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한 달이 된 것은 아니지만 달이 넘어갔다. 이 기간을 넘어오며 몇 가지 되짚어 보는 일들이 있다. 바라건 바라지 않건 변화가 생기는 중이다. 나로 인해서...
전투 작업복이 변했다. 내가 슈트를 입는 날은 상갓집 또는 해외에서 손님이 오는 날이다. 18년 전 지금 다니는 회사(중간에 가출을 한 번 해서 지금은 돌아온 탕자라고 하는데 옛 고사로 보면 어느 나라 이름을 따서 '탕'자가 붙었는지는 모르겠다)에 올 때 사업팀장과 한 딜은 "자율복장"이었다. 넥타이도 매고 이쁘게 차리고 앉아서 숨 헐떡거리면 일을 슬슬한 게 좋은지, 평상시 편하게 입고 일을 잘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합의였지만 틈틈이 어찌나 못살게 굴던지. 그래도 손님 올 땐 다르다. 우리 사장님도 이 부분은 내놨기 때문에 좋았는데 잡부 일을 하면서 어쩔 수없이 양복을 자주 입게 된다. 왜 한복이 안되는지 모르겠다. 갓도 한 번쯤 써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회사에 변복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이중생활 중이다. 그리고 나중에 잡부가 아닌 잡스가 아이팟, 아이폰 들고 터틀넥을 입고 나왔다.
사업부 녀석들이 야밤에 내 자리를 옮겨놨다. 아니 세입자를 쫒아도 예의가 없는 나쁜 놈들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든다. 게다가 본사 외 사무실에 있던 기물들도 사라진 지 오래다. 사업부 사람 아니니 올 일이 없는 것 같다고 하면서 뭘 자꾸 가져간다고 통보가 온다. 나도 어쩔 수 없이 한 녀석 모니터를 털어왔다. "쎔쎔이에요!"라는 메시지가 왔다.
일의 발단, 일의 전개, 치열한 과정, 정리정돈과 같은 일들이 많다. 청소를 하면 쓰레기가 나와야만 한다. 쓰레기가 안 나오는 청소는 어딘가 곪아 터지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세히 관찰하고 사고해야 하며 모르는 것에 대해 도움받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채플린의 말처럼 가까이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란 말이 인생뿐만 아니라 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일을 자세히 보면 비극적 측면이 있고,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런 공간적 여백을 마음에서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가 중요하다. 문제라면 이런 일이 계속 몰려온다는 것이다. 젠장! 전생에 뭘 했는지 제일 궁금하다니까. 1차 저지선을 구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고 합디다"로 끝나는 정보전달과 보고는 주리를 틀겠다고 했다. 물론 친한 사업부부터 시작 중이다. 국내 사업본부장과 부장이 '이런 식이면 노동부나 인권위에 신고를 할 거다', '그런데 주리는 어디에 설치할 거냐'라며 농담을 계속 이어간다. "적이 옵니다"로 끝나는 보고를 볼 때 보고자는 '내가 할 일을 다 했다'라고 안주하고, 정보보고를 받은 사람은 '그래서?'라고 생각하는 차이가 생긴다. 보고 받은 입장에서 시간이 촉박하면 감정적으로도 안정감이 떨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지금 나보고 하라는 소리지? 그렇지?'라고 해석되는 경향이 생긴다. R&R의 측면에서 이런 보고가 줄을 타고 오르면 중간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냥 첫 보고자가 상황 브리핑을 하면 끝난다. 그럼 중간은 뭐 하는 사람들인가? 수건 돌리기도 아니고? 상황을 판단해서 1차 조치, 2차 조치를 끊임없이 하는 것과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처리가 어렵거나 부족한 것이 예측될 때에는 더 큰 자원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상황과 자신이 해온 계획, 자신이 생각하는 예측을 더 해서 이야기를 해야 정확하게 조치하기가 쉽다. "재가 그렇다고 합디다"라는 말이 사라질 수 있을까? 이럴 때면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을 내 방식으로 해석한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 '성공하는 방식은 너무 많아서 특정할 수 없고, 망하는 방식은 묘하게 비스무리한 냄새가 난다' 일단 조직정비를 위해서는 비스무리한 방식을 조금씩 청소하는 것부터 해야겠다.
잡부는 잡다한 일을 한다. 사업부, 재무, 총무, 인사, SCM과 제조, 연구개발, 품질관리, 고객부서, 외부 협력업체(조달, 아웃소싱, 공동개발, 협력사업) 그리고 뭔지 알 수 없는 잡다한 존재들(뜨내기들)까지 손이 많이 간다. 각 부문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의 목표로 일치단결시키며 목표를 향해가는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할 것인가라는 꽤 괜찮게 표현된 문제라는 생각을 했다. 어려움이라면 '그게 잘 되겠냐?'라는 부정적 내부 파열음과 '어떻게 하면 될까?'라는 호기심과 생각 사이를 계속 셔틀 하는 것이다. 셔틀만 하면 된 것이 없다. 움직이는 양이 늘어나고, 안 돌아가는 머리를 계속 데구르르 굴리다 보니 체력 저하가 온다. 꾸역꾸역 뭘 때맞춰 잘 먹다 보니 웬걸 눈은 퀭하고 살은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참 난감하다.
책을 읽을 시간이 대단히 부족하다. 시간이 없다기 보단 졸거나 자기 일수다. 책은 항상 옆에 있을 뿐이다. '부의 원칙'을 열심히 읽어보려고 오늘 노력할 것이다. 약속은 중요하기 때문이다. 늦더라도 최선을... 그리고 오후에 잠시 영화 한 편도 볼 생각이다.
래리 하이트 저/노태복 역/강병욱 감수
한빛비즈 | 2020년 10월
외부와도 미팅이 많은데 갈수록 들고 다니는 것이 많아진다. 10년 된 가방을 잠시 처박아두고, 5년 된 큰 백팩을 꺼냈다. 칭구 레고들도 덩달아 이사를 했다. 올해 쥐띠의 해라고 미키마우스 달아봤는데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만 많다. 차라리 톰을 달았었야 했다는 후회 중이다. 요즘 정신없이 바빠서 잊었다가 바라본 주식은 -3.5%라고 알려준다. 오늘 알았다. 자세히 좀 들여다보니 며칠 전에는 -10%도 넘게 다녀온 것 같다. 안 보길 다행이다. 사고팔고 하면서 늘어난 금액을 생각하면 0%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손해일 지도 모르겠다. 최근에 10%를 회복했다면 앞으로도 이런 자세를 취하며 알아서 성장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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