 사장은 사장이라 걱정이 있고, 경비도 경비라서 걱정이 있다. 벗어날  없는 일이란 말이다. 그렇다고 "어머  걱정 있나 봐? ㅋㅋㅋㅋ"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머  걱정도 없나 봐 ㅎㅎㅎㅎ"가 조금 나아 보인다.  보단 "무슨 걱정이야?"라고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 여기서도 질문이 가장 좋은 답을 얻는 형식이고, 좋은 질문이 가장 좋은 답을 들을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있다. 일상에서 누군가 이런 따뜻한  한마디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만 잘한다. 그걸 먼저 하는 사람은 훨씬 적다. 그런데  마음속에 사는  게토레이 같은 녀석에겐 뭐가 걱정이냐고 물어봤냐? 재수는 없어도 의외로 예가 타골 선생처럼 핵심 간파력은 뛰어나던데?

 

 가끔  재수 없는 녀석이랑 이야기해보면 대부분은 "네가 그렇게  놓은 거잖아"라는 답이 온다. 고두심 명대사를 빌려서 "잘났다  잘났어, 아주 잘나셨네. 그걸 말이라고 하냐? 누가 몰라"라고 쏴 붙이고 싶지만 부인할  없는 말이다.  말은 내가 작은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많은 기회를 쪽팔리고 창피해서 날려먹을 뿐이다.

 

 "걱정해봐야 소용없다"라는 말도 한다. "기분 나쁘게 말을 해도 하나 도움이 안 되니! 내 속에서 거지처럼 빌붙어 살면서 밥값이라도 좀 해라"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다. 아니 000 연예인이 결혼을 하던 이혼을 하던 내 삶에 무슨 변화가 생기나? 내가 그를 안다고 그가 나를 아는 것도 아니고? 트럼프가 탄핵이 되면 흠... 일적으로 조금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 이웃집 밥그릇이 파란색인지 노란색인지가 왜 중요해? 관심, 취향, 기호로도 설명되지만 상당한 근심과 걱정의 대상은 당장 내 삶과 연관이 없는 일도 많다.

 

 가장 어려운 것은 걱정이긴 한데 내가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때다. 내가 좋아하던 000이 결혼을 한다면? 졸업이란 영화처럼 신부 납치 줄행랑을 합의하고 도모하지 않는다면 받아들여야 걱정은 사라진다. 통제할 수 없는 일은 그 상황을 살펴 대책이 없다면 그것을 현실로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된다. 그렇다고 나보다 나이가 많다고, 지위가 높다고, 경험이 많다고 던져주는 걱정을 무조건 다 받아야 하는가?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수도 없다. 나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다. 더불어 내 마음속에 또 다른 녀석도 내 덕에 그런 지위를 갖는다. 그렇게 받을 경우에 발생하는 worst case를 생각해보자. 나이가 들어서, 그 사람 지위 정도에 겨우 가거나 시대가 뒤떨어진 경험만 쌓는다. 하지만 사람은 내가 더하고 뺀 것이 있기 때문에 그들과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낸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이 얼마나 없었으면 지음과 같은 고사성어가 나왔겠다. 기대를 하지 말아야 실망이 없고,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보면 즐거움이 생긴다. 내가 뭘 더하고, 뭘 뺐는지 잘 몰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데 그거 내 속에 그 녀석이 가끔  알지.

 

 직원들에게 상사만 한 스트레스가 없다. 어차피 사장은 나랑 안 놀아준다. 그리고 사장이 이야기 좀 하자고 하면 직원들은 바짝 쫄아서 말도 잘 못한다. 사장을 종종 보게 된다는 것은 결국 외로운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위아래 위위 아래 아래가 쌍쌍바처럼 붙어서 스트레스를 더한다. 점입가경이다. 상사와는 전혀 다른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나도 삐뚤어지고 싶은데 내속의 나는 온갖 다른 생각에 바쁘다.

 

 내가 상사가 되고 나서 중간관리자처럼 답답하신 분들이 없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때마다 내가 저때 했던 생각을 많이 한다. 앞을 보고 도움이 될 거 같아서 이야기하면 잔소리를 한다고 한다. 당장 필요한 것은 포털처럼  문제를 해결해  답을 원한다. 아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나 그렇게 하면 사람을 망치게 된다. 전화기 배터리 없으면 백과사전급 실력이 깜깜이 실력으로 순간 이동하는 현상처럼. 이것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내가  이거 공부  시키려고 한다"라고 말하면 "안 해요"가 바로 튀어나온다. 그러면서   안 해준다고 한다. 위와 아래의 사이에서 양쪽을 보면 둘 다 가관이다. 

 

 빠른 시간에 윗분들의 생각을 듣다 보면 "얼씨구, 말은 된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차라리 어린이처럼 "나 저거 하고 싶은데"라고 말하는 게 낫지 않아요?라고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말이다. 저렇게 물어보면 당근 "맴매한다"라고 하고 말하고 싶지만 나도 사람의 예의와 존중, 인간에 대한 배려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글에 나오는  따옴표는 내가  안의 다른 녀석에게 던지는 방언일 뿐이다.

 

 대표이사의 이상적이고 당연한 말을 보자. "이번 일은 슬기롭게 처리해서 실패 없이 정확한 기일에 마무리하세요"같은 말이다. 내가 살면서 "슬기롭게"라는 말이 이 처럼 애매모호하고 황당하게 사용된다는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죽으라고 해도 될똥말똥인 일을 시작해 보겠다는데 시작부터 ㅎㅎ. 보고하고 나와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슬기롭게!!!!! ㅋㅋㅋㅋㅋㅋ 좋아 좋아 나도 써먹어 볼까?" 이런 말 사람 잡는다. 이거 말고도 많다는 사실에 사람들의 지혜는 다양한 곳에 사용된다는 실전 배움을 얻은 셈이다. 나도 어디 가서 협상에서 깽판 나는 일이 없지만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을 채근하지는 않는다. 희한한 사실은 이때 일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재난 친밀형 호연지기가 발동해서 한 마디 했다. "제대로 하고 최선을 다하겠지만, 실패하는 것은 전혀 두려운 일이 아닙니다. 실패를 해도 배우면 기회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항상 주어진 일에 내 실력이 부족한 것을 걱정할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맹자의 양혜왕처럼 대표이사가 말씀을 못하고 창문을 한참 보시었다. 속도 모르고 막둥이는 "실짱님! 내가 묻는 말에 답을 하셔야 할꺼 아니에요 답을.. nononono, 설명은 나중에!"라며 잔소리를 날리며 쫓아다닌다. 좋을 때다. (여기다 '슬기롭게 해라'라고 했으면 올 한 해 먹을 욕은 다 먹었을 거다.. 아무렴)

 

 누군가의 말처럼 걱정의 대부분은 벌어진 일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다. 벌어지지 않은 일은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을뿐더러  도움도 안 된다. 걱정의 모멘텀엔 잠시 물러서서 조금 멀리서 바라보고 준비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 낫다. 그도 아니면 쉬던가  마음속에 또라이와 잠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낫다. 불안한 미래도 내가 지향하는 부분의 실력을 채워가며 불안을 희망으로 치환할  있다.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부족한 실력을 이해하고 배움의 길을 택하면 그만이다.  걱정은 실력이 부족한 것과 그것에 대한 조급함 때문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마음속 또라이는  딴짓을 한다. 도움이 안 되는 세상 편한 녀석. 약속이 생겨서 읍내에 댕겨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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